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인터뷰] ‘한 권으로 끝내는 ESG 수업’ 저자 신지현 “ESG, 작은 조직일 때 체계 잡아야”

[인터뷰] ‘한 권으로 끝내는 ESG 수업’ 저자 신지현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와 대기업이 ESG 경영을 주도했어요. 정부는 2021년을 ESG 경영의 원년으로 선포했고, 대기업들도 뒤따랐죠. 올해는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있어요. 이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비영리기관도 ESG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막상 시작하려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는 거예요.”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신지현(44) 웰로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가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에서 CSR 담당자로 근무했던 신씨는 현재 맞춤형 정책 추천 스타트업 웰로에서 비즈니스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다양한 기업으로 확산하기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ESG 조언과 교육도 한다.

신지현 웰로 CSO는 “환경 부문 사업이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서 ESG경영을 잘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때로는 이 같은 착각이 ESG 경영의 허들이 되기도 한다”며 “환경·사회·거버넌스 각 요소를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에는 지난 십수년간 축적된 전문성을 담은 책 ‘한 권으로 끝내는 ESG 수업’을 펴냈다.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이 많아 실무자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설립 초기에 ESG 체계를 잡아야 건강한 조직 문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유니콘 기업이 된 다음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죠. 작은 기업일 때부터 제대로 세팅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글로벌 IT 기업과 스타트업에서 지속가능경영 업무를 맡았다. 어떤 점이 달랐나.

“글로벌 기업은 ESG 관련 기준이 높은 편이다. 전 직장의 경우 100년 넘는 역사 동안 굉장히 많은 리스크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리스크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 절차가 잘 마련돼 있었다. 글로벌 감사팀이 리스크를 미리 체크하고 시정하도록 했다. 스타트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아직 생계 유지가 쉽지 않은 조직이니까. 당장의 매출과 지속가능경영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주로 어떤 어려움을 토로하나.

“기업의 리더가 ESG를 경영 과제로 삼아도 실무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절차나 체계가 없기 때문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실무자는 ESG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데, 리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윗선을 설득까지 하면서 진행해야 하니 힘들어한다.”

―책을 쓴 계기는.

“ESG와 관련된 책은 많다. 올해 2월에 책을 낼 때만 해도 시중에 나온 ESG 도서가 이미 45권 정도 됐다. 하지만 대부분 ESG의 개념이나 역사를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ESG 경영 방법론을 담은 책은 별로 없었다. 스타트업, 중소기업, 공기업, 비영리기관 등 다양한 조직의 관계자가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론이나 참고할 만한 사례를 알려주는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조직과 부서별로 어떻게 ESG경영을 적용할 수 있을지 안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략기획·마케팅·HR·재무 등 부서별로 ESG를 내재화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스타트업·비영리기관·공기업 각 조직이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ESG 프로세스를 적용해야 할지도 소개했다. 추가로 소속 기업의 ESG 관련 내용을 직접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워크시트, ESG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참고하면 좋을 만한 사이트 등도 담았다.”

―작은 조직도 방법론만 익히면 ESG 경영을 할 수 있나.

“대기업에 비해 인력이나 자금의 여유가 부족하지만 가능하다. ESG 요소별 중대성을 평가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보통 두 가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첫 번째는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이다.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비용이 발생해 치명적인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리스크라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개인 정보 보호 조치 같은 거다. 두 번째는 이해관계자의 관점이다. 내부적으로 고치기 쉽지 않아도, 외부의 투자자나 고객이 빨리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것들이 해당한다. 두 가지 기준에서 시급성이 양쪽 모두 높은 것부터 시행해야 한다. 산업별로 우선순위는 다르다.”

―기업들은 ‘평가 등급’에 관심이 높다.

“실제로 ESG 평가 점수를 높일 수 있는 담당자를 뽑겠다는 채용 공고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ESG 등급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기업이 터를 둔 지구 환경과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비즈니스도 어려워진다. 기업이 이런 리스크를 방지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ESG의 궁극적 목표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또 중요한 건 기업이 모든 걸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는 거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못한 걸 감추기보다는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미 이해관계자의 수준은 올라갔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기업 활동을 모니터링해서 기업이 잘못한 걸 마냥 감출 수도 없다.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면 오히려 진정성을 이해해줄 것이다.”

신씨는 “우리나라 기업에서 좋은 ESG 경영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자 부딪혔던 어려움과 이를 개선한 경험을 공유하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벤치마킹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럽이나 미국이 ESG 이슈를 견인했어요.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역할을 했죠. 국내에서도 외국에 소개할 만한 선진적인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해요. 이번 책의 후속편을 쓰게 된다면 사례집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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