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 인사이트] 숫자로 잡히지 않는 기부는 기부가 아닌가

필란트로피는 흔히 기부금의 규모나 기부 참여율로 설명된다.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부했는지, 총 기부금은 얼마인지, 국내총생산이나 국민총소득 대비 기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가 주요 지표로 제시된다. 그러나 필란트로피를 숫자로 측정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선다. 무엇을 기부로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숫자로 포착되지 않는 나눔은 필란트로피가 아닌가.

인디애나대학교 로버트 페이턴(Robert Payton) 교수는 필란트로피를 “공익을 위한 자발적 행동(voluntary action for the public good)”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의 핵심은 두 가지다. 행동의 목적이 공익(public good)을 향해야 하며, 동시에 그 행동은 자발적(voluntary)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실제 기부 현장에서도 중요하게 적용된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NCSU) 펀드레이징팀에서 근무하는 릴리 에드먼슨(Rilly Edmondson) 씨는 조건이 붙은 기부는 대학이 원칙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특정 상품 판매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방식의 캠페인으로 조성된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 기부가 사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전제로 할 경우, 이를 자발적인 공익 추구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익을 위한 자발적 행동”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발적이고 공익적인 행동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있는가. 지금의 측정 방식은 필란트로피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

◇ 필란트로피 측정의 국제적 흐름

전 세계 필란트로피 연구자들은 국가별 기부 수준과 필란트로피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Giving USA, 영국 자선지원재단(CAF·Charities Aid Foundation)의 Giving Survey, 캐나다의 CSGVP(Canada Survey of Giving, Volunteering and Participating), 네덜란드의 Giving in the Netherlands Panel Survey 등이 있다.

비서구권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JGVS(Japan Giving Research Project), 대만의 Taiwan Social Change Survey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역시 사회조사, 재정패널, 한국복지패널, 도시정책지표조사, 서울시복지패널, 아름다운재단의 기빙코리아(Giving Korea) 등을 통해 기부 참여율과 기부 규모를 추적해왔다. 이 가운데 기빙코리아는 한국의 기부 참여율과 기부 규모를 지속적으로 살펴온 대표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필란트로피 지수를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비킹(Wiepking)과 핸디(Handy)가 2018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국가 차원의 필란트로피 지수를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19개국에 불과했다. 한 국가의 필란트로피를 측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적·관리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전문적인 작업이다.

◇ 무엇을 기부로 인정할 것인가

기부지수를 측정하는 연구들은 다양한 형태의 필란트로피가 존재함에도, 국가 간 비교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금전적 기부를 중심으로 지수를 산출한다. 물품 기부 역시 금액으로 환산해 기부금 총액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필란트로피 연구에서는 기부를 공식 기부(formal giving)와 비공식 기부(informal giving)로 구분한다. 공식 기부는 정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나 공익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기부를 의미한다. 반면 비공식 기부는 조직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개인에게 직접 제공하는 금전적·물질적 지원을 뜻한다. 홈리스에게 직접 돈을 건네는 행위, 형편이 어려운 친척의 병원비를 대신 부담하는 행위, 이웃의 긴급한 상황을 돕기 위해 주민들이 돈을 모으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동들 역시 공익을 위한 자발적 행동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공식 통계에서는 기부로 집계되지 않는다. 이유는 비교 가능성(comparability) 때문이다. 국가마다 기부 문화와 사회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국제 비교를 위해서는 공통된 측정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별 기부지수 연구가 공식 기부금 총액을 주요 측정 대상으로 삼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비서구 사회의 필란트로피를 실제보다 작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비서구 국가에서는 가족, 친족,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비공식적 나눔 문화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6년간 참여해온 인디애나대학교의 ‘글로벌 필란트로피 트래커(Global Philanthropy Tracker, GPT)’ 연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GPT는 2년마다 전 세계 47개국의 해외 기부 규모를 측정하고 비교하는 국제 연구 프로젝트다. 이 연구는 각 국가의 해외 기부, 공적개발원조(ODA), 해외송금, 민간자선 분야 투자 등 네 가지 자원 흐름을 종합해 국제 기부 지수를 비교·분석한다.

