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서 투자로” 공익법인의 다음 10년이 달라지려면 [공익법인 NEXT]

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1>
공익법인, 사회혁신의 주체로 서기 위한 제도 개편 시급

“우리나라의 공익활동은 기업의 기부와 자원봉사에서 출발했다. 지난 10년은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등 혁신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온 시간이었다. 이제 다음 10년은 ‘공익적 투자’와 ‘협력’이 주도할 차례다.”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공익법인은 기부와 보조금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복합화된 사회문제 앞에서 단발성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공익법인에도 자본이 선순환되는 ‘투자’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이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운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원익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은 “공익법인이 여전히 기부금 중심의 제도 틀 안에 묶여 있다”며 “세제 개편과 제도 혁신 없이는 사회혁신 자본이 선순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손원익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이 지난달 25일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조태현 작가

현행 세법상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증여세 면세 한도는 5%에 불과하다. 손 회장은 “이 한도를 10% 이상으로 확대해야 기업들이 기부와 투자를 병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기업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도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며 “투명성을 담보하면서 사회적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는 제한적 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자산을 단순히 ‘운영 수익’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손 회장은 “이제는 공익법인도 자본을 굴려 사회적 가치와 재정적 수익을 결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발제를 진행하는 김효선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의 모습. /조태현 작가

법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공익투자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김효선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는 “현행 제도에서는 공익법인의 사회투자가 주무관청의 재량에 따라 허용되거나 제한된다”며 “세법상 ‘공익사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 성격의 활동이 ‘비영리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는 사례가 많다”며 “감독기관이 일관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미국의 프로그램 연계투자(PRI)나 미션 연계투자(MRI)처럼 공익 목적 투자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공익재단은 전체 자산의 일정 비율을 사회적 목적에 투자할 수 있으며, 이를 ‘공익사업’으로 간주해 세제 혜택을 유지한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단순히 규제 완화의 문제가 아니라, ‘공익 자본의 유통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손 회장은 “사회문제의 변화 속도는 빠르지만 행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며 “공익법인이 사회혁신의 주체로 서기 위해선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의 투자 행위가 제도적으로 인정되면, 단발적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자본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해외 재단들이 사회적기업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수익 일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김 변호사는 “투자를 통한 공익 창출이 장기적으로는 기부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며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투자 전문성을 갖춘 중간지원조직과 협력해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한국사회투자·한국비영리학회·법무법인 더함·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했으며,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열렸다. 세미나에는 기업, NGO, 공익재단, 미디어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해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투자로 답하다’를 주제로 사회적 금융과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