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비영리의 인건비는 ‘사업비’다” 법원 판결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늦은 밤. 동료들의 전화 통화, 타이핑 소리가 이어진다. 학교에서 부당한 처분을 받은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구제 사건, 외국인보호소에 수 개월째 구금된 난민에 관한 사건, 북송된 어머니와의 친생자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탈북민 자녀 사건…. ‘공익변호사’들은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 뿐이다. 이런 간절함으로 재판을 하고, 서면을 쓰고 관계자를 설득하는 노력들이 사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영리의 활동가,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상담하고, 구제받을 길을 함께 찾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인건비가 사업비가 아닌 단순 운영비로 치부돼 법적 규제 대상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같은 경우였다. 주무관청은 ‘공익법인의 상근임직원의 인건비는 운용소득의 20% 이내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내부 기준을 이유로 들며 독립운동가와 친일 역사를 규명하는 공익사단법인의 연구자 직원 정수 승인을 거부했다. 연구원 인건비 지급을 위한 기부회원들의 기부금 사용도 동결시켜 기부금이 쌓여 있음에도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수개월째 이어졌다. 결국 연구자들은 소속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수십 년간의 쌓아온 연구소의 연구 기능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공익법인은 주무관청을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처분을 다투는 행정 소송을 진행했고, 1년여 기간을 다툰 끝에 지난 12월 법원은 공익법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주무관청의 상근임직원 정수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주무관청은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 기준에 따라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공익사업도 사람이 합니다

비가 새는 집에 남매가 라면 하나를 나눠 먹는 광고를 보면 많은 사람이 채널을 멈추고 지갑을 연다. 이렇게 모인 돈이 아이들의 생활비로 지급되면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으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잠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제한적이고, 연말 지갑을 여는 속도는 더욱 심화하는 양극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최저주거기준 상향, 아이들만 집에 두고 보호자가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육아기 가정 지원과 돌봄 시스템, 기초생활수급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연구, 입법운동, 캠페인, 연대활동이 필수적이다. 기부금 긴급 지원에서도 전달되는 금액보다 스스로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는 수요자 발굴, 기존의 복지 시스템과의 연계, 정서적 유대관계를 통한 회복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은 오롯이 사람의 몫인데, 우리나라 제도는 사람이 일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는 데 있다. 공익단체의 인건비가 높으면 횡령이라도 한 듯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은 단체에 운영비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부금품법은 모집비용을 15% 이내로 사용하도록 제한한다. 심지어 지난달 16일 대구지방법원 항소심은 단체 인건비는 전액 위 모집비용에 해당한다며, 모집비용 초과 등을 이유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법인과 사무총장을 형사처벌하는 판결을 하였다. 기부금품법상 모집비용이란 모집에 필요한 비용뿐만 아니라 모집과 사용, 결과보고에 이르기까지 모집목적 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법인의 인건비로 사용된 금액은 모두 모집비용에 포함된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이다. 무료급식소 주방 직원들, 가가호호 방문하여 도시락을 배송한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SH-사회주택, 공존과 경쟁을 촉구합니다

지난 8월 유튜브 채널 오세훈TV는 “2014억 원…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낭비된 서울시민의 피 같은 세금” 등의 표현으로 사회주택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게재했다. 사회주택 업계는 ‘신뢰할 수 없는 통계로 사회주택을 왜곡하며 주택 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서울시장의 SH 공사가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을 사회적경제주체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공급한 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는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이 SH 중심의 공급으로 회귀할 것을 시사한다. 반문하자면, 사회적경제주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SH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사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은 LH 사태를 겪으며 이미 무너졌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독점 구조는 부작용을 낳는다. 주거복지 영역에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겠다는 민간 조직이 나선만큼, 이러한 사회적경제조직과 공공이 더 좋은 주거를 두고 경쟁·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실 사업자 문제는 경쟁 과정에서 걸러지고, 책임 있는 감독을 통해 해결할 부분이다. 서구 유럽의 여러 주거복지 선진국에서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이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하여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회주택이 일찍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주택의 총량이 누적되면서 프랑스 파리는 20%, 네덜란드는 전체 시장의 30%를 훌쩍 넘는다. 공급자가 많고 다양해질수록 경쟁을 통해 공급 비용은 낮아지고, 주거의 질은 높아진다는 것은 주거복지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민간 사업자의 확대는 민간 자본 확대로 이어져 공급 총량도 늘어날 수 있다. 과거 대단지 획일적인 주택 개발·공급에 있어서는 공공 중심의 공급이 적합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빠르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높일

