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멈춘 공익법인법, 새 가치를 담으려면 [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장보은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익법인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주변적 존재가 아니다. 기업 공익재단, 장학재단, 복지·의료·교육 법인까지, 국가 재정과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메우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들을 둘러싼 법과 제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나쁜 짓 못 하게 막는 법”에 머무른 채 “어떻게 하면 공익을 더 잘 실현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공익법인 관련 법제를 연구하며 느낀 몇 가지 문제의식과 개선 방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 ‘공익법인’ 법제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공익법인을 둘러싼 법체계는 매우 복잡하다. 비영리 조직의 설립·운영은 민법,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 사립학교법, 의료법, 사회복지사업법 등이 나눠 맡고 있다. 여기에 세제는 법인세법·소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부가가치세법이 따로 규율하고, 모금은 「기부금품의 모집ㆍ사용 및 기부문화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이 담당한다. 기부금품법은 원래 「기부금품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가, 최근에는 ‘기부문화 활성화’ 문구를 제목에 덧붙이는 개정을 거쳤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법이 있음에도 “공익법인 관련해 법을 어디서부터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명쾌하게 한 곳을 가리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같은 비영리 조직이라도 설립 근거법이 다르고, 주무관청도 다르고, 적용되는 감독·세제 규정도 제각각이다. 실무에서는 주무관청의 해석과 내부 지침에 따라 요구사항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무자들도 어떤 법을 어떤 기준으로 지켜야 하는지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용어의 혼선도 적지 않다. 민법은 ‘비영리법인’을, 공익법인법은 ‘공익법인’을, 세법(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또 다른 의미의 ‘공익법인’을 사용한다. 기부금품법은 ‘모집 단체’라는 용어를 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 법률이 상정하는 범위와 요건은 서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실무에서는 이 용어들이 뒤섞여 쓰이면서 서로 다른 대상을 같은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많은 사람이 “공익법인”이라고 말할 때 상속세·증여세법상 공익법인을 떠올리지만, 공익법인법의 적용 대상인 “공익법인”은 세법상의 공익법인과는 다른 기준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공익법인법에 따라 설립된 공익법인이 아니라 민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라 하더라도, 세법상으로는 공익법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 법률 체계의 출발선에서부터 개념이 꼬여 있는 셈이다.

◇ 공익법인법의 탄생 배경 : ‘돕기 위한 법’이 아니라 ‘막기 위한 법’

공익법인법은 1975년 민법의 특별법으로 제정됐다. 제정 이유를 보면 공익법인이 늘고 세제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 탈세·사익 추구에 이용되는 사례가 증가해 민법만으로는 규제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민법보다 더 엄격한 감독과 규율을 하기 위해 별도의 법을 둔 것이다.

그런데 공익 목적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할 때 법 해석상 민법이 아닌 공익법인법에 따르는 것이 강제되지는 않는다. 또한 민법보다 규제가 강화된 공익법인법에 따라 공익법인을 설립한다고 해서 세법 등에 따라 추가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강화된 규제를 감수할 만한 인센티브가 있다면 ‘공익법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정도이고, 그 외에는 공익법인법에 의해 법인을 설립할 특별한 유인이 없다. 따라서 장학재단이나 기업 공익재단처럼 주무관청의 실무 관행상 공익법인법에 따라 설립하도록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공익법인법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익법인법은 내부 거버넌스와 주무관청 감독을 모두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이사 수를 5~15명으로 제한하고, 이사 임기는 4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다. 이사 결격사유를 두고, 특수관계인 이사는 전체의 5분의 1을 넘을 수 없다고 정한다. 비상근 임직원은 무보수여야 하고, 감사는 2명을 반드시 두며 그중 1명은 주무관청이 추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해산 시 잔여재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도록 정관에 규정해야 한다. 모두 강행규정이다.

주무관청의 감독권도 상당히 강하다. 이사·감사 취임, 상근 임직원 수와 보수, 수익사업의 개시·변경 등은 사전 승인 사항이다. 사업계획과 예산은 사전에 제출하고, 사업실적은 사후에 보고해야 한다. 법과 정관 위반 시에는 시정 요구와 승인 취소까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실무에서는 부수적 수익사업 명의 변경, 기본재산 처분, 감사 선임 같은 문제가 자주 쟁점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규정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공익법인의 거버넌스는 공익법인의 설립 목적, 즉 비전이나 미션을 잘 달성하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규정은 궁극적 목적 달성을 돕기보다, 설립·운영 주체가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자율성을 최소화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 재산 운용·보수 규정, 이대로 좋은가

