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비즈니스의 미래는 사회문제 해결에 있죠

크리스티안 네슬레 지속가능경영 부사장 단독 인터뷰

13년간 적십자 분쟁지역 총괄하던 NGO 리더의 네슬레행
인권지침 최초 도입, 코코아 농장의 아동 노동 해결 지속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은 통합…CEO가 총괄 책임자 돼야”

세계 최대 식품 회사 ‘네슬레(Nestlé S.A.)’는 올해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발명가이자 약사였던 앙리 네슬레가 만든 첫 제품은 모유 수유가 어려운 미숙아를 위해 만든 영·유아식이다.

‘생명을 구하는 혁신’을 강조하던 그의 비전은 150년 후 연매출 110조원을 버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189국 진출, 직원 약 33만5000명, 브랜드 2000가지, 매일 제품 10억개 이상 판매라는 ‘숫자’ 뒤에 숨은 지속 가능한 이 기업의 비결은 뭘까.

네슬레는 지난 8월 중순 전 세계 언론을 초청, 150년 기업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에선 ‘더나은미래’가 유일하게 초청받아 크리스티안 프루티거(Christian Frutiger) 네슬레 지속가능경영 및 사회문제 총괄책임자(Global Head of Public Affairs·부사장)를 단독 인터뷰했다.

프루티거 부사장은 기업이 아닌 NGO 출신이다. 13년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서 콜롬비아, 서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의 인도주의 및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했고, 2007년 네슬레에 합류했다.

크리스챤 프루티거 네슬레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 헤드(Global Head of Public Affairs)는 네슬레의 이슈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주요 공급망, 인권, 물, 임산부 및 영유아 영양 등 CSV를 실현해온 베테랑이다.
크리스챤 프루티거 네슬레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 헤드(Global Head of Public Affairs)는 네슬레의 이슈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주요 공급망, 인권, 물, 임산부 및 영유아 영양 등 CSV를 실현해온 베테랑이다.

-오랜 기간 국제 NGO에서 일하다가 네슬레에 합류한 계기가 있는가.

지난 20년간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인권 및 개발 협력 관련 업무를 진행하면서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제 NGO들엔 개도국 농가의 경영 전략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고, 현장엔 이를 돕는 파트너 기업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NGO와 기업 각자가 가진 한계치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기업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네슬레가 그렇다. 네슬레에 합류할 당시 이제 막 CSV(Creating Shared Value·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공유 가치 창출) 용어가 도입되는 초기 단계였다. 나도 네슬레의 CSV와 함께 성장했다.

-네슬레에서 직접 일해보니 어떤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기업의 성장을 함께 이뤄내는 게 실제 가능한지에 대한 궁금함이 많다.

얼마 전 네슬레의 폴 볼케 CEO가 재미있는 발표를 했다. ‘영양·건강·웰니스를 중심으로 개발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비교했을 때 전자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성과는 오랜 시간 투자한 후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실제로 네슬레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100년 이상 장기적인 투자를 한다. 아동 노동 착취 문제가 계속된다면 코코아 공급이 어려워지고, 농부들이 코코아 생산을 중단하면 코코아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회사 제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뿐인가. 지난 20~25년간 포장재 절감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결과 13억5000만스위스프랑(약 1조6700억원)을 절감했다. 소비자, 환경을 생각한 장기적인 투자가 비즈니스에도 도움을 준 것이다.

-네슬레 CSV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무엇인가.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 서아프리카 14개국을 총괄할 당시 네슬레의 코코아 농장의 아동 노동 문제가 이슈가 됐다. 아동 노동은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를 해결하려면 학교와 위생 등 종합적 대책이 필요했다. 네슬레는 공정노동위원회(FLA)와 함께 아동 노동 모니터링 개선 시스템(CLMRS)을 구축하는 등 ‘네슬레 코코아 플랜(Nestlé Cocoa Plan)’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코코아 농부 4만5000명을 훈련해 농가 소득을 높이고, 40개 학교를 설립했으며, 여자 아이들이 화장실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했다.

(네슬레는 2011년 유엔이 발표한 ‘비즈니스와 인권’ 지침을 가장 먼저 도입해 본사는 물론 전 세계 협력업체, 공장 관리자, 조달업체 등에 모니터링과 교육을 해왔다.)

네슬레 본사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원칙 및 비전을 설명하는 전시관 등이 곳곳에 설치돼있다.
네슬레 본사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원칙 및 비전을 설명하는 전시관 등이 곳곳에 설치돼있다.

