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윤주 LG화학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
지난 19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미국 청정에너지 산업의 일자리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환경단체 E2(Environmental Entrepreneurs)의 ‘클린 잡스 아메리카(Clean Jobs America)’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청정에너지 분야 일자리는 미국 전체 노동시장보다 세 배 빠르게 늘었지만, 최근 보조금 축소와 프로젝트 취소, 정책 불확실성으로 수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반(反)ESG 기조로 국내 기업의 ESG 경영에도 ‘노란불’이 켜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ESG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LG화학 본사에서 만난 고윤주 LG화학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다.
◇ ESG는 기업의 장기 성장 전략
외교관 출신인 고 전무는 트럼프 1기 시절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인물로, 국제 ESG 정책 흐름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세계 경기 불황과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변수로 기업의 ESG 경영이 위축될 수는 있다”면서도 “ESG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디폴트(기본값)’ 경영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 국가 지도자의 정치적 판단이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ESG라는 근본 패러다임을 흔들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10월 LG화학에 합류한 그는 ESG 전략을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전략”으로 정의했다. “예전에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기업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환경·인권·다양성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함께 요구된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제품을 만들고,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세계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는 구체적인 ESG 전략으로 연결된다. 먼저 환경(E) 부문에서는 탄소 활용 기술, 공정 전기화, 폐플라스틱·바이오매스 기반 저탄소 원료 개발 등 탄소중립 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영덕·영양 풍력발전과 20년 장기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해 연간 최대 615GWh의 재생에너지를 확보했는데, 이는 국내 민간기업 최대 규모의 풍력 계약이다. 고 전무는 “LNG나 화력발전보다 비용은 더 높지만,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필수 과제”라고 했다.
사회(S) 영역에서는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소 협력사 21곳에 ESG 컨설팅을 진행해 평균 73% 개선률을 달성했다. “최종 제품의 친환경성은 원료를 공급하는 협력사의 기술 역량에 달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2023년부터는 협력회사의 근로환경이나 인권·노동 문제에 대해 제보할 수 있는 익명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LG화학 ESG 실행력의 축은 거버넌스다.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가 온실가스 감축, 공급망, 안전보건 등 핵심 과제를 직접 다루고, 신학철 대표이사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월례 경영회의에서는 ESG 현안이 주요 의제로 오르며, C-level 경영진이 논의에 관여한다. 나아가 탄소감축에 적극 나선 부서와 프로젝트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실행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ESG가 특정 부서의 과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경영 원칙으로 작동하는 이유다.
◇ 해답은 ‘시장 조성’과 ‘파트너십’
고 전무는 ESG 경영의 핵심 과제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균형”으로 꼽았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수익 창출과 함께 환경·인권·거버넌스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며 “이를 단기 과제가 아닌 장기 과제로 바라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석유화학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리스크 탓에 사업 부서가 단기 영업이익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가장 큰 난제”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시장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재활용률 의무화, 재활용 제품 보조금 같은 정책이 뒷받침돼야 기업도 ESG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며 “소비자도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고 폐플라스틱을 줄이는 데 동참해야 진정한 순환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고 전무가 짚는 ESG 경영의 해법은 ‘파트너십 확대’다. 친환경 기술 개발이나 재생에너지 전환 같은 어려운 과제를 정부·기업 간 협력을 통해 비용 부담을 줄이고 혁신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LG화학이 포스코홀딩스와 손잡고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 실증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항제철소에서 배출되는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LG화학의 DRM(Dry Reforming of Methane·메탄건식개질) 기술을 적용, 저탄소 환원제와 연료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다. 그는 “화학회사가 단독으로 포집하려면 비용이 막대하지만, 철강 공정과 협력하면 효율적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이야말로 ESG 경영을 현실로 만드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기본 경영 방식입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향한 철학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때 ESG는 기업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