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물을 부어도 소용없는, 구멍 난 항아리가 있다. 한 사람이 큰 바가지로 물을 붓지만 금세 메마른다. 다른 한 사람은 실과 바늘로 구멍을 메우지만 요원하다. 전자는 사회문제에 대한 ‘지원’, 후자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
결과와 성과가 있다. 결과는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100번 부었다.’ 또는 ‘항아리의 구멍에 100번의 바느질을 했다 ’이고, 성과는 ‘그래서, 무엇이 변화하였는가?’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100번의 물 붓기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상품이 판매됐다고 마케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판매는 결과일 뿐이다. 우리의 상품을 통해 고객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마케팅의 성과다.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신발, 앉아 있는 책상, 보고 있는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 마시고 있는 커피가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그것들로 인해 당신의 삶이 더 나아졌다면, 그 기업의 마케팅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기업이 상품을 만드는 것도, 비영리 단체가 캠페인을 하는 것도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려 함이다. 사회적 경제의 기업은 상품을 몇 개 팔 것인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변화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소비는 상품을 탐색하고 구매하고 사용하며, 만족도에 따라 평판을 확산하는 등의 활동을 포함한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져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졌기에, 이제는 윤리적 소비 시대를 맞이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을 여러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치의 교환’이다. 공급자가 상품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면 수요자는 그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교환은 완성된다. 이때의 교환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공급자가 상품이 고객에게 얼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 먼저 결정하고 시장에 내놓으면, 수요자는 그것이 합당하다고 판단될 때 공급자의 제안을 수용하고 대가를 지불한다. 수요자가 합당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게 된다. 결국, 마케팅이 지향하는 것은 수요자로 일컬어지는 사람의 삶이다.
마케터는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소비를 디자인한다. 판매 수량이나 매출이 아니라, 고객이 어떤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며 사용할지를 설계하고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보건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건강 식단표나 식재료의 영양 성분 표시 등을 화려한 그래프로 만들어 배포한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먹을까? 웨스트버지니아대학의 교수이자 보건연구원인 ‘스티브 부스–버터필드(Steve Booth-Butterfield)’와 ‘빌 레거(Bill Reger)’도 같은 고민을 했다. 여러 음식 중에서도 그들이 주목한 것은 우유였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우유를 마시고, 우유가 칼슘의 보고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우유가 미국인의 식생활에서 포화지방의 가장 큰 원천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다. 그들의 캠페인은 간략했다.
“우유 한 잔에는 베이컨 다섯 줄에 든 것과 같은 양의 포화지방이 들어있습니다. 마트에서 1% 저지방 우유를 집으세요!”
웨스트버지니아의 두 지역에서 TV, 신문, 라디오에 2주 동안 광고를 내보냈고, 기자회견도 했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에 저지방 우유의 시장점유율은 18%였으나, 캠페인 직후 41%로 뛰었고 6개월 후에도 35%를 유지했다.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왜, 변화가 필요한가’이다. 변화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해결되지 않는지 등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그 답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생수를 담은 플라스틱병은 종이팩보다 3배 이상의 석유 소비를 일으키며, 재활용과 재생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한 마디로 줄이면 ‘종이팩 물이 더 낫다(Boxed Water is Better)’이다.
간결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카피라이팅 같은 전문 영역일 수 있다. 변화를 설계하는 리더나 마케터는 문장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해야 한다.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사람들이 왜 변화가 필요한지 물을 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 저지방 우유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라는 모호한 것이 아니었다.
둘째, 변화 이후를 가시적으로 그려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시적’이다. 사람의 뇌는 정보를 이미지로 처리하는 것에 익숙하다.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들으면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글자로 행복을 정의하지 않고 행복한 장면을 떠올린다.
국내의 한 3D 프린터 업체에서 맹학교 졸업생을 위해 앨범을 만들었다. ‘손으로 보는 졸업 앨범’이다. 많은 사람이 3D 프린터로 무엇을 만들어서 팔 것인지를 생각할 때, 기술이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를 상상했다. (물론, 광고대행사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기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간결하게 잘 정리한 사례다.
셋째, 변화를 측정하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팀원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 요소는 ‘일의 진전’이다.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일이 점점 더 나아질 때 가장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변화 속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면 금세 지쳐버리고 만다. 우리가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외국어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없어서다.
넷째, 효율성이 아니라 효과성에 집중해야 한다. 효과성은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일을 찾아서 그것을 해내는 것이고, 효율성은 적은 자원을 투자해 큰 성과를 내는 것이다.
‘HWCF(Healthy Weight Commitment Foundatio)’는 비만, 특히 아동 비만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가진 대형 소매 기업, 식음료 기업, 비영리 기관 등이 모여 설립한 재단이다. 2010년 HWCF에 속한 16개 식품 기업은 ‘열량 감소 선언’을 했다. 2007년에 판매한 60.4조 칼로리에 대비해 2015년까지 1.5조 칼로리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들의 전략은 명확했다. 저열량 제품을 개발하고, 기존 제품의 열량을 낮추고, 1회 제공량을 조정해 개별 포장 당 열량을 낮췄다. 코카콜라(Coca Cola)는 0㎈ 자연 감미료를 사용하며, 캠벨 수프(Campbell Soup)는 한 봉지에 96㎈ 과자를 출시하고, 네슬레(Nestle)는 맛을 유지하면서 기름이나 설탕의 양을 줄이는 방식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진이 이 캠페인을 추적 조사한 결과, 애초 목표보다 3년을 앞당긴 2012년에 6.4조 칼로리 감소에 성공했으며, 미국 인구당 1일 78㎈를 감소시킨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6개 기업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15.3억 달러 증가했는데, 저열량 제품군이 전체 매출의 50.5%를, 전체 매출액 증가분의 82%를 차지했다. 16개 기업으로서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저열량 포장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효율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효과성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다시 구멍 난 항아리로 돌아가 보자. 한 사람이 아직도 실과 바늘로 구멍을 메우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전히 물은 새지만, 그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구멍이 메워질 것 같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를 돕기 시작한다. 문제가 해결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다. 첫 번째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다.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두 번째는 모든 것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상품도 완벽하고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니 이제 당신이 1억만 투자하면 사업이 성공한다고 말한다. 당신이라면 여기에 투자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기에 개선할 여지도 없고, 도움을 줘봐야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이미 완벽한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세 번째는 거의 모든 것이 준비되었지만 한 두 가지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다. 두말할 것 없이 세 번째 사람이 가장 잘 도움을 받는다. 첫 번째는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될 것 같지 않은’ 사람이고, 세 번째는 ‘될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다.
맨 처음 항아리의 구멍을 메울 때는 전혀 될 것 같지 않다. 점점 구멍이 메워질 것 같을 때, 사람들은 그 일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왜 변화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어떤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문제 해결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확한 변화의 상을 제시하고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서 점점 많은 사람이 동참한다.
사회적 기업이든 기업의 사회공헌이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 문제라는 것은 사회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많은 사람이 동참할 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업의 역할은 사회가 동참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