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화면 속 아바타? 얼굴 대신 ‘캐릭터’로 출근한 청년들 [르포] 

고립·은둔청년 6명 일한 ‘낯가리는 카페’
건보공단·청년재단 등 협력…사흘간 600명 방문
“사람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왜 캐릭터로 대화해요?” 지난 2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 키오스크 앞에 선 손님이 화면 속 버추얼 캐릭터에게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캐릭터가 답했다. “저희는 눈 마주치기가 어려워서요.”

이곳은 고립·은둔청년의 일경험을 위해 마련된 팝업 프로그램 ‘낯가리는 카페’다.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서울 성동구 성수지앵에서 운영됐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티는 1000원, 그 외 음료는 2000원에 판매됐다. 사흘간 약 600명의 고객이 방문했다. 

이번 행사는 고립·은둔청년에게 실제 일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4개 기관이 각자의 자원과 전문성을 모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는 사업 기획과 총괄, 홍보를 담당했으며, 임직원의 90% 이상이 가입한 20년 전통의 ‘하늘반창고봉사단’이 모은 기금 1000만 원을 운영비로 지원했다. 청년재단과 안무서운회사는 참여 청년의 모집과 선발, 사전 교육을 맡아 당사자들의 준비를 도왔다. 여기에 오버더핸드가 가상 캐릭터 구현을 위한 버추얼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총 6명의 청년이 2명씩 3교대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진승배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과장은 기획 배경에 대해 “고립·은둔청년 관련 사업을 조사해 보니 가상의 회사에 출근하거나 취미 활동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실제로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며 “그래서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대면 소통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맞춤 대안’

‘낯가리는 카페’의 가장 큰 특징은 청년들이 손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여 청년들은 카페 4층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노트북으로 직접 만든 버추얼 캐릭터를 조작하며, 화면으로 보이는 1층 손님을 맞았다. 캐릭터 이름도 청년들이 직접 정했다. ‘향’, ‘소금’, ‘리시아’처럼 저마다 다른 이름과 세계관을 가진 캐릭터들이 키오스크 화면 속에서 커피 주문을 받고, 손님과 대화를 나눴다. 

박재영 청년재단 팀장은 “고립·은둔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물리적·정서적 이유로 대면 자체가 어려운 이들도 있다”며 “이번 사업은 일반적인 대면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런 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대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대화 장치로 손님과 자연스러운 ‘소통’ 유도 

고립·은둔청년들이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도 이번 사업의 특징이다. 키오스크 앞에는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태블릿 질문 카드가 비치됐다. 손님이 다가오면 청년은 “안녕하세요, 낯가리는 카페입니다. 물어보고 싶은 점이 있으시면 편하게 물어보셔도 되고, 앞에 있는 질문 카드로 질문해 주셔도 좋습니다”라고 안내한다.

기자 역시 키오스크 앞에서 버추얼 캐릭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다. 직접 만든 소녀 캐릭터가 예뻐서 이유를 묻자 “우주에서 왔어요”라며 톡톡 튀는 세계관을 자랑했다. “상상력이 풍부하신 걸 보니 MBTI가 N이신가 봐요?”라고 묻자, “저는 INFP인데,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라며 스스럼없이 자신의 성격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성스러운 음료 설명까지 들은 뒤 음료를 주문했다.

현장을 찾은 신수민씨(28)는 버추얼 캐릭터와 닉네임의 의미부터 비가 오는 날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 씨는 “저도 고립·은둔을 경험한 적이 있어 당사자들을 응원하고 싶어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립 상태에 있을 때는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 부담스럽고 걱정된다”며 “익명성이 보장되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당사자들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 자신감 얻은 청년들…“사람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이번 일경험은 고립·은둔청년들에게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더해주었다. 실제로 3일 동안 매일 4시간씩 근무한 조성민(가명·21) 씨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조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업 스트레스와 책임감의 중압감으로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이후 각종 활동을 시도해보았지만 스스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고립의 늪은 더 깊어졌다. 최근 다시 에너지를 회복하며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던 중 만난 이번 경험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조 씨는 “불특정 다수를 만나 일하는 것 자체가 낯설고 두려웠다”면서도 “이번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에 사회에 나가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조금은 더 안정된 마음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업을 주관한 건보공단은 향후 프로그램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진 과장은 “버추얼 캐릭터 시스템이 정착되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청년들도 자택에서 시스템에 접속해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할 계획”이라며 “적용 범위를 카페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주민센터 안내 등으로 확장하여, 청년들이 억지로 집 밖으로 나오기보다 집 안에서라도 무언가를 시도하며 자신감을 얻은 뒤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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