[모두의법] 모든 놀이터가 통합놀이터가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함께 놀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즐거운 공간.” 통합놀이터법개정추진단이 지난해 팝업 통합놀이터 행사에서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통합놀이터란 모든 어린이가 장애 유무나 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놀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놀이터를  의미한다. 풀어서 ‘무장애 통합놀이터’라고도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통합놀이터가 단순히 지체장애인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장애인 전용 놀이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단순히 놀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놀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 놀이터는 놀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놀이터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된다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기회를 갖기 어려워진다. 어린이들은 놀이터에서 장애인이 없는 반쪽짜리 사회만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장애와 비장애 통합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진정한 의미의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놀이터에서부터 통합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통합놀이터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통합놀이터가 일부 지역에 조금씩 설치되고 있기는 하지만, 법령상 제약 등으로 인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현행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는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접근할 수 있는 놀이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이 없다. 어린이놀이시설을 설치하는 자는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제17조에 따라 안전인증을 받은 어린이놀이기구를 행정안전부장관이 고시하는 시설기준과 기술기준에 적합하게 설치해야 하는데, 해당 기준에는 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이 열거돼 있지 않다. 따라서 휠체어 그네와 같은 놀이시설은 어린이놀이터에 함께 설치될 수 없는 실정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7조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장애 유무나 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모두의법] ‘비영리 회계투명성’이라는 뜨거운 감자

최근 비영리단체의 회계투명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의기억연대는 쉼터의 운영과 윤미향 대표의 개인 명의 모금 등으로, 나눔의 집은 후원금 사용을 둘러싼 내부제보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도된 내용 중 최소한 회계투명성과 관계된 의혹은 기재누락 내지 오기재로 인한 결과로 해명된 부분이 있다. 물론, 회계나 공시 관련 개별 단체의 역량부족은 비판을 받아야 할 지점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발생 원인을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 논란이 거듭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직도 많은 수의 비영리단체들이 각 단체의 미션을 위한 사업이나 운동에만 신경을 기울이는 나머지 회계나 운영의 책무성, 투명성에 관해서는 부차적인 업무로 취급하는 탓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사실상 강제하는 열악한 재정상태도 문제다. 모든 비영리단체는 자신의 설립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활동에 관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이해관계자란 현재의 기부자들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투신하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 시민, 나아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인 정부도 포함된다. 회계는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비영리단체는 이해관계자들이 단체 활동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회계정보를 충실하게 작성해 공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를 겨우 지급하는 대부분의 비영리단체의 경우 회계 투명성을 위해 큰 비용을 투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회계사 등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는커녕, 회계만 담당하는 전임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조직도 많지 않다. 사회적 경제조직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쉽게 접할 수 있는 전문가 컨설팅 지원정책 또한 비영리 영역에서는 찾아보기

[모두의법] 사회 구성원의 자격과 미등록 이주 아동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 차별적 발언이 일상으로 퍼지고 있다. 만약 올 하반기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이방인을 어떻게 인식할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감염의 해외 유입을 막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높이고 있지만, 그 앞에서 좌절하는 난민들의 목소리는 벽을 넘기 어렵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공정책이 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단속의 위협 없이 검사받을 수 있고, 감염됐다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미등록 외국인’도 신분 걱정 없이 마스크를 공급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기관이 ‘불법체류자’라는 멸칭(蔑稱)에 가까운 용어를 쓰지 않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물론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는 국제표준에 맞춰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도 방역 정책의 대상에 포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발언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마땅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확장되리라 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은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대상인 피해자들은 국내에서 출생한 미등록 이주 청소년이다. 이들은 법무부의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 방안’ 지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와 함께 강제 퇴거가 유예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강제 퇴거 대상이 됐다. 법무부는

