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임팩트투자는 ‘선의’ 아닌 ‘상식’…자본주의 흐름 바뀐다”

[2019 아시아임팩트나이츠 릴레이 인터뷰] ③로버트 김 캡록그룹 자산운영책임자 <끝>

지난 21~22일 제주 서귀포시 히든클리프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임팩트나이츠’ 참석차 방한한 로버트 김 캡록그룹 자산운영책임자. ⓒ허재성 객원기자

4조 원이 넘는 돈을 굴리는 거대 투자사가 “자본주의 판도가 달라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캡록(Caprock)그룹’이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의 지속가능성 전문 잡지인 ‘리얼리더스(Real Leaders)’가 선정하는 ‘올해의 진정한 리더 100’에 임팩트투자 분야 수상자로 선정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투자사다. 아시아임팩트나이츠 포럼에 참여한 로버트 김 캡록 자산운영책임자는 지금까지 100건 이상의 임팩트투자에 참여한 임팩트투자 전문가다. 그는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의 기반이라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며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사회적가치’ 만들면서도 지속적 수익 낼 수 있어…투자 희망 자산가 계속 늘어

―캡록그룹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한 가문이나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여러 명의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멀티 패밀리오피스’다. 고객의 자산을 어디에 투자할지 조언하거나 직접 관리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다만 임팩트투자 전문성을 가진 회사로도 알려졌다. 현재 운용 자산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 가운데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가량을 임팩트투자로 돌리고 있다.”

―투자 규모가 상당한 데, 임팩트투자사는 아니다?

“그렇다. 투자 종류와 무관하게 고객이 희망하는 투자 수익률을 목표로 자산을 관리하는 게 패밀리오피스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에게 투자처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가급적 사회적 가치를 내는 곳에 투자하도록 조언한다. 개인이나 가문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자율성이 큰 패밀리오피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설득이 잘 되는 편인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설득한다기보다 설득당할 준비가 된 고객이 많다고 본다. 고객 중에는 ‘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삶에 피해 주지 않는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거나 ‘좋은 일을 하는 곳에 투자하고 싶다’며 먼저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수익률 1~2% 차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일부 고액자산가에게도 임팩트투자를 적극 추천한다.”

―어떤 식으로 설득하나?

“고객을 파악하는 게 첫 번째 단계다. 기대 수익률이 얼마인지, 어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아동 교육 문제, 기후 변화, 부동산 문제 등 고객마다 제각각인 관심 분야를 파악하면 임팩트투자를 권유하기도 쉽다. 그다음은 고객과 약속한 전체 자산의 수익률 목표치를 보면서 상업 투자와 임팩트투자 비율을 결정한다.”

―수익과 사회적가치를 동시에 이뤄내는 기업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 할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100건 이상의 투자에 참여했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더라. 경험이 쌓일수록 확신도 생긴다.”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 예가 ‘어포더블하우징(Affordable Housing)’이다. 미국의 도시정책 중 하나로, 저소득자를 위한 적정 가격의 주택을 말한다. 특히 빈부격차가 큰 미국에서는 어포더블하우징의 수요가 아주 크다. 우리가 투자하는 주택은 다른 주택보다 주민 편의나 복지에 세심하게 신경 쓰는 편이다. 저소득층을 돕는 비영리단체와 연결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나 놀이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또 태양광발전을 통해 입주민들의 전기료 부담까지 줄였다.”

―수익은 낮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주거비 부담을 느끼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상위층 대상 주택은 공실률이 늘어나고 있는데, 어포더블하우징은 공실이 거의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일반 임대업보다 위험이 적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로버트 김 자산운영책임자는 인터뷰 내내 “자본주의의 근본 원칙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동물’로 봐야 한다”며 “이윤 창출이 최고이자 자본주의의 신념이라는 것은 특정 시대에 공유된 생각일 뿐”이라고 했다. 투명성, 신뢰성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나 환경을 착취하는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건 오히려 장기적인 수익성을 떨어트린다는 인식까지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는 ‘변화하는 동물’…이윤 극대화 맹신하던 시기는 지났다

―‘자본주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재밌다. 무슨 뜻인가?

“자본주의는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는 뜻이다. 식물처럼 한 곳에만 머물러 있거나 어떤 종교적 신념처럼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존재는 아니지 않나. 100년 전만 해도 아동 노동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불법이다. 이윤 창출을 위해서 무엇이든 가능한 게 자본주의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이윤 창출은 중요하지만, 그 욕망을 제한할 수 있는 사회적 한계치라는 건 변한다. 과거에는 투자를 고려할 때 수익률과 위험성을 따졌다면, 지금은 환경과 사회를 해치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건 기본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곳에 투자하겠다는 게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원칙이 되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임팩트투자를 소수의 선(善)한 움직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주류 자본에서도 그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JP모건이 진행한 연구를 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0조 달러(약 7경1000조원)의 재산이 자녀 세대로 상속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3년 안에 부모님의 자산 관리사를 해고하겠다’고 답했다. 이유는 같았다. 자산 관리사들이 수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탐욕적인 투자를 부추긴다는 거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CEO 래리 핑크는 자신들이 관여하는 모든 회사 대표에게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의 회사가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기업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당신들에게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걸 보여주기 식 일회성 행위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 투자사들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난다는 건 자본주의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신호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사회적가치를 표방하면서 기업 이미지 향상만을 노리는 ‘임팩트워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기업이나 투자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돈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거대한 합의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파이가 커지는 건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재무적·사회적 성과를 내는 기업을 찾아서 가능성을 키워내는 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임팩트워싱’을 가려내려는 노력도 하고 있나?

“물론이다. 투자처를 선발하기 전에 임팩트투자로 분류되는 경우에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임팩트 보고서를 아주 투명하게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 인권 등 자신들이 만드는 사회적가치에 대해 수치나 수혜자 상황 등 정확한 보고서를 해야 한다. 이 정보를 고객이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든 ‘아이팔(I Pal)’이라는 모바일 앱도 운영하고 있다. 앱을 통해 고객들은 우리가 운용하는 자산 중 얼마가 임팩트투자에 들어갔는지, 그 투자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김 최고투자책임자는 “단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를 해친다”고 거듭 강조했다. 환경이나 사회를 해치면서 일부가 이익을 독점하면 결국 생산이나 소비 활동의 동력이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진행했던 임팩트투자를 설명하며 “임팩트투자는 자본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코딩을 가르쳐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연계해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소셜벤처에 투자했습니다. 기업들은 아프리카 사업 확장을 수행할 젊은 인력을 얻었고, 청년들은 안정적인 소득을 거두고 마을에는 활기가 돌았죠.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 그게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일이 아닐까요?”

[제주=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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