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동호로 208번지. 서울 한가운데에 세상을 바꾸는 기술의 산실(産室)이 생겼다. 지난달 10일 개소한 ‘남산 랩 코리아(이하 남산 랩)’는 페이스북과 아산나눔재단이 공동 운영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페이스북이 투자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남산 랩에는 11대1의 경쟁률을 뚫은 6개의 국내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입주사들은 6개월간 무료로 공간과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개소 한 달여 만인 지난 18일 남산 랩을 언론사 최초로 방문했다.
남산 랩은 총 450㎡(136평) 규모로, 아산나눔재단 사옥 4층과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4층에는 입주사들이 친목과 휴식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된 커뮤니티 공간과 탕비실이 있고 피로를 풀 수 있도록 간이침대가 있는 휴게실도 마련됐다. 5층은 사무공간이다. 입주사들의 사무실과 회의실이 있고 프린터, 복합기 등도 비치돼 있다.
디자인부터 공간 활용까지 ‘간결과 개방’의 콘셉트로 디자인된 게 특징. 몇 가지 색의 벽과 가구들로 장식을 대신했고, 공용공간은 최소한의 용품만을 비치해 사용자들이 넓게 이용할 수 있다. 입주사들의 사무실 칸막이는 위쪽이 뚫린 형태라 서로의 말소리가 들린다. 원활한 소통과 네트워킹을 지향하는 설계다.
페이스북은 현재 프랑스, 영국, 인도, 브라질 등 전 세계 15개국에 ‘랩’을 운영하고 있다. 남산 랩은 인도 다음으로 아시아에 두 번째로 설립된 랩이다. 시장이 넓은 중국, 경제 규모가 큰 일본이 아닌 한국에 만들어진 이유가 뭘까. 박상현 페이스북 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및 정책팀 부장은 “우수한 한국 스타트업이 많다고 페이스북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소문이 난 상태”라면서 “한국은 IT 인프라가 훌륭하고 정부의 지원도 많아 실력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생기기 좋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이 한국의 기술력에 주목했지만, 남산 랩의 모든 입주사가 IT 기반 비즈니스를 하는 건 아니다. 페이스북의 랩은 ‘선한 기술의 확산’과 더불어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입주사 선정 요건에 ‘기술 기반의 또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을 뒀다. 100% 식물성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Melixir)’를 제조 판매하는 ‘뷰티긱스(Beauty Geeks)’가 남산 랩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조건 덕분이다. 이하나 뷰티긱스 대표는 “한국 뷰티 시장이 연신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뷰티긱스의 해외 진출이 유력했기에 남산 랩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랩 입주사가 되려면 독창성과 기술력뿐 아니라 소셜미션까지 겸비해야 한다. 뷰티긱스는 친환경적이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통해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미션을 가졌다. 오네피플(O.ne people)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고객 정보를 쉽게 보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드리엘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광고 서비스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중소기업 및 영세상인들이 광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는 미션을 가졌다. 디플리(Deeply)는 시각장애인 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이 울음소리·자동차 소리 등 생활 소음을 식별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클래섬(Classum)은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보조 학습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딥핑소스(Deeping Source)는 블록체인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안전하게 수집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페이스북의 영업비밀이 담긴 본사 개발자의 기술 및 마케팅 멘토링과 개발 프로그램을 입주사에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입주사가 원하는 멘토링을 요청하면 해당 개발자 및 사업 담당자를 입주사와 매칭해주는 방식이다. 멘토링 종류는 대부분 화상회의나 메일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본사 유명 개발자가 직접 한국에 와 강의를 해주기도 한다. 페이스북의 한국 로컬 파트너인 아산나눔재단은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 ‘마루180’ 운영 경험을 살려 재무·회계·홍보 등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겪는 분야에 대해 컨설팅, 강연 등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목표 수치를 요구하지 않는 것 또한 남산 랩의 특징. 조아영 오네피플 대표는 “보통 임팩트 투자,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은 연 매출액 등의 목표치를 달성해야 추가 지원이 이뤄지지만, 남산 랩은 입주와 동시에 조건 없는 지원이 제공된다”면서 “스타트업계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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