[모두의법]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 명예보다 아동 생존권이 우선”

양육비 미지급은 단순한 민사채무와 달리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다. 임신, 출산, 육아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채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한부모가정에서, 양육비 미지급은 사실상 아동의 생계수단을 박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규제는 매우 부실하다.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아도 재산은닉, 위장전입, 잠적 등의 방법으로 집행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무려 80%에 이르고 있다. 지난 1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관계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화제를 모았다. 배드파더스는 제도가 미비한 가운데 생존권을 위협받는 아동들을 위해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운동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 실태와 부실한 규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양육비 관련 제도와 정책의 근본적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재단법인 동천의 변호사들을 포함한 12명의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공익사건으로 보고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변호인단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쟁점 가운데 특히 양육비 미지급 실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지난 1월 14일에 이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공판기일이 진행됐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권 행사가 공소권 남용이라는 점 ▲피고인에게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다퉜다. 이 중 핵심 쟁점인 공익적 목적의 인정여부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벌어졌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배드파더스 사건의 외양은 ‘아동의 생존권’과 ‘양육비 미지급자의

[모두의법] 전염병과 국가의 보호의무

출근길 지하철을 타니 주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공포를 실감한다. 외부에서 오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종종 ‘바깥’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차별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후진적인 중국의 식문화를 성토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NO CHINA”를 선언하며 중국인 출입을 막는 가게들도 생겨났다. 미지의 병에 대한 공포와 생존에 대한 갈망은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공포가 타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기제다.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몇몇 언론의 모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림동을 가보니 실로 위생상 문제가 많았다”는 ‘르포’ 기사가 버젓이 언론매체에 실리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소환한다. 몇 년 전 메르스 방역의 실패는 지난 정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즉흥적인 여론에 즉각 호응하는 것만이 국가의 보호의무일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불필요한 공포의 확산을 막고, 방역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국가 3부 기관 중 하나인 입법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부 국회의원은 혐오 여론에 재빨리 편승해 ‘중국인 입국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2018년 제주도 내 예멘인 난민신청이 불러온 ‘법안 발의 러시’와 비슷한 행태다. 당시에도 ‘대중 추수주의’를 넘어 ‘혐오 추수주의’에 가까운 법안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의됐다. 대부분 난민의 권리와 생존을 제한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법안은 전무하다. 이번 입국금지 법안 등도 혐오정서의 불쏘시개로

[모두의법] ‘폰트 저작권 침해’ 내용증명 받으셨다고요?

최근 1~2년 사이 비영리단체들의 폰트 저작권 침해에 대한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 문의 내용은 거의 같다. 단체의 뉴스레터, 활동 보고서, 웹 포스터 등에 사용한 폰트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폰트 디자인 회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등이 내용증명을 보내고 프로그램 전체를 구입하라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가 받아든 내용증명에는 ‘폰트 프로그램을 적법한 허락 없이 사용했으므로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체 대표 또는 활동가가 저작권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합의금 액수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단체 활동가의 평균적인 월급을 훨씬 웃도는 액수였다. 또 비영리단체 운영에 타격을 줄 정도 큰 액수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대부분 사람은 상당한 공포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두려움 때문에 단체 운영에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임에도 합의금을 지급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합의할 여건이 안 되는 일부 단체는 폰트 저작권자 등에게 고소를 당해 단체의 대표나 담당자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무혐의 처분 또는 불기소 처분 등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직 비영리단체가 관련 처벌을 받은 사례를 접하진 못했다. 하지만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활동가들이 받은 고통과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비영리단체의 폰트 사용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을 사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폰트 저작권 분쟁의 가장 전형적인 유형은 홍보용 웹 포스터에 개인적 또는 비상업적 목적의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모두의법] 시민사회, 규제를 넘어 자발적 연대로

