2024년 11월 24일(일)

[아무튼 로컬] 도대체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그저 코로나 탓만일까. 로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대도시의 다중 밀착 컨택트에 지친 사람들이 언택트 공간을 찾아, 혹은 발 묶인 해외여행족들이 꿩 대신 닭이라며 로컬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런 움직임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급류를 타고 있었다.

여기서 로컬이란 ‘서울 말고 다 시골’이라는 의미보다는 ‘사람들의 삶 터’라는 뜻에 가깝다. 당연히 서울 안에도 다양한 로컬이 있다. 요즘 뜬다는 성수동이나 창신동,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 세운상가 주변, 예전부터 개성적인 상권을 형성해 왔던 이태원, 홍대 앞 등이 서울 안의 로컬이라 할 만한 곳들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로컬의 핫플에 다녀온 걸 과시하려는 셀카 사진이 넘쳐난다. 형형색색 피크닉 복장 중·장년 세대의 관광버스 여행이 명승지 위주로 돌아갔다면, SNS 네트워크로 연결된 밀레니얼 자유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멋진 공간을 누빈다. 맛집은 기본이고 퀄리티 면에서 서울의 유명 상권에 뒤지지 않는 카페, 책방, 공방, 수제 맥주집, 바버숍, 편집숍 등 업종도 다채롭다. 매력적인 인테리어와 감각적 서비스를 갖춘 이런 가게들이 지난 수년 새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생겨나더니 점점 더 빠른 기세로 확산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로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는 말이 나온다. 청년들 사이에 가장 뜨는 게 로컬이라는 얘기도 있다. 서점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동안 출판계에선 ‘퇴사’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홍수를 이뤘다. 그 흐름을 로컬이 이어받았다. 잡지에서 시작해 일본 번역서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로컬 전성시대의 도래를 간증하는 저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로컬은 일부 학자나 정치인들이 지방분권이나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의제 속에서 다뤄온 주제였다. ‘로컬 컬처’라는 게 있긴 했지만 이는 소수만이 누리는 변방의 문화를 의미했다. 그런데 로컬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어느새 주류를 넘보는 듯한 형국이다. 정말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로컬 지향 트렌드의 주역은 역시 밀레니얼과 그 이후 세대다. 이들은 386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대처럼 공부하고 취직하고 가정 꾸리고 은퇴하는 ‘하던 대로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자기 식으로 삶과 일을 만들어 가려는 자기 주도성이 강하다. 이들의 로컬 지향성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중앙집중적 사회 시스템, 세계화로 상징되는 글로벌 단일 시장의 무한 경쟁에 수동적으로 ‘소속’되는 것을 거부한다. 같은 생각과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공감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기를 희망하는 흐름에 가깝다.

혹자는 이를 일시적 문화 현상일 뿐이라고 본다. 10여 년 전 ‘가로수길’이 떴다가 평범한 도심 상권으로 생기를 잃은 것처럼 요즘 뜨는 로컬 상권도 SNS와 유행에 편승해 치고 빠지는 얄팍한 상업주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거다. 반면 로컬의 밀레니얼 창업자들이 무한 경쟁 사회에서 파괴된 공동체의 생활 기반을 신세대 감성이 가미된 사업 모델로 복원해줄 것이라는 희망적인 견해도 강하다.

스타트업으로 불리는 기술 창업자들에게만 천문학적 규모의 지원금을 쏟아붓던 정부도 로컬의 창업자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올봄 140명의 로컬 크리에이터를 선발하는 중소벤처기업부 공모 사업엔 30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지난 7월의 3차 추경에도 로컬 창업자 지원 예산이 들어갔다. 스타트업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벤처투자사들도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에 지갑을 열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1세대 격인 ‘어반플레이’가 지난해 26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고, 부산에서는 공유 공간을 운영하는 RTBP가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로부터 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로컬 벤처의 성장성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주목하는 임팩트 투자사도 몇 개 나타났다.

로컬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구현하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간중심주의와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우리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해석하고 행동하느냐가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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