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림 마을발전소 대표
“‘대체 마을발전소는 뭐 하는 단체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텃밭을 가꾸다가 마을 지도를 만들고, 장난감 병원을 차리기도 했거든요. 마을발전소는 우리 동네에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합니다. 일자리, 환경, 돌봄 등 어떤 문제도 이웃과 함께 풀어가죠.”
서울 동작구를 기반으로 운영 중인 ‘마을발전소’는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꾸려가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다양한 소그룹을 구성해 마을을 위한 활동에 참여한다. 어른들이 어린이의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난감 병원’, 할머니들이 이웃을 위한 따뜻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할머니 밥상’, 주민들이 서로 가진 책을 빌려보는 ‘똑똑도서관’ 등이 진행된다.
지난달 31일에는 마을의 작은 공터에서 지역 주민들이 모여 친환경 체험을 하는 행사가 열렸다. 현장에서 만난 김영림(48) 마을발전소 대표는 “‘우리 동네에 더 친환경적인 상권을 조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장난감 병원
마을발전소는 지역공동체 발전과 자원순환을 지향한다. 이날도 천연 비누 만들기, 나만의 모종 심기, 양말 새활용 공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지역주민에게 친환경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지역 주민과 상인이 조금씩만 변해도 골목 상권이 바뀔 수 있어요. 과일가게 주인이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사과 하나만 더 얹어줘도 장바구니 사용률이 높아지겠죠.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친환경 봉투를 사용하겠다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친환경 봉투를 구비해놓는 상인이 늘어날 거고요.”
마을발전소의 또 다른 대표 사업은 ‘장난감 병원’이다. 대부분 장난감은 소재가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재활용이 불가능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고장 나도 수리를 받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2019년 마을발전소 이사장님이 동네 아이들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면서 장난감 병원 활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장난감 병원을 확장하면 일자리도 창출되겠더라고요.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장난감 의사’ 모집을 시작했죠.”
2020년 15명의 의사가 모였다. 2021년에는 경력보유여성 3명이 합류했다. 발달장애인 청년, 뇌전증이 있는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이 추가로 지원하면서 장난감 병원 의사는 30명까지 늘었다. 현재 10명이 상시로 활동하고, 20명은 비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든 의사는 장난감 고치는 법, 공구 사용법뿐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법을 배운다. 김 대표는 “장난감 의사로 활동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을 얻는다”면서 “장난감 병원은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웃집 할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장난감병원은 같은 지역에서도 평소 마주칠 일이 없는 고령자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장난감 병원 의사선생님에게 유치원 등·하원 도우미를 부탁한 적이 있어요. 장난감 병원을 오가면서 마을 어르신과 신뢰를 쌓은 거죠. 서로 건강이나 안부를 챙기기도 하고요.” 장난감 병원이 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장난감이 모이고 있다.
이 밖에도 마을발전소는 주민과 힘을 합쳐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될만한 도전을 꾸준히 해왔다. 마을발전소의 소그룹 ‘할머니 밥상’에서는 마을의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년 250명에게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기도 했다. “할머니 4명과 함께 했어요. 요리 장비도 부족하고 장소도 마땅치 않았죠. 하지만 할머니가 청년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작은 마음 하나로 기적을 이뤄냈어요. 할머니들이 직접 편지도 쓰셨다니까요(웃음).”
‘똑똑도서관’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각자 가진 책 목록과 집에 머무는 시간을 온라인으로 공유한다. 이웃들은 게시글을 확인하고서 똑똑 문을 두들기고 책을 빌려갈 수 있다. ‘꼬마농부교실’에서는 동네 형들이 마을의 동생에게 텃밭 가꾸는 법을 알려주면서 함께 채소를 키운다.
김 대표는 “마을발전소의 최종 목표는 마을발전소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발전소 울타리 안으로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을의 주체가 돼서 자기만의 발전기를 돌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개인들이 모여서 온 마을의 변화를 이끌 수 있어요.”
허수현 청년기자(청세담13기)
마을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병원’ 의사들. /마을발전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