공익법인이 공익목적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재산을 형성하고 이를 유지·운영하는 것은 핵심이다. 공익법인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이를 위한 것이고, 공익법인이 위험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익법인법은 설립 단계에서부터 법인이 보유할 기본재산으로 예정된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설립허가를 하도록 한다. 또한 공익법인의 재산을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구분하고, 기본재산의 매도·증여·임대·용도변경·담보제공, 일정 규모 이상의 장기 차입, 부동산 취득, 정기예금 전환, 주식·채권·파생상품 투자 등은 원칙적으로 주무관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복잡하고 빠르게 변동하는 시장 상황에서 재산을 운용하기 위해 매번 주무관청의 사전 승인을 받는 구조는 적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주무관청이 금융상품과 재산 운용에 대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전 승인 제도가 사익 추구나 위험한 투자를 막겠다는 규제 목적에 효과적인지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수 규정도 현실과 괴리가 크다. 공익법인법에는 비상근 임직원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없다는 규정만 있을 뿐, 보수 자체에 대한 직접적 제한은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세법에서는 고유목적사업비로 인정되는 급여에 사실상 상한선을 두고 있다. 연간 급여 800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고유목적사업 지출로 인정하지 않는 규정 때문이다. 일부 주무관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운영비 비율, 인건비 비율에 대한 내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공익 영역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공익법인 임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기업 공익재단’의 특수성

‘기업 공익재단’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기업 공익재단은 기업이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을 말한다. 다만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기업이 출연해 설립한 것이 아니라 성공한 기업가가 설립한 재단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통상적 의미의 기업 공익재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기업 공익재단은 그 재단을 설립한 기업과 독립된 법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이 공익 목적 달성을 위해 설립한 조직인 만큼, 해당 기업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특성을 이해한 규제 틀 설계가 중요하다.

사회적으로는 기업 공익재단이 계열사 지배구조 유지나 세금 회피를 위한 도구로 악용된 사례가 문제 됐고, 이를 막기 위해 의결권 제한이나 이사회 구성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규제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업 공익재단은 기업이 가진 경영·재무 역량을 토대로 사회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다각화해 사회적으로 기여할 잠재력도 크다. 공익법인법은 이 양면을 함께 고려해 기업 공익재단에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제한할지 정교하게 설계돼야 한다.

◇ 다각적인 공익활동을 활성화하는 법 제도의 정비를 위해

공익법인법은 처음 만들어질 때 “공익법인이 여러 혜택이 주어지는 점을 악용해 이를 사적 목적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했고, 이후 몇 차례 개정이 있었지만 근본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변화는 크지 않았다. 시행된 지 50년에 가까워졌지만, 처음의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이 공익활동의 역할과 공익법인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법은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공익법인의 설립과 운영 기준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공익법인의 실질적인 공익 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한꺼번에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몇 가지 방향은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비영리법인의 규제 체계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허가주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비영리법인 설립은 자유설립 또는 인가 중심으로 전환하되, 공익 활동을 목적으로 세제 혜택을 받으려는 법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익성을 인정받게 하고 별도의 관리 체계를 두는 방식이 검토될 수 있다. 규제와 혜택은 비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때 기업 공익재단의 경우에는 세제·지배구조 우려를 반영한 별도의 기준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공익법인의 지배구조는 설립 목적(비전·미션)을 얼마나 잘 달성하게 돕는 구조인가를 기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사와 감사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하되, 모든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둘 필요가 있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재산 운용과 사업 활동 규정도 일일이 주무관청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기보다, 공익 목적사업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도록 하거나 위험한 투자를 제한하고, 임직원에게 부당한 고액 보수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 중심의 설계가 바람직하다. 특히 재산 운용과 관련해서는 세법상 사후관리 규정과의 통일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주무관청이 공익법인의 설립부터 운영, 해산까지 전 과정에 대해 관리·감독하는 구조가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Charity Commission과 유사한 공익위원회 설치가 논의되기도 했다. 다만 공익위원회 모델은 장기적으로 가능한 대안일 수 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 독립성과 투명성, 공익활동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당장 필요하고 가능한 과제는 주무관청별로 흩어진 기준을 통일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재량을 적절히 통제하며, 담당 부처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런 인프라와 신뢰가 축적된 이후 공익위원회 설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익법인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복지·교육·문화·환경 영역에서 더 큰 몫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공익법인 활동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하며, 공익법인 스스로도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공익법인을 향한 법과 제도 역시 “탈세 방지 장치”에 머무르지 말고 “어떻게 하면 공익법인이 비전과 미션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도울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재정비돼야 한다. 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공익법인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장보은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K-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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