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교체 이후, ‘임팩트리서치랩’이 그리는 다음 10년
“우리는 ‘밥 짓는 마음’으로 지식을 짓는다”
2019년, 신현상 교수가 설립한 ‘임팩트리서치랩’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두 명의 20대 청년이 2025년 7월, 신임 공동대표가 됐다. 리더십 전환과 조직 재설계를 실험 중인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나은미래>는 지난 9일 신현상 최고지식책임자(CKO), 김하은·이호영 신임 공동대표 세 사람을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만났다. 좌담은 ‘가위바위보’로 발언 순서를 정하며 유쾌하게 시작됐다.

―리더십 전환이 이뤄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하은(이하 김)=그동안 여러 현장을 넘나들며 연구를 하다 보니 개별 사업을 넘어 지식 체계를 정리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임팩트 생태계 내 수많은 경험과 축적된 통찰을 정리해줄 수 있는 분이 신 교수님이라고 판단했고요. 동시에 확장되는 임팩트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해서, 조직도 보다 유연하고 젊은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기도 했구요. 내부 논의 끝에 이호영 대표와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드렸고, 교수님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신 교수님은 이제 대표직에서 물러나 최고지식책임자(CKO·Chief Knowledge Officer)로서 조직의 지식 정립에 집중하는 역할을 맡게 되셨어요.
이호영(이하 이)=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했어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말한 ‘피자 두 판의 법칙’이 있잖아요. 회의에 참여하는 인원이 피자 두 판으로 충분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만, 그 이상이면 복잡해진다는 의미거든요. 어느 순간 우리도 세 판이 필요한 조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거버넌스를 새로 짤 시점이 된 거죠.
신현상(이하 신)=제가 잘린 거죠(웃음). 농담이고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조직의 역량이 크게 쌓였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두 공동대표가 현장을 누비며 경험과 전문성을 갖춰가는 모습이 뚜렷했어요. 임팩트리서치랩을 처음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20대였고, 저는 40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대가 다른 세 사람이 함께 조직을 이끌어온 셈이죠. 2023년 한양대 글로벌사회혁신단장을 맡으면서는 자연스럽게 대학 차원의 임팩트 생태계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다른 대학들과의 협력까지 구상하다 보니, 회사 일에 100%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두 공동대표가 먼저 “우리가 맡아보겠다”고 제안해줬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예전에는 발표든 외부 커뮤니케이션이든 주로 제가 맡았는데, 최근 1~2년 사이에는 두 사람이 훨씬 능숙하게 잘 해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마음 편히 리더십을 넘겨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게 되나요.
김=공동대표 겸 최고경영책임자(CEO)를 맡게 됐습니다. 연구자로 일해온 것은 물론, 그간 조직 운영과 인사, 재무 등 실무를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표직을 맡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CEO로서 조직의 방향성과 전략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 체제를 기반으로 새 도전에 나서려 합니다.
이=신임 공동대표이자, 임팩트 측정 및 평가를 총괄하는 최고연구책임자(CRO)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 임팩트를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공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임팩트리서치랩에서 기본 체계를 잡아 왔습니다. 앞으로는 임팩트 연구의 방향성과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입니다.
신=저는 최고지식책임자(CKO)로서 지식의 질을 높이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CEO, CRO, CKO의 삼각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등 임팩트 생태계에 축적된 지식은 가치 있지만, 대부분 암묵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지식을 대화와 논의를 통해 끌어내고 체계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가 맡은 역할이며, 지식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좋은 지식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두 분이 90년대생이신데요, 소셜섹터에서 보기 드문 리더십 교체입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이번 리더십 교체는 ‘스승이 제자에게 고삐를 넘겨준 일’이라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선 젊은 감각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MZ세대는 사회 흐름을 주도하고, 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는 세대입니다. 우리가 속한 이 세대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생태계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리더십은 결국 비전의 문제입니다. 반복되는 일만으로는 커리어가 성장하기 어렵고, 리더십을 물려받고 싶은 동기도 생기지 않습니다. 저희 세대가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를 조직이 제공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저에게 대표직은 정착과 도전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김=새로운 리더를 키우는 데는 별도의 시간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은 임팩트 성과만 내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내부 인재 양성에 여유를 갖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생태계 차원에서 리더십 전환을 돕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임팩트 측정은 모든 조직이 할 수 있지만, 제대로 하려면 표준과 절차, 지식 기반이 필요합니다. 이런 시장이 형성돼야 커리어도 생기고, 리더도 자랄 수 있습니다. 이번 변화는 우리 조직에도 도전이지만, 다른 조직에도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조직이 30년 이상 지속되려면 어느 시점에는 세대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문제는 그때를 대비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후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넘기는 쪽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십 전환을 미루다 보면 조직이 늙고, 다음 세대는 떠납니다. 우리는 조직 규모가 작아 수월했지만, 큰 조직일수록 체계적 발굴과 육성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다양한 조직에서 이런 시도를 하며 경험이 쌓이면, 소셜섹터 전체에도 노하우가 퍼질 것입니다.
―새로운 리더십 체제에서 그리는 향후 10년 비전이 궁금합니다.
김=우리는 ‘임팩트를 내는 조직에 적절한 자원이 배분될 수 있는 좋은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지식을 제공하는 조직’입니다. 초기에는 연구 중심이었지만, 현장을 다니다 보니 맥락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재상도 ‘도전하는 사람’, ‘불확실성을 견디는 사람’, ‘학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게 됐고요. 앞으로도 전략적 평가를 수행하면서 현장에서 환영받고 쓰이는 지식을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내에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역할도 해나가려 합니다.
이=임팩트 측정은 ‘지도’와 같습니다. 방향 없이 나아가기보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결정을 돕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또 우리 조직이 ‘최고의 전문가 훈련소’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전문가로 성장하고, 이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돕고자 합니다.
신=우리가 추구하는 지식은 책상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며 쌓아가는 지식입니다. ‘밥을 짓는 마음’으로 지식을 만드는 조직이 되는 것을 지향합니다. 건강한 밥이 몸과 마음을 살리듯, 우리 지식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실제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에게 다음 10년은, 학교 안에선 후배 교수님들에게, 조직 안에선 두 분 대표님들에게 제가 쌓아온 자산을 넘기며 함께 뛰는 시간입니다. 앞으론 두 대표가 앞에서 이끌고, 제가 뒤에서 밀어주는 구조로 함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