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 기업도 나서라”…왜 ‘신기업가정신’ 주목받나

“성장-분배 넘어 사회혁신 주도할 때” 현장서 쏟아진 목소리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경제·사회·정치·법조계 주요 학회와 시민사회가 함께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화두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논의가 이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 신기업가정신협의회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대한변호사협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했다.

이날 행사에서 나온 메시지는 분명했다.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신기업가정신이 지금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제는 기존의 성공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문제가 더 악화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제 시스템 안에 사회문제를 포함하지 않으면 기업이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며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체계를 만들고,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경제·사회·정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신기업가정신의 방향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나온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이름 가나다순)

지난 8일 열린 ‘지속가능한 우리사회를 위한 새로운 모색’ 토론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 교수(前 한국사회학회 위원장)

“신기업가정신을 어떻게 확산하고,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반드시 정책이나 제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종종 사람들의 상상과 기대, 그리고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감각과 맞닿을 때 시작됩니다. 신기업가정신 역시 단순한 교과서적 설명이나 이론으로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야망, 열망, 질투, 호기심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품고 있는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서사가 필요합니다. 가령, 수능 출제위원이 신기업가정신에 매료됐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어떤 정책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전국적으로 회자될 수 있습니다. 결국 신기업가정신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며, 이를 어떤 문화적 상상력과 이야기로 풀어낼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 교수(前 한국경영학회장)

“한국은 AI 기반 기술혁신, 저성장의 고착화, 급변하는 통상환경 등 경제적 변화에 더해, 인구소멸·지역불균형·기후위기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동시에 맞물린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안녕하지 못한’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기업가정신을 통해 구조적 전환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환경 조성이 필수적입니다. 정부는 시장이자 촉진자의 역할을 하며 공공조달의 혁신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민간의 중간 거버넌스 조직은 지역 기반의 실행 플랫폼을 구축해야 합니다. 아울러 기술 혁신이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기업가형 사회’를 함께 논의하고 구상해 나가야 합니다.”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 교수(前 한국경제학회장)

“지금 전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신기업가정신은 적절한 해법 가운데 하나이며, 지금 이 시점에 더욱 논의할 가치가 있습니다. 신기업가정신은 사회 전반의 유기적인 협력과 생태계 구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업가정신과는 구별됩니다. 핵심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함께 추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치가 충돌하거나 양립하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많습니다.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할지에 대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 8일 열린 ‘지속가능한 우리사회를 위한 새로운 모색’ 토론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왼쪽 여섯번째)과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 교수(前 한국행정학회장)

“우리 사회는 이제 기존의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통합 성장이 필요합니다. 신기업가정신은 단순히 기업과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윤리적 판단과 사회·인문학적 접근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신기업가정신이 기존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려면 민간 주도의 협의체와 같은 새로운 주체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규제의 일관성,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 성과 보완, 행정 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정현 명지대 경영학 교수(前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현재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정책 변화나 정부 전략, 외부 위기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아, 자생적인 창업 동력과 시장 기반의 지속성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기업가는 단순히 사업을 운영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정체성과 역할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주체입니다. 이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곧 이윤 기회가 되고, 이윤이 사회성과의 결과가 되는 시장 기반 인센티브 구조를 도입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정부·사회가 협력해 인재와 금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통합 생태계를 조성하고, 그 생태계 안에서 신기업가정신을 고도화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ESG위원장)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곧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통합해, 사회문제 해결이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제도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성 지표를 넘어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공시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실천한 기업에는 조세 감면 같은 다양한 보상을 제공하자는 제안이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보상 방식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 의무를 초과한 비율을 기업 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임효창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서울여대 경영학 교수)

“기업가정신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확산되려면 무엇보다 정부와 사회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사회적 공감대와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혁신과 사회적 가치를 따로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저는 시민의 관점에서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째, 청년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가. 둘째, 기업의 크기와 관계없이 시민이 존중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기업은 어디인가. 셋째, 기업가정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넷째, 기업가정신의 가치가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존중받고 있는가. 앞으로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실행력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아진 연세대 정치학 교수(前 한국정치학회장)

“이제는 기업이 혁신을 수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합니다. 특히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위기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국제사회 안에서 국가와 기업이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사례도 앞으로 더 늘어나야 합니다. 아울러 사회적 가치 창출과 공감대 형성 과정, 그리고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와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다면, 사회문제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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