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기부도 대신하는 시대…인간에 남은 역할은? 

KSoP 필란트로피포럼 2026, ‘AI와 필란트로피의 미래’ 논의
모금·교육·기업재단 등 현장 사례로 살펴본 AI 시대 인간의 역할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미국 AI 연구기관 METR에 따르면 AI가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의 길이는 약 7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났으며, 최근 1년 동안에는 그 주기가 약 4개월로 단축됐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8년에는 일주일, 2029년에는 한 달 분량의 업무까지 AI가 수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에 기부와 나눔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5일 서울 상명대학교에서 열린 ‘KSoP 필란트로피포럼 2026’에서 이같은 논의가 진행됐다. 한국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KSoP)와 상명대학교가 공동 개최한 이번 포럼은 ‘AI와 필란트로피의 미래: 알고리즘에서 알트루이즘으로’를 주제로 진행됐다. 알트루이즘(Altruism)은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이타주의를 뜻한다. 발표자들은 비영리 현장과 모금, 대학 교육, 기업공익재단의 사례를 통해 AI 시대에도 인간이 맡아야 할 역할을 짚었다.

◇ “AI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AI의 확산은 비영리 현장에 새로운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특히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일상을 개선하는 데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기조강연에 나선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는 장애아동 재활치료와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AI 기술의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푸르메재단에서는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아동의 재활훈련에 로봇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AI 기반 스마트홈 기술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음성 명령으로 문을 열거나 커튼을 조작하는 등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에게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살아갈 기회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백 대표는 AI를 활용한 해킹과 사이버 공격 등 기술의 부작용도 함께 지적했다. 그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도구가 될 수도,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AI가 모금 기술 대신하면 모금가는 ‘관계 형성’에 집중 

AI가 비영리단체의 업무를 바꾸면서 모금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김자유 누구나데이터 대표는 이를 모금가가 본래의 역할을 되찾을 기회로 해석했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비영리단체의 디지털 모금을 지원하면서 모금 담당자들이 웹사이트 제작, 디지털 광고, 기부자 데이터 분석 등 마케팅 업무에 많은 시간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누구나데이터가 개발한 모금 페이지 플랫폼은 현재 580개 비영리단체가 활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디지털 모금 기술이 확산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모금가들이 점차 ‘마케팅 기술자’가 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졌다. AI가 이러한 기술적 업무를 대신하게 되면 사람은 기부의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AI가 이러한 기술적 업무를 대신하면 모금가는 기부자와의 관계 형성이라는 본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며 “모금가는 기부자가 자신의 가치관과 관심사에 맞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도록 돕는 ‘자기다움 프로듀서’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AI 시대 필란트로피 교육의 핵심은 ‘공감과 실천’

모금 현장에서 기부자의 가치관과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면, 대학에서는 그 가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AI가 지식의 탐색과 분석을 돕는 시대일수록 그 지식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동수 상명대학교 교수는 ‘AI 시대 대학의 필란트로피 교육’을 주제로 지난 10년간 운영해 온 교양수업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2017년 ‘필란트로피의 이해와 실천’이라는 교과목을 개설했다.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론보다 실천이다.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직접 찾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해 실행하도록 한다. 환경오염과 유기동물, 학교폭력, 악성 댓글, 사회적 불평등 등 학생들이 선택한 문제도 다양하다.

실제 수업에서는 6·25 참전용사를 기억하기 위한 손글씨 챌린지와 후원 안내 포스터 제작, 환경정화 활동 등이 진행됐다. 

이 교수는 “AI가 지식을 제공할 수 있어도 그 지식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며 “대학이 전공지식과 전문성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란트로피 교육의 목적도 거액의 기부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시간과 능력, 지식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 “빠른 정답보다 오래 걸리는 변화에 주목해야”

AI가 빠르게 답을 제시하더라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이지영 현대차 정몽구 재단 전략·커뮤니케이션 파트장은 ‘정답을 넘어, 정도(正道)를 향해’를 주제로 기업공익재단의 역할을 설명했다. 이 파트장은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자본’과 다른 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촉매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례로는 기후·자원·생태 분야 연구·창업팀을 3년간 지원하는 ‘CMK 그린 소사이어티’를 소개했다. 재단은 1기 9개 팀에 평균 5억 원을 지원했으며, 이후 약 200억 원의 민간 투자와 정부 지원사업 자금이 연계됐다.

이 파트장은 “AI가 답을 만드는 시간과 사람과 사회가 실제로 변화하는 시간은 다르다”고 짚으며 “기업공익재단은 당장의 성과보다 새로운 시도가 현장에서 검증되고 확산할 때까지 필요한 자원과 시간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KSoP)는 필란트로피의 연구와 교육,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 학술단체다. 필란트로피 관련 조사·연구와 학술자료 발간, 전문가 교육, 세미나 등을 진행하며 비영리 분야의 전문성 강화와 필란트로피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이승훈 을지대 의료원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가 수석부회장, 홍원준 명지대 교수 등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