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임산부 고충
“대학병원으로 옮기자마자 검사를 전부 다시 받으라는 바람에 첫 검사비만 50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임신 9개월째에 접어든 남인희(35)씨는 고위험 산모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전치태반'(태반이 자궁의 입구에 근접해 있거나 덮고 있는 증상) 진단을 받고 병원을 옮겨야 했다. 출혈이 동반되는 증상인 만큼 혈액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학병원에 있어야 했던 것. 남인희씨는 “대학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하건 비용이 두 배가 넘는다”며 “이전 병원에선 일반 초음파 검사가 3만원도 안 됐는데, 대학병원은 6만원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3년 전 둘째를 출산할 때 같은 진단을 받았던 이효정(37)씨는 “저도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고 옮겼는데, 2차·3차 검사를 받으면서 ‘돈으로 애를 낳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이효정씨가 “거기다가 특진비도 추가되잖아요”라고 하자, 남인희씨는 “맞아요. 특진비”라고 대꾸하며 “사실 의사들이 보는 건 똑같은데, 우리 나이가 많아서 불안하니까 경험 많은 선생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을 잇는다.
다음 달 출산 예정인 남인희씨와 3년 전 출산을 경험했던 이효정씨가 한자리에 모이자, 고위험 산모가 겪어야 하는 고충들이 쏟아진다. 고위험 산모는 임신·출산 중 산모나 태아, 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임신을 한 임산부이다. 체질에 따라 겪어야 했던 증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정상 산모보다 병원을 더 드나들어야 했고, 그로 인해 진료비 부담이 막중해졌다는 것에 이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건강 체질인 이효정씨는 32살에 첫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임신부터 출산까지 무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3년 후 둘째 아이 출산 과정에서는 임신성 빈혈, 갑상선기능항진증, 임신성 당뇨, 전치태반 등을 모두 경험했다. “첫 아이 때는 내 신발(215㎜)이 맞았는데, 둘째 아이 때는 230㎜도 안 들어갈 정도로 발이 붓더라”는 이효정씨의 말은 고위험 산모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을 가늠케 한다. 증상이 생길 때마다 병원 진료를 받았고, 그때마다 진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 출산까지 300만원 가까운 금액을 쏟아 부어야 했다.
남인희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하던 남씨는 전치태반으로 인한 출혈이 심해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한 달 앞당겨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했다. 남씨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주변에서는 출산 하루 전까지 일하는 것도 봤는데, 고위험 산모인 탓에 8개월째에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했던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남씨 역시 출산까지 300만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위험 산모는 정상 산모에 비해 3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에 반해 그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편이다. 국가에서 임신 진료비 50만원을 지원해주는 ‘고운맘카드’가 있지만, 이는 모든 산모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고위험 산모를 위한 맞춤 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고위험군으로 진단받은 산모는 총 5만4454명으로 5년 전에 비해 4배나 급증했다. 이 중 고령(30~34)으로 인해 고위험에 편입된 비중은 전체 44%를 차지한다. 고위험 산모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인 틀이 필요한 이유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고령 임산부를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 2009년부터 ‘고위험 임산부 지원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2010년에 이효정씨, 올해 남인희씨도 이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은 산모들. 재단 측은 “고위험 산모는 정상 산모에 비해 의료비를 4배까지 초과 지출 하는 등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다”면서 “하지만 출산의 특성상 산모들이 출산 이후에는 의료비 지원을 요구할 만한 심리적·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지원이 부족해도 문제 자체가 계속 덮여버리는 등 지속적인 관심이 부족했다”고 사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올해 전국의 고위험 임산부 210명에게 1인 최대 6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사례 공모나 수기 제작, SNS 홍보를 통한 고위험 임신 인식 개선사업도 병행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