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바닥엔 찬 기운이 올라옵니다. 키나(11)네 가족이 사는 2평짜리 쪽방입니다.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리를 구부려야 합니다. 불빛이 없는 방, 깜깜한 어둠뿐입니다. 겨우 어둠에 익숙해지자, 5개의 약병이 눈에 들어옵니다. 키나 부모님이 먹는 약입니다. 옷가지들은 방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고, 그 옆으로 그릇과 주전자, 맷돌이 보입니다. 식량을 담은 포대자루도 구석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쪽방은 네 식구의 침실이자 주방이고, 창고입니다.
키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합니다. 매일 아침 책가방을 지고 집을 나설 때면, 신이 나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어떤 과목이 제일 재밌니?”
키나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수학책을 가져옵니다. 키나는 쑥스러운 듯 수학책을 이리저리 펼치며 말했습니다.
“간호사가 되서 엄마와 아빠처럼 아픈 사람을 돕고 싶어요.”
키나의 부모님은 에이즈 환자입니다. 아버지 차니(42)씨는 20년 전, 일자리를 찾아 가난한 네팔을 떠났습니다. 홀로 인도에서 호텔 경비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향인 네팔 도티지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 둘라(40)씨도 에이즈 환자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병든 후, 키나의 삶은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몸에 힘도 없고, 두통에도 시달립니다. 이웃 어른들처럼 공공근로사업에도 참여하지 못합니다. 텃밭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보는 일이 전부입니다. 하는 수 없이 오빠 나벌(17)이 나섰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지만, 이마저도 실패해 지난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 네 식구는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가 버겁습니다. 친척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차니씨는 “몸이 조금 좋아지면, 돌 나르는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지만, 언제쯤 가능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루 막노동 값은 100루피(한화 약 1500원)입니다.
키나는 요즘 자주 학교에 빠집니다. 부모님이 심하게 아플 때면, 가축을 돌보거나 텃밭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두 번씩, 왕복 2시간을 꼬박 걸어서 물도 길어와야 합니다.
“어떤 물통이니?”
키나는 옆에 있던 파란색 물통을 힘겹게 들어올렸습니다. 키나 몸의 절반만 한 커다란 물통입니다. 때로 키나는 네 식구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키나는 “오늘 아침에는 옥수수를 갈았어요”라며 맷돌을 보여줍니다.
‘콜록콜록’. 인터뷰 도중 키나는 자주 기침을 합니다. 둘라씨는 “몇 주 전부터 감기에 걸렸는데, 점점 추워져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난방시설도 없는 쪽방에서 감기를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키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겨울 옷 한 벌만 있으면 좋겠어요.”
키나가 따뜻한 겨울을 날 수는 없을까요. 네팔의 산골바람이 괜스레 미워집니다.
※ 키나와 같은 해외 빈곤 아동들을 도우려면 굿네이버스(1599-0300, www.gni.kr)로 연락하면 됩니다.
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