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아시아 자본의 길을 찾다…900억 연결한 임팩트 리더

[인터뷰] 나이나 서브버왈 바트라 AVPN CEO  
700개 기관 묶은 범아시아 사회적 투자 네트워크 비결 
“공동 펀드·신뢰 플랫폼으로 네트워크 확장”

“아시아에는 자본이 많지만, 해결해야 할 복잡한 사회문제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 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나이나 서브버왈 바트라(Naina Subberwal Batra) AVPN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서울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진행된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임팩트 생태계의 병목을 이렇게 짚었다.

AVPN은 아시아 전역의 기부자, 재단, 임팩트 투자자, 기업, 정책결정자를 연결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자본과 자원이 현장으로 흐르도록 돕는 범아시아 사회적 투자자 네트워크다. 2011년 벤처 필란트로피 분야 인물인 더그 밀러(Doug Miller)가 설립했다. 

나이나 대표가 2013년 취임했을 당시 AVPN은 서구에서 발전한 ‘벤처 필란트로피’를 핵심 개념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벤처’는 비즈니스, ‘필란트로피’는 자선으로 받아들여져 두 단어를 함께 이해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나이나 대표는 이 개념을 그대로 설득하기보다, 아시아에 이미 뿌리내린 기부와 자선의 문화를 더 넓은 사회적 투자로 확장하는 방향을 택했다. 기부자, 재단, 기업, 임팩트 투자자, 정부, 현장 조직을 연결해 보조금과 대출, 투자, 기업의 자원까지 필요한 곳으로 흐르도록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현재 AVPN에는 700여 개 회원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공동 펀드’라는 자금 조성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흩어져 있던 개별 기부금을 모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자금으로 키우는 방식이다. 대규모 기부를 공개적으로 내세우기 꺼리는 아시아 자산가들의 정서도 반영됐다. AVPN은 이를 통해 총 15개 이상의 공동 펀드를 조성했고, 모인 자금을 대형 국제기구가 아닌 아시아 지역 현지 비영리단체에 직접 지원했다. 기부자는 현장의 필요와 성과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현지 단체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자금을 집행하는 방식도 달랐다. AVPN은 기부자가 세부 용처를 정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 단체가 실제 필요에 따라 자금을 쓸 수 있도록 재량을 넓히는 ‘유연한 지원’을 강조했다. 인건비나 인프라 구축처럼 조직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도 자금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AVPN은 지난 3년간 이 같은 유연한 보조금 형태로 6000만 달러(약 908억 원) 이상을 집행하며 지역 조직들의 자생력 강화를 지원했다.

나이나 대표는 이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아시아 임팩트 생태계를 대표하는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개발 전문 매체 데벡스가 선정한 ‘2026 파워 50(Devex Power 50)’에 이름을 올렸고, 아시아 매체 태틀러의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Tatler Asia’s Most Influential)’에도 2021년과 2025년 선정됐다. 2019년에는 CSR웍스가 선정한 ‘지속가능성 분야 여성 리더(CSRWorks Top Sustainability Superwomen)’로도 꼽혔다. 

다음은 나이나 대표와의 일문일답.

―AVPN이 아시아 임팩트 생태계에서 연결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강한 현지 기반에서 나온다. AVPN은 아시아 16개국 이상에서 파트너십을 맺거나 직접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MYSC와 같은 기관과 협력하며 현지 조직들과 연결되고, 한국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또 하나는 평소 만날 일이 많지 않은 ‘뜻밖의 동맹’을 연결한다는 점이다. AVPN은 정부, 기업, 재단, 비영리단체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우리가 같은 문제를 풀고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새로운 협력이 시작된다.”

