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병·폐렴 생기고 어획량 ‘0’… 한전 필리핀 발전소 인근, 생존이 위태롭다

기후솔루션 입수 보고서 “공청회 형식적, 피해 보상도 전무”

한국전력공사가 필리핀 세부주 나가시티에서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현지 주민들이 10년 넘게 건강 악화와 생계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시민단체 연합 ‘필리핀기후정의운동(PMCJ)’은 지난 5월 피해분석 보고서를 통해 “어린이·성인의 천식, 폐렴, 피부질환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지역 보건소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전 필리핀 석탄발전소에서 날아오는 석탄재로 인해 인근 바다가 검게 변했다고 필리핀 단체 PMCJ는 밝혔다. /PMCJ

해당 발전소는 한전이 현지 전력사 SPC파워코퍼레이션과 2005년 공동 설립한 KSPC가 운영하며, 2011년 200MW 규모로 가동을 시작한 해외 최초의 상업 석탄발전소다. 보고서는 발전소에서 날아든 석탄재가 수질·대기를 오염시켜 샘물에서 악취가 나고 피부 자극 증상까지 유발되고 있다고 했다.

피해는 건강에만 그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어민들은 얕은 바다에서도 15kg 이상 잡히던 고기가 지금은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했고, 주민들은 이를 해양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이주 권고 있었다…사전 피해 인지했단 증거”

보고서는 발전소 건설 초기 일부 주민에게 이주가 권고된 점을 언급하며 “사업자가 피해를 예측하고 있었던 정황”이라고 밝혔다. 공청회와 정보공개 과정에서도 주민 참여는 제한적이었고, 보상·모니터링 결과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왼쪽부터) 라퀴엘 에시리투 대표와 한전 필리핀 석탄발전소로 피해를 받은 현지 주민인 도미나도르 바사야 주니어 씨가 석탄발전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PMCJ

현지 단체 ‘체인지 나가(CHANGE Naga)’의 라퀴엘 에시리투 대표는 PMCJ 보고서에서 “수질이 변하고, 피부병이 발생하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도미나도르 바사야 주니어는 “우물물이 석탄재 탓에 검게 변했지만,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듣는 주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주민은 “전기요금은 여전히 비싸고 보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전, 피해 보상하고 석탄발전소에 더이상 자금 투자하지 말아야”

장기간 누적된 피해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발전소 건설을 지원한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실질적인 구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2년 ADB 내부 컴플라이언스 리뷰는 해당 사업이 환경, 정보공개, 주민 의견수렴 등 내부 정책을 위반했다고 인정하고 시정 권고를 제시했다. 그러나 5년간의 공식 모니터링 이후에도 그 절반은 이행되지 않은 채 종료됐다. 피해 주민에 대한 명확한 보상 조치도 없는 상황이다.

엘레노어 바르톨로메 PMCJ 총괄은 “한전은 해외 곳곳에서 해로운 투자로 이익을 챙겼고, 필리핀 지역사회는 생계를 잃고 병들었다”며 “더 이상의 자금 투입을 막고 피해 보상과 완전한 탈석탄 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전 채권 발행을 지원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글로벌 시민사회의 비판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3월 20여 개의 국제단체들이 공동서한을 통해 JP모건, 씨티, HSBC 등 채권 발행기관에 한전의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 중단을 요청했고, 최근에는 글로벌 플랫폼 에코(Eko)를 통해 4만여 명의 시민들이 이에 동참했다.

한전이 필리핀 세부 발전소로 인한 주민 피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 뿐 아니라 발전소 건설을 지원한 금융기관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는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Unsplash

한전은 현재 해당 발전소의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나 세 차례 입찰은 모두 실패했다. 최근엔 채권 발행과 관련해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기후리스크 누락’ 공익신고까지 접수되며 글로벌 자금 조달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한전은 지난 1월 4억 달러 규모의 달러채 발행 이후, 6월에 10억 달러 채권의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해외 채권 발행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기후솔루션은 짚었다.

기후솔루션의 아일린 리퍼트 연구원은 “글로벌 자본은 이미 석탄에서 이탈 중”이라며 “한전이 자금조달을 이어가려면 지금이라도 석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석탄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시, 투자자와 규제기관의 한전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도 계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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