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폐기물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메리우드&비페이블

화장품 공병으로 만든 나무, 페인트통과 상수도 파이프관을 이용해 만든 놀이 시설들로 꾸며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끝에 올해 9월 개관한 ‘서울 새활용 플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새활용플라자로 가는 길. 화장품 공병으로 만든 나무가 서 있다. ⓒ김민정 청년기자

새활용이란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순 우리말. 버려지는 자원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활용방법을 바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단순히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보완해, 상향된 가치의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자원순환의 한 방법이다.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부지 내에 만들어진 서울 새활용플라자는 지하 2층~지상 5층, 연면적 1만6530㎡ 규모로 들어섰다. 지하 1층에는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소재은행’과 연 6만톤의 중고물품을 재분류 및 가공하는 ‘재사용 작업장’이 들어서고, 지상 1층에는 예비 창업자들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꿈꾸는 공장’이 조성된다. 지상 3~4층에는 32개 업체와 개별 공방이 선발돼 입주해있는데, 새활용 기업, 연구소, 협회, 디자이너, 작가들의 스튜디오 및 쇼룸이 있어 자유 관람도 가능하다. 이곳에서 폐기물의 새활용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업사이클 브랜드 ‘메리우드 협동조합’과 ‘비페이블’을 만났다.

서울 새활용 플라자

◇나무로 배우는 ‘함께’의 가치, ‘메리우드 협동조합’

“나무만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거든요. 자연에서 오는 느낌, 편안하고 따뜻한 그 느낌에 빠져서 나무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메리우드는 김영애(50) 대표 등 6명의 여성 목공교육사가 설립한 협동조합이자,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조합원들은 목공교육, 친환경 제품 제작에 이어 업사이클 인테리어까지 그 영역을 넓혀왔다. 업사이클 인테리어의 장점은 최소한의 변화로 유니크한 인테리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메리우드의 조합원들 ⓒ박창현 사진작가

“굳이 모든 것을 뜯어내어 새로운 것들로 채우지 않아도, 기존 가구를 리폼하거나 디자인과 구조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느낌이 많이 달라져요. 업사이클 인테리어는 가능한 기존의 구조를 살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건축폐기물도 줄어들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절감할 수 있죠.”

업사이클 인테리어의 소재는 폐목재나 폐가구. 의외로 폐자재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설현장 등에서 버려지는 폐목재가 워낙 많고, 아파트에 버려지는 원목가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폐목재를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과정에서 ‘공간’과 ‘소음’의 문제가 가장 큰 제약이 된다고 한다.

“특히 제조업이나 목공 쪽은 가공할 때 해체, 분리, 세척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작업장이 필수예요. 하지만 소음 때문에 쉽게 공간을 빌리지 못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새활용 플라자에 입주하면서 업사이클 산업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지만, 아직 부가가치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요.”

인터뷰 중인 김영애 대표 ⓒ박창현 사진작가

메리우드는 업사이클 인테리어 업체로서 친환경 목공을 주된 가치로 여기는 동시에, 협동조합으로서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중요시하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청소년 진로 직업 체험교실을 진행하는 이유다. 지금까지는 목공업이 투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남성들만의 일자리라고 여기는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목공교육을 받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목공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목공업이 양성평등 작업군으로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메리우드는 목공업을 여성의 신 작업군으로 발전시키는 좋은 모델이 되었다는 외부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학교 부적응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목공 교실이에요. 목공은 학생들의 정서 안정과 집중력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 95퍼센트가 넘는 수강생들이 자격증을 얻는 성과를 거뒀고, 단순한 체험을 넘어 목공 관련 분야에 진출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메리우드(MERRYWOOD)란 이름은 ‘나무와 함께 하는 즐거운 세상’이라는 의미. 김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폐목재로 만든 화분 ⓒ박창현 사진작가

“아직은 업사이클 인테리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이미 사용된 재료나 폐목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업사이클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있는데 그 인식 변화가 쉽지 않죠. 인테리어를 할 때 전부를 새 것으로 개조할 필요 없이, 기존의 것을 살리면서 약간의 변화로도 충분히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요. 또 인테리어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목공 DIY 문화가 확산되고, 그게 업사이클 인테리어에 대한 인식 변화로 연결되는 데 저희가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보는 업사이클링 ‘비페이블’

“페트병과 페트병을 연결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디자이너인 이재호(43) 대표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주는 편이 아니었다. 대신 아이와 함께 페트병을 이용한 만들기나 놀이를 자주 즐겼다. 어느 날 아이가 페트병을 야구배트 삼아 노는 모습을 보던 이씨는 페트병과 페트병을 연결해 쉽게 야구배트를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페트병 입구는 너무 짧아 야구배트 손잡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페트병 등의 재활용에 대한 환경교육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바툴과 페트병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로 꾸며진 스튜디오 내부 ⓒ박창현 사진작가

“페트병을 이용한 유치원의 재활용 수업은 환경수업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트병을 연결하려고 테이프 등 온갖 부자재를 붙이는 바람에 분리수거가 더 힘들어 졌거든요. 쓰레기로 더 큰 쓰레기를 만드는 것과 같았죠.”

그렇게 개발된 제품이 비페이블의 첫 상품인 ‘바툴(VATOOL)’이다. 바툴은 페트병을 재사용하여 교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용 블록이다. ‘Various tool’의 줄임말로 바툴과 페트병의 입구를 연결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비페이블은 서울 새활용 플라자에 입주한 다른 업체들과 업사이클을 대하는 방향이 다르다. 대부분의 업체는 폐기물을 직접 재사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반면, 바툴은 소비자로 하여금 폐기물인 페트병을 직접 재사용하게 하기 때문. 

바툴과 페트병을 연결하는 방법 ⓒ비페이블

“작가가 업사이클 작품 하나하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플랫폼으로서 아이들이 직접 업사이클링을 경험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어요. 작가의 업사이클링 활동만으로는 플라스틱 등의 폐기물 생산량을 따라잡지 못 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리고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를 배제하더라도 그 자체로 소비자들이 구매하고 싶어지는 상품성과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대표는 “바툴을 통해 창의성도 기르고, 자연스레 환경교육도 가능하다”고 했다. 

“페트병은 모양과 종류가 다양해서, 바툴로 페트병을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기를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주변에 있는 페트병을 장난감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아요. 바툴을 이용한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페트병을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새롭게 창작할 수 있는 소재로 인식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사고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 그 이후엔 페트병이 아니라 다른 폐기물을 보면서도 그걸 다시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업사이클링이 제대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 새활용플라자 306호에 입점한 비페이블 ⓒ박창현 사진작가

비페이블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사용(reuse)’을 넘어서 ‘줄이기(reduce)’을 실천하는 것. ‘Design for Reuse’(재사용을 위한 디자인)을 콘셉트로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비페이블은 바툴 외의 신제품도 곧 출시할 계획이다.

“‘사용된 페트병은 결국 버려질 텐데 이게 어떻게 업사이클링이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바툴을 사용하는 동안 다른 장난감을 사는 것도 줄어들겠죠. 새로운 장난감을 사지 않고, 다른 용도로 이미 만들어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활용한다면 그게 ‘reuse’가 ‘reduce’를 가져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플라스틱 페트병이 장난감을 대체한다면, 결국 플라스틱의 사용과 소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거죠.”

김민정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8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