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쟁·인종차별…위기가 바꾼 기부 지도

변화하는 미국의 기부 생태계 <3·끝>
사회적 격변이 만든 새로운 자선의 지형도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의 지갑이 향한 곳도 달라졌다. 코로나19 병상과 우크라이나 국경, 인종차별 시위의 거리마다 자선의 물줄기가 흘렀다. 위기 속에서 ‘누구를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단체들이 미국 기부 지도를 다시 그렸다.

미국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가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America’s Favorite Charities)’에 따르면, 지난 몇 년 사이 사회적 격변과 함께 급성장한 단체들이 눈에 띈다.

2018~2020년 평균 기부금 대비 2021~2023년 평균 기부금 증가폭이 가장 컸던 10개 단체는 ▲터널 투 타워스(504%) ▲UNCF(275%) ▲월드 센트럴 키친(209%) ▲마겐 다비드 아돔 미국 후원회(201%) ▲밀컨 연구소(155%) ▲반 안델 연구소(155%) ▲기브웰(143%) ▲마이클 제이 폭스 파킨슨병 연구재단(111%) ▲국제 기독교·유대인 협력기금(83%) ▲힐즈데일 대학(68%)이다.

9·11 테러 희생자와 군인·경찰 가족을 지원하는 ‘터널 투 타워스(Tunnel to Towers)’ 재단은 3년 사이 평균 기부금이 500% 넘게 늘며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9·11 테러 20주년을 계기로 “매달 11달러를 기부하자”는 메시지를 내건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 마크 월버그, UFC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 등이 출연한 광고가 TV·유튜브·라디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송출되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의 가족에게 무담보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2018년 1684만 달러였던 기부금은 2021년 2억560만 달러로 치솟았고, 이후 정기기부 모델이 자리 잡았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는 인종차별 해소와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기부가 늘었다. 흑인대학과 소수인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UNCF(United Negro College Fund)는 같은 시기 275% 성장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츠가 ‘Invest in My Education’ 프로그램을 통해 1억9000만 달러를 기부하며 2023년 최고 수익인 3억5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편, 매켄지 스콧은 2020년 1000만 달러에 이어 올해 9월 추가로 70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다양성과 형평성 강화를 위한 지원을 이어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고 이스라엘 응급의료를 지원하는 마겐 다비드 아돔 미국 후원회(AFMDA)의 2023년 기부금은 전년 대비 6배 증가했다. /AFMDA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유대계 자선단체들의 모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응급의료를 지원하는 마겐 다비드 아돔 미국 후원회(AFMDA)는 2023년 기부금이 2억8680만 달러로 전년(4890만 달러)보다 6배 증가했다. 전쟁 발발 직후 구급차·혈액 등 의료장비 확보를 위한 긴급 모금이 전국으로 확산된 결과다. 유대인 공동체 기반 구호단체인 국제 기독교·유대인 협력기금(IFCJ)도 평균 83% 성장하며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보건·금융·정책 싱크탱크인 밀컨 연구소(Milken Institute)는 팬데믹 초기 백신과 치료제 개발 현황을 실시간 공개하며 WHO와 주요 언론이 인용하는 대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공공데이터 기반 연구 역량이 주목받자 보건·과학 분야 대형 지정기부가 이어졌고, 3년 새 기부금은 155% 늘었다. 2021년에는 베즈츠키 뇌연구기금과 손잡고 바이폴라 장애 연구 프로그램을 출범하기도 했다.

재난 현장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월드 센트럴 키친(World Central Kitchen)은 ‘위기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당시 병원과 저소득층 지역에 긴급 식사를 제공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에는 국경 지역에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하루 수십만 끼를 지원했다. SNS를 통해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며 신뢰를 얻었고, 기부금은 209% 증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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