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민혜 한국 WWF 사무총장
“생물다양성 보전에 우리 기업이 동참할 방법은 없을까요?”
박민혜 한국 WWF(이하 WWF) 사무총장(46)이 최근 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지난해 1월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면서 기후변화, 식량 안보 등 다양한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WWF가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WWF 한국 본부에서 취임 1주년을 맞은 박 사무총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를 물었다. 박 사무총장은 2015년 본부 설립 초기부터 함께한 ‘최장수 멤버’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장과 파트너십&프로그램 국장을 거쳐 내부 승진으로 사무총장이 된 첫 사례다. 그는 WWF의 여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 해양 쓰레기와 싸우는 주민들, 연대도에서 23톤 수거
2024년은 박 사무총장이 ‘시민 참여’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해였다. 경남 통영 연대도에서 진행된 ‘주민 자율 해양쓰레기 수거 사업’은 지역 주민들이 팀을 구성해 해안가에서 월 1회 이상 수거를 진행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거한 쓰레기만 23톤, 2023년의 18톤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박 사무총장은 해당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해양 생물이 해양쓰레기의 80%를 차지하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거나 얽히면서 질식사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해양쓰레기가 어구를 훼손하면서 어업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2021년 어촌어항공단과 협력해 추진해온 ‘해양 침적쓰레기 수거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매년 해양 오염이 심각한 지역을 위주로 1년에 한 번, 약 2주 동안 진행된다. 지금까지 연평도와 제주도, 강원도 양양 등에서 진행했으며, 지난해에는 부산 가덕도 인근 해역에서 실시했다. 4년 동안 수거한 쓰레기는 총 225톤에 이른다.
◇ 기발한 아이디어, 시민 참여를 이끌다
생물다양성 회복에 대한 시민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도 진행한다. 지난해 가을, WWF는 국내 대표 숙박 플랫폼 야놀자와 함께 기부 캠페인 ‘애니스테이(Anistay)’를 선보였다. 애니스테이는 야놀자 플랫폼에서 까막딱따구리, 꿀벌, 바다거북, 반달가슴곰, 수달 등 WWF가 선정한 멸종위기 대표 동물 5종의 서식지를 예약하는 콘셉트로 설계됐다. 이용자는 해당 동물의 서식지 정보를 확인하고, 서식지 보전을 위한 기부를 할 수 있었다.
기부 금액은 환경부가 지정한 국내 멸종위기 야생생물 282종을 상징해 2820원 또는 2만8200원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야놀자는 예약 1건당 2820원을 추가로 기부하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WWF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캠페인 페이지는 약 10만 7555회 조회됐고, 관련 소셜미디어는 1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월 후원 건수는 전월 대비 393% 증가했으며, 총 6283만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참여자들은 “친근하고 쉽게 야생동물 보호에 동참할 수 있었다”, “콘셉트가 신박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사무총장은 “애니스테이는 2030년까지 국토와 해양의 30%를 보전하겠다는 국가 목표에 기여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많은 사람들이 캠페인을 통해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큰 성과”라고 밝혔다. 이 캠페인은 야놀자가 연장 의사를 밝혀 올해도 이어진다.
◇ 기업,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열쇠
박 사무총장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시민뿐만 아니라 기업의 동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자사의 공급망에서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기업들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WWF는 이를 돕기 위해 ‘생물다양성 리스크 필터(Biodiversity Risk Filter)’를 제공하고 있다. 이 도구는 기업별 생물다양성 리스크 정도를 등급으로 평가하고, 기업 특성에 맞는 자연 관련 리스크를 분석해준다. 기아자동차는 2023년 이 필터를 활용해 공급망과 글로벌 사업장의 생물다양성 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구를 지키는 힘, WWF.’ 박 사무총장이 취임 후 만든 한국WWF만의 슬로건이다. 그는 남은 임기 2년 동안 국민들의 일상 속에 지구를 지키는 일들이 하나씩 포함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구를 지키는 힘을 만드는 기관이 되고 싶습니다. 기업 담당자, 의사결정권자뿐 아니라 소비자와 유권자 모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나 둘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