과거 민주화 운동부터 노동 운동, 인권·환경 운동까지. 그간 시민사회는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며 세상을 바꿔나갔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공익적인 영향력 때문에 ‘제3섹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보수적이고 차가운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비영리법인의 수익사업이나 보조금 규모도 커지긴 했지만, 재정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원은 여전히 후원금이다. 시민사회 단체의 운동성은 시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시민 후원금은 단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여러 가지 법제도를 통해 시민사회 단체를 규제한다. 일차적으로는 민법,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사회복지사업법 등으로 법인 설립 단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주무관청의 광범위한 관여가 이뤄진다. 또 후원금을 받고 지출하는 과정에서 법인세법, 소득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세제 혜택을 부여받는 대신 과세관청의 강력한 관리감독 아래 놓이게 된다. 심지어 모금행위를 적극적으로 할 경우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상 모집등록의무가 발생해, 내용 측면에서 중복 규제까지 받게 된다. 최근 논의되는 시민공익위원회 도입과 관련한 제도 역시 감독행정의 효율화 측면이 강하다. 시민사회에서는 단체의 열악한 상황과 불필요한 중복 규제를 지적하며 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따금 발생하는 기부금 횡령 같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반면 기부금에 대한 규제 강화를 외치는 입장도 존재하고, 이러한 주장의 반향이나 설득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시민사회 인프라가 어떤 방향을 향해 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근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을

[모두의법] “종교 활동 금지도 박해” 난민 심사 일관성 유지해주길

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 대상이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도시의 수호신을 경배하지 않아 기존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신앙을 숨겼다면 위해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로마 지하 카타콤에서 몰래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난민 소송에서 법원은 초기 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의 사례를 예로 들며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 활동의 자유’도 포함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한 바 있다. “초기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종교 생활을 했다면 사자 밥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로마제국이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않은 기독교인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한국 법원에서도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난민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운 결정이다. 작년 한 해만 1만6000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가 있었지만, 50여 명만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이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법원에서 난민 신청자의 승소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의 원고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 국적 난민 신청자였다. 법원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배교 행위’로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십자가를 착용하는 등의 공개적인 종교적 표현과 전도 행위 등도 정부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지정기부금단체’ 관리 국세청 일원화…실효성은 글쎄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얼마 전 기획재정부의 ‘2019 세법개정안’이 발표됐다. 개정안에는 ‘공익법인의 공익성 및 투명성 제고’라는 주제로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여러 정책이 포함됐다. 가장 큰 구조적 변화는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및 사후관리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기존에 주무 관청에 하던 지정기부금 신청과 의무 이행 보고를 국세청(소재지 관할 세무서)에 하고, 국세청은 사후 관리의 주체로서 단체에 기부금 모금·지출 세부 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익법인의 공시가 국세청 홈택스에서 이뤄지는 등 다수 자료가 국세청에 모이는 점을 고려할 때 국세청으로 지정기부금 신청 및 관리를 일원화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문제는 위와 같은 제도 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단체에 대한 각종 중복 행정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참에 불필요한 중복 행정을 없애고 실질적인 감독이 가능한 곳으로 진정한 의미의 일원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비영리법인은 설립에서부터 기본재산 처분, 정관 변경 등 단체 운영 전반에 대해 주무 관청의 감독을 받는다. 주무 관청은 매년 사업 계획 및 결과 보고, 예·결산 보고를 받아 단체를 관리·감독한다. 시민들이 모여 만든 결사체의 운영을 주무 관청이 감독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나마 근거는 세제 혜택에 대한 국가의 관리 책무인데, 지정기부금단체 추천 및 관리 권한마저 국세청으로 이관된다면 이와 별도로 주무 관청이 비영리법인의 예·결산을 관리할 실익이 없다. 개정안과 같이 변화하는 경우 지정기부금단체는 국세청이 관리하고, 세제 혜택을 받지 않는 비영리법인, 특히 일반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운영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