실제로 AVPN은 이러한 다중 이해관계자 협력 전략을 바탕으로 여러 핵심 의제에 대응하고 있다. AI 분야에서는 구글닷오알지(Google.org)와 협력해 ‘AI 오퍼튜니티 펀드(AI Opportunity Fund)’를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의 AI 활용을 돕고, 기술 변화로 일자리가 대체될 위기에 놓인 청년, 여성, 노동자에게 새로운 역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교육 분야로도 확장해, 대학생뿐 아니라 12~16세 청소년도 AI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구글의 기금을 바탕으로 한국, 인도, 싱가포르, 일본 등의 현지 대학과 비영리단체가 커리큘럼 설계와 프로그램 실행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보건 분야에서는 ‘에쿼티 헬스 얼라이언스(Equity Health Alliance)’를 통해 민간 필란트로피, 기업, 정부, 비영리단체가 협력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핵심 의제 중 하나인 뎅기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정책 개선, 백신 접근성 확대, 제조 및 지역사회 보급 등을 아우르는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기부자와 투자자가 현장 단체를 신뢰하고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AVPN은 이를 어떻게 돕고 있나.

“기부자나 투자자는 좋은 의제가 있다는 것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단체가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그 단체가 신뢰할 만한지, 자금이 투입됐을 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AVPN은 투명성과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 통화청(MAS)과 함께 구축한 ‘임팩트 콜랩(Impact Collab)’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전역 1000곳 이상의 비영리단체 정보를 모으고 실사를 거쳐, 펀더가 관심 있는 의제와 단체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장애인 교육을 지원하고 싶다면, 이미 검증된 관련 비영리단체를 찾아 연결해주는 식이다.” 

―펀드 운용에서 ‘유연한 자금 지원’을 특히 강조하던데.

“보통 펀더들은 ‘아이 10명을 교육하라’며 사용처를 꼬리표처럼 세세히 정해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사 훈련이나 화장실 보수가 더 시급할 수 있다. 우리는 목표만 공유하고, 돈을 어떻게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일지는 현장에 맡긴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팀과 리더십’을 믿고 투자하듯, 비영리단체의 리더십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유연한 자금에도 책임성은 있다. 다만 그 책임성의 기준을 비영리단체와 함께 합의한다는 점이 다르다.”

―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 대해 소개해달라. 

“AVPN 글로벌 콘퍼런스는 아시아 각국의 정부, 기업, 재단, 임팩트 투자자, 비영리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임팩트 생태계 행사다. 2013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홍콩, 방콕, 아부다비 등 아시아 주요 도시로 무대를 넓혀왔다. 지난해 홍콩에서 개최한 ‘2025 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콘퍼런스는 오는 8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며, 주제는 ‘행동을 위한 청사진’이다. 논의에 그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실제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하는 자리로, 2000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AVPN 글로벌 콘퍼런스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협력 사례로 ‘기후 및 보건 라이트하우스(Climate and Health Lighthouse)’를 꼽을 수 있다. 행사에서 만난 재단과 패밀리오피스들이 함께 조성한 500만 달러(약 75억 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로, 기후와 보건이 교차하는 지점의 비즈니스 솔루션에 투자한다. 실제로 기온 상승에 따른 감염병 증가, 농업 피해, 고용 문제 등에 대응하는 아시아의 7개 솔루션에 투자를 집행했다. 

―아시아 임팩트 투자 시장은 지금 어떤 단계이며, 더 커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아시아 내에서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실제 투자되는 자본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가장 큰 장애물은 ‘임팩트 투자는 수익률이 낮다’는 오해다. 임팩트 렌즈로 투자하면 돈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기후위기나 에너지 변동성 같은 사회·환경적 리스크가 커질수록, 이를 해결하는 기업과 기술의 가치는 훨씬 커진다. 장기적으로 지구와 공동체에 투자하는 것이 더 높은 회복력과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서사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서구권처럼 연기금이나 대학기금 같은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한국 임팩트 생태계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역할은 어떻게 보는가. 

“한국은 뛰어난 기술력과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이미 갖춘 나라다. 특히 지방정부가 직접 임팩트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것은 아시아에서도 흔치 않은 훌륭한 혁신 사례다. 이제 한국은 스타트업 위주의 초기 투자를 넘어, 유니콘을 길러내는 ‘스케일업(Scale-up) 투자’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향후 한국의 고도화된 자본과 헬스케어, 기후테크 기술이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체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길 바란다. 내년 AVPN 글로벌 콘퍼런스를 서울에서 개최해, 한국의 리더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아시아 무대에서 더 자신 있게 공유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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