2023년 GPT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송금과 ODA를 제외한 한국의 해외 기부 규모는 약 70억 달러(약 10조5800억 원)으로 측정됐다. 이 수치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자료와 국세청 공시자료를 바탕으로 산출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종교단체의 해외 지원 활동이나 KCOC 회원기관이 아닌 민간단체의 해외 지원 활동 등 상당한 규모의 해외 기부가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GPT는 2020년 이후 한국의 해외 기부 규모를 보다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원을 추가로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측정 방식만으로 한국 사회의 해외 나눔 활동 전체를 충분히 포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해외 기부 지표뿐 아니라 한국의 전체 필란트로피 지수를 측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제기되는 문제다.

◇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은 정말 기부를 적게 하는 나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충분히 측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기부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부를 얼마나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측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에서 개인의 기부 참여율과 기부 총액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앞서 소개한 전국 조사와 지방자치단체 조사, 그리고 국세청의 기부 통계 자료가 거의 전부다. 국세청 자료는 전체 기부 규모를 추정하는 데 유용하지만, 세금공제를 받은 기부금만 포함된다는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측정 방식에 있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는 대부분의 기부 통계 연구는 기부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제시한 뒤, “지난 1년 동안 총 얼마를 기부하셨습니까?”라는 단일 문항을 통해 개인의 기부 총액을 산출한다. 기부에 대한 정의는 협소하고, 기부 금액을 측정하는 방식 역시 단순하다.

필란트로피 연구자들은 정확한 기부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 정교한 설문 설계와 다양한 측정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응답자가 지난 1년간의 기부 내역을 정확히 떠올릴 수 있도록 기부 유형별로 질문하거나, 기부 시기와 대상을 단계적으로 상기시키는 질문 장치를 설문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를 기부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을 기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Giving USA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세청 자료뿐 아니라 전국 단위 조사, 경제 통계, 비영리 부문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매년 기부 총액을 추정한다. 이 때문에 Giving USA는 여러 나라가 참고하는 대표적인 기부 측정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필자가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많은 국가의 연구자들이 Giving USA의 측정 방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했다. 특히 한국·중국·일본의 연구자들과 기관 관계자들이 자주 찾았는데, 각 나라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일본은 연구자들이 수개월 동안 방문학자로 체류하며 설문 문항을 분석했고, 이후 일본형 기부조사인 JGVS를 설계했다. 중국은 학생과 연구자들을 석·박사 과정에 장기간 파견해 기부 측정 체계와 데이터 수집 과정을 학습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비교적 일찍 Giving USA를 접했음에도, 기부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 논의와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절단이나 단기 방문 형태의 교류는 있었지만, 측정 방법론 자체를 깊이 연구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국에는 Giving USA를 참고한 기빙코리아라는 중요한 연구가 있다. 그러나 한 민간 재단이 제한된 예산으로 수행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한국의 기부 규모를 보다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체계적인 개인 기부조사와 국세청이 보유한 기부 관련 행정자료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분석할 수 있는 국가 수준의 기부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민간과 정부, 학계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 수년간 필자는 여러 학술대회와 강연, 토론회 등을 통해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관심과 예산, 문제의식의 부족으로 아직까지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기부지수 연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부지표는 단순히 누가 얼마나 기부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타인을 위해 자원을 나누고 있는지, 얼마나 관대한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적 지표다.

우리는 흔히 경제 규모가 큰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사회정의와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공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문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지표는 사회의 품격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덜 관대한 사회인가, 더 관대한 사회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기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는가.

기부를 측정하는 방식은 단순한 통계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란트로피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행동을 사회적 기여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결국 기부를 측정한다는 것은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성주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사회복지학과 및 행정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며, 비영리조직, 시민사회, 자선·기부, 사회적 형평성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학문 및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비영리 경영(Nonprofit management), 비영리 교육과 필란트로피(Philanthropy studies)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학문적 지식을 사회적 실천으로 연결하는 데에도 관심을 두고 있으며, 비영리 조직의 역량 강화, 시민사회 생태계의 발전, 그리고 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모색하는 데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