네슬레는 물 사용량을 10년 전 대비 41%까지 줄였고, 2014년엔 멕시코에서 외부 공급 용수를 전혀 쓰지 않는 ‘제로 워터(0% Water)’ 공장도 문을 열었다. 프루티거 부사장은 “CSV는 비즈니스에 완벽하게 통합돼 있다”고 말했다.

-네슬레의 CSV 성과와 임팩트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의 핵심 분야는 영양, 건강이다. 농업이나 원재료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CSV의 가장 큰 주제 또한 영양, 농촌 지역 개발, 물이다. 2년마다 중요한 이슈를 선정하고 부문별로 달성한 목표치를 평가한다.

본사는 물론 네슬레 지사의 모든 부서는 네슬레가 약속한 지속 가능성 목표에 따라 이행 여부 및 성과를 평가받고, 최고경영진은 이에 따른 책임을 진다.

경영진, 임원, 공장 관리자 등 모든 레벨을 위한 CSV 교육과정도 진행된다.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적극 수렴한다. 이런 외부 평가 방법과 내부의 약속이 함께 이뤄지고, 이 모든 것은 지속 가능 보고서에 공개된다.

-한국엔 기업의 사회공헌, 사회적책임(CSR), 공유 가치 창출(CSV) 용어가 혼용되고 부서별로 그 역할이 쪼개져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반면 나이키, 듀폰, 코카콜라, 지멘스,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성 최고 책임자(Chief Sustainability Officer·이하 CSO)’를 임명해 비즈니즈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네슬레는 어떠한가.

지속 가능 경영의 핵심은 ‘통합·흡수’다. 비즈니스에 CSV 전략이 완벽히 통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네슬레의 지속 가능 경영 및 CSV는 폴 볼케 CEO가 이사회 의장과 함께 총지휘한다. 네슬레 CEO와 최고경영진으로 구성된 네슬레 공유가치창출 이사회(Nestlé-in-Society Board)에서 전략적인 의사 결정이 내려진다. 세부적으론 ▲물 ▲이슈 라운드테이블 ▲브랜드&CSV ▲지속 가능성과 영양을 위한 R&D 분야로 나눠 1년에 몇 차례씩 위원회가 열린다. 각 분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CSV 자문위원회도 1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네슬레는 국제적 수준의 이해관계자 포럼(CSV 글로벌 포럼), 70국의 소매업·제조업·서비스업체 경영진 400명과 네슬레 CEO가 함께 토론하는 ‘소비자 포럼(The Consumer Goods Forum)’도 열고 있다.)

네슬레 글로벌 지배구조 /네슬레 제공
네슬레 글로벌 지배구조 /네슬레 제공

-ROI(투입 대비 성과)와 CSV 전략을 둘러싸고 부서 간 충돌이 생기진 않는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가.

당장 눈앞의 수익을 위해 어떤 아이디어가 좋아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네슬레는 건강, 안전, 국내법과 국제법의 절대적인 준수 등 양보할 수 없는 원칙들이 존재하고 직원들은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ROI와 CSV 간의 충돌이 있을 경우 해당 이슈는 상위 레벨에 보고되고, 소비자들에게 약속한 목표가 최고 의사 결정 과정의 기준이 된다.

만약 지속 가능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네슬레가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한 약속(Commitment)을 이행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투명성이 중요한 이유다.

-네슬레의 지속 가능 경영 최고 책임자로서 꼭 이루고픈 목표가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2030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같은 선상에서 지속 가능 경영 전략과 계획이 세워질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CSV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고 싶다.

지난 12년간 네슬레는 영양 섭취 접근성 지수(ATNI),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등 주요 지속가능경영지수에서 높은 평가와 신뢰를 받아왔다. 과거 네슬레를 비판하던 NGO 옥스팜(Oxfarm)은 지난해 전 세계 식음료 회사 10곳 중 네슬레를 식품 안전성 증진 부문 2위로 선정했다.

이젠 CSV를 소비자에게 가져가는 것이 목표다. 1차적으로는 네슬레 임직원 약 33만5000명을 CSV 홍보대사로 만들고, 이후 소비자를 넘어 투자자들과 CSV를 위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한국 기업들에 조언을 부탁한다.

20년 전 콜롬비아 남부 내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기자 한 명이 다가와서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와 희망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평화가 찾아와서 더 이상 국제적십자위원회가 필요치 않길 바란다’고 답했다.

실제로 20년이 지난 지금 콜롬비아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버지로서, 소비자로서 네슬레가 사람과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 인류와 세계를 위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비즈니스의 미래다. 이러한 기업만이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아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인터뷰=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
정리=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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