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광화문1번가 열린소통포럼
지난달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1층 국민정책소통 공간에서 제5차 ‘광화문1번가 열린소통포럼’이 열렸다. 열린소통포럼은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시작한 정책 제안 창구 ‘광화문1번가’의 후신으로, 지난 5월부터 아동·재활용·저출산고령화 등 주제별 정책 토론을 이어오고 있다.
행정안전부 사회혁신추진단과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의 주제는 ‘사회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 그리고 제안’. 사회혁신가와 연구자, 중앙부처 및 지자체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 주제 발표를 듣고 종합토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김용찬 행안부 사회혁신추진단장이 인사말로 포문을 열었고, 이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정선애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이 각각 ‘사회혁신 생태계와 새로운 거버넌스’와 ‘사회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연사로 나선 이재호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의 정부 혁신은 기업의 모델을 정부에 이식한 성과 중심의 혁신이었다”면서 “그 결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가 더 양극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사회혁신을 위한 정부 거버넌스의 모델로 ▲시민주도형 정부 ▲위험관리형 정부 ▲공유가치형 정부의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정부는 사회적가치 중심의 운영을 통해 시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정부가 지역에 공유가치(Shared value)를 만들지 못하면 사회혁신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애 센터장은 정부의 사회혁신 과제를 진단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제안했다. 정 센터장은 “행정의 권한과 자산을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것이 중앙정부의 역할”이라며 “정부가 시민을 직접 만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초기 단계에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잘못 개입할 경우,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단계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훼손해 혁신을 흩뜨릴 수 있다”며 정부가 개입할 단계와 방식을 섬세하게 기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인프라 조성자로서, 사회적금융과 연결한 새로운 민간위탁 파트너십 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가 끝난 뒤에는 민간전문가 7명이 사회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안을 내놨다. 김정헌 언더독스 대표, 최경희 튜터링 공동대표, 김우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 이사, 차화숙 에이블세라미스트회 대표, 원용숙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기술원,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 정서화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발표순) 등이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사회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민간전문가 7인의 제안
김정헌 언더독스 대표
“언더독스(Underdogs)는 사회혁신 회사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컴퍼니 빌딩(company building)’ 회사다. 사회혁신 스타트업을 자체 자회사 형태로 인큐베이팅하는 솔루션으로, 지난 3년간 5개사를 자회사·관계사 형태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소셜벤처 지원이 아이템이나 조직형태를 갖춘 곳에 이뤄진다면, 언더독스는 사회혁신가 개인에게 집중해 아이템을 매칭하고 실제 비즈니스화를 돕는다. 정부가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뿐 아니라 새로운 방식인 ‘컴퍼니 빌딩’ 형태의 지원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최경희 튜터링 공동대표
“대기업의 고용은 전체 인원수 대비 줄어들고 있으며, 신규 채용 없이 퇴사자만 늘려온 곳도 있다. 반면에 배달의민족, 토스(Toss) 등 스타트업은 각각 500명, 140명 등으로 지속적으로 채용을 늘려왔다. 같은 DNA를 가진 한 기업이 4000명을 뽑느니, 4000개 스타트업이 1명씩을 뽑는 것이 더욱 혁신적인 일이다. 강아지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쓰고, 구글 닥스 등 협업 툴(tool) 사용이 활발하며, 보고나 결재가 없는 스타트업의 혁신적 문화 역시 밀레니얼(millennials·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한 세대) 세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김우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 이사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은 하나의 관계망으로, 마포구 성산동을 중심으로 망원동, 상암동, 성산2동을 포함하는 커뮤니티다. 마을에서는 마을 어귀에 공영주차장을 두고 골목 안쪽에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도록 하는 것, 성미산마을의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같은 셰어하우스를 임대주택으로 제공돼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것 등을 꿈꾸고 있다. ‘작은나무’ ‘동네부엌’ ‘성미산밥상’ 등 마을의 작은 가게가 임대료 상승으로 문을 닫았는데, 임대료 걱정 없는 공간을 갖는 것도 꿈이다.”
차화숙 에이블세라미스트회 대표
“에이블세라미스트회는 도예가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도예를 가르치는 ‘장애공감도예코치’란 직업을 만들어 미래형신직업군으로 서울시 지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 민간자격을 신청했는데, 보통 3개월 걸리는 처리 과정이 무려 1년 4개월이 걸렸다. 주무부처를 선정해야 하는데, ‘장애’ 때문에 보건복지부로, ‘코치’ 때문에 교육부로 5개월간 이관됐고 혼동되는 단어를 제하는데 또 5개월이 더 걸렸다. 결국 최종 등록된 이름은 ‘공감도예전문가’다. 이런 작은 일에 힘 빼는 과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원용숙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기술원
“과학기술도 공공적 역할을 강화해 국민 삶의 질에 기여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기술·공급자 중심이던 R&D(연구개발) 현장도 사회주도형, 사용자 중심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시민이 R&D에 참여해야 하는데, 현장 연구자들은 연구 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력과 재원이 없고, 동기부여도 필요하다. 시민이 노하우를 전수해도 특정한 직책이 없으면 자문비를 책정할 수 없는 부분과 시민과 만나는 세미나 등이 중요한 리빙랩(Living Lab·기술을 활용해 연구자와 사용자가 함께 생활 문제를 혁신하는 마을 실험실)의 연구사업비 비중이 낮은 부분도 개선이 필요한 점이다.”
황세원 LAB2050 연구실장
“사회혁신 정책은 층위·미션·임팩트가 다른 각 활동이 잘 이뤄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정부혁신, 정책혁신의 시도가 필요하며 정부의 시스템이나 결재방법 개선의 차원이 아니라 좀 더 담대하고 큰 제안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민간의 집단지성과 재원이 필요하다. LAB2050은 지방정부나 민간재원과 정책실험을 한 뒤 증거를 갖고 이를 정책으로 제안하는 작업을 해나가려 한다.”
정서화 한국행정연구원 박사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는 정부가 ‘정책실험실(policy lab)’을 운영하고 있다. 정책실험은 과거 정부 혼자 했던 정책결정을 많은 행위자가 모여서 같이 하는 공동의 정책설계과정이다. 정책실험실이 정부 내에 설치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책실험으로 민간과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재조정한다면, 여러 주체의 노하우가 모여서 정책이 학습 되고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도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