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6년간 유지된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제, 위헌 심판대 오른다

서울행정법원, 9일 위헌제청…여가부의 반복적 설립 거부가 직접 계기
“주무관청 자의적 판단 막을 명확한 요건 필요” 지적

비영리법인 설립을 주무관청이 ‘허가’해야만 가능하도록 한 현행 민법 조항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함에 따라, 66년간 유지돼 온 이른바 ‘설립허가제’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특정 부처가 명확한 기준 없이 법인 설립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된 셈이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조선DB
성평등가족부의 비영리법인 반복적 설립 거부를 계기로 민법 제32조 설립허가제가 헌재에서 위헌 심판을 받게 됐다. /조선DB

문제의 뿌리는 민법 제32조다.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재단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법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정작 허가 요건은 법 어디에도 없다. 자격 기준도, 허가 기준도 없이 ‘허가 권한’만 부처에 주어진 구조여서 설립 승인 여부가 행정기관의 해석과 재량에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은 청소년 교육 단체 A가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에 2024년 6월, 비영리법인 설립을 신청하면서 촉발됐다. A단체는 전국에서 청소년이 환경·차별 등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비(非)법인 단체였다. 그러나 여가부는 ▲2개 시·도 사무소 미확보 ▲재정 안정성 부족 등을 이유로 수차례 설립을 거절했다. 여가부 매뉴얼에는 ‘기본재산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A단체는 500만원을 기본재산으로 출연하고 발기인 2명이 각각 300만원을 추가 출연하기로 약정했다. 그럼에도 여가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A단체는 두 번째 신청에서 전국 사업장 3곳을 확보하고 회비 수익을 늘렸지만, 여가부는 “사업이 단발적”이고 “500만원이라는 기본재산은 재정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반복했다. 재정 안정성의 기준 금액을 제시해 달라는 요청에도 답변은 없었다. 이후 A단체는 발기인 2명이 1000만원씩 추가 출연을 약정하는 등 조건을 대폭 보완했지만, 허가 거부는 세 번째에도 이어졌다. A단체와 한국공익법인협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여가부가 실제로는 법인 설립 기준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12월 9일 열린 2025 한국공익법인협회 세미나에서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이사장이 설립허가제 법 조항이 위헌제청결정을 받게 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바라봄, 한국공익법인협회

이에 A단체의 설립 허가 단계를 지원해 온 한국공익법인협회의 김덕산 이사장은 “여가부 허가를 받은 기존 법인 중에는 서울 한 곳에만 사무소를 둔 사례도 많았다”며 “A단체보다 기본재산이 훨씬 적은 법인도 허가된 사실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A단체는 재단법인 동천·법무법인 태평양과 함께 행정소송에 나섰고, 재판부는 주무관청의 허가 재량이 무제한적이라는 점을 문제 삼아 위헌제청을 결정했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영리 법인은 준칙주의(미리 정해진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허가나 인가 없이도 설립을 인정하는 원칙)로 설립되는데, 비영리법인만 허가주의를 둬 광범위한 재량을 허용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며 “허가제라면 명확한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전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비영리 현장에서 제도 개선 요구는 꾸준했다.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제’에서 ‘요건만 충족하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민법 개정안은 지난 20년 동안 2004년, 2011년, 2014년 총 세 차례나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에서 폐기됐다. 법조계와 비영리 섹터에서는 “이번 위헌제청이 제도 논의를 다시 열 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덕산 이사장은 “설립허가제 폐지가 당장 어렵다면, 최소한 부처별로 명확한 재량 기준을 마련해 민원인과 담당 공무원 모두 예측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숙 변호사는 “헌재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대체할 인가제·준칙주의 등 가능한 대안 모델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공익법인협회는 같은 날 서울 마포구에서 ‘2025 한국공익법인협회 세미나’를 열어 설립허가제와 기부금품법이 현장에서 초래하는 불편과 한계를 짚었다. 이번 위헌제청을 계기로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필요한 기준을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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