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전기차 대신 가솔린차로 배달”… 美 우정국, 바이든의 ‘탄소중립’에 찬물

미국 우정국(USPS)이 노후 우편배달 차량 교체를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와 부딪히고 있다. 우정국은 가솔린차로 교체하겠다는 입장이고,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 정부 기관 중 단일 기관으로는 최다인 23만대의 차량을 보유한 우정국은 지난해 2월 “기존 노후 차량 가운데 10%를 전기차로, 나머지 90%를 가솔린차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정국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온 상황이었다.

갈등이 본격화된 건 지난 2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환경청(EPA)과 백악관 환경위원회(CEQ)가 루이스 드조이 우정국장에게 경고 서한을 보내면서다. 우정국의 노후 차량 교체 계획이 ‘클린 에너지’를 표방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으니 이를 전면 백지화하고 공청회를 개최하라는 내용이었다. 비키 아로요 EPA 부청장은 서한을 통해 “우정국의 발표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관공서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하려는 연방 정부의 계획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USPS 제공
미국 우정국(USPS)에서 우편배달 용도로 운행하고 있는 2t 트럭. /USPS 제공

교체되는 가솔린 신차, 노후 차량과 연비 차이 없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미국산 제품 구매를 우선하는 내용이 담긴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약 65만대에 달하는 관공서 가솔린 차량을 오는 2035년까지 모두 전기차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난해 4월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까지 미국 내 온실가스를 완전히 퇴출하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차량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미국 내 온실가스 배출의 최대 주범으로 전체 온실가스의 29%를 차지한다.

미 의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연방 상원의 환경 및 공공사업위원회 소속 톰 카퍼(민주당) 위원장도 4일 우정국장에 서한을 보냈다. 카퍼 위원장은 “우정국이 근본적으로 결함 있는 자체 환경평가 보고서에 의존해 노후 차량을 가솔린 차량으로 교체하기로 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면서 재고를 촉구했다. 우정국을 관할하는 연방 하원의 정부감독개혁위원회 산하 정부운영소위 위원장인 민주당 게리 코널리 의원은 “드조이 국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전환 계획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며 사임을 촉구했다. 또 “드조이 국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우정국 이사회가 그를 해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정국이 계약한 가솔린 신차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우정국은 지난해 오하이오주 소재 방산업체인 오시코시(Oshkosh)사와 계약하고 향후 10년간 ‘차세대운반차량(NGDV)’으로 명명된 가솔린 신차를 공급받기로 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우정국은 최대 113억 달러를 투입해 약 16만5000대의 가솔린차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계약한 신차의 연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신차의 주행거리는 갤런당 8.6마일(약 14km)로 기존 노후 차량보다 고작 0.4마일 늘어났다. 자동차 업계 표준인 갤런당 12~14마일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환경청은 “우정국이 계약한 가솔린 신차가 향후 20년간 뿜어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00만t에 달한다”면서 “이는 매년 4백30만대의 승용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지적했다.

우정국의 탄소중립 역행, 정치적 의도 있다?

우정국이 가솔린 차량을 고집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재정 문제 때문이다. 가솔린차 대신 전기차를 채택할 경우 추가로 30억 달러가 더 소요된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직원들의 연금 적립비 증가와 우편물 급감 등으로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우정국의 부채는 현재 2000억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드조이 국장은 “우정국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다”면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정국이 바이든의 전기차 전환 방침에 역행하는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공화당 인사인 드조이 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우정국 이사회에 의해 2020년 5월 임명됐다. 드조이는 지난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우정국의 적자를 이유로 들며 집배원들의 초과 근무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코로나19로 우편투표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우편투표는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던 시기였기에 민주당은 드조이가 트럼프의 편에서 우편투표를 방해하려 했다며 분노했다.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드조이 국장의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우정국은 미국 정부 기관이지만 국민 세금이 아닌 우표 판매와 우송 서비스 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대통령이라 해도 그를 해임할 권리는 없다. 우정국장을 해임하려면 9명으로 구성된 우정국 이사회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이사회는 공화당 4명, 민주당 4명, 무소속 1명 등으로 구성돼 있어 해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드조이 국장이 바이든 행정부의 경고를 무시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우정국의 신차 공급이 2023년부터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초기에는 가솔린차를 공급하고 향후 재원이 확보될 경우 전기차로 전환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간접시설 확충을 위해 발의한 ‘더 나은 미국재건법안’(Build Back Better Act)에 우정국 노후 차량의 전기차 전환을 위해 60억 달러를 배정해 놓은 것도 이런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찰리변 더나은미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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