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촬영장 동물학대 논란에… 정부, 가이드라인 만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 출연하는 동물을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고 25일 밝혔다. 최근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된 말이 폐사하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일어난 지 엿새 만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19일 방영된 ‘태종 이방원’ 7화에 주인공 이성계(김영철 분)가 낙마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제작진들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고 잡아당겼고 밝혔다. 당시 영상에는 말의 몸체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쏠리면서 목이 심하게 꺾인 채 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모습이 담겼다. 놀란 말은 몸을 일으키려 다리를 몇번 굴렀지만 결국 일어나지 못했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해당 말은 사고 일주일 후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7회에서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들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잡아당긴 것으로 드러났다. 와이어를 잡아당기자 말은 몸에 큰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하게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몸체가 뒤집히며 땅에 쓰러진 말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일주일 후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자유연대 페이스북 영상 캡쳐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장에서 낙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제작진들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잡아당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말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일주일 후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자유연대 페이스북 영상 캡쳐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방송에 출연한 말은 ‘까미’라는 이름의 퇴역한 경주마였다. 까미는 5년여간 경주마로 이용되다가 마사회에서 말 대여업체로 팔려온 뒤 약 6개월가량 업체 소속으로 지냈다. ‘태종 이방원’ 출연 역시 대여업체를 통해 주인공 말의 대역으로 투입됐다.

동물학대 논란이 확산하자 KBS 측은 “최근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게시된 지 나흘 만인 25일 오후 5시 기준 약 14만2100명의 동의를 얻었다. 태종 이방원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 중단·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급히 대응에 나섰다. 재발방지책을 수립하려는 목적에서 프로그램 제작진이 출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 현장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 전했다. 가이드라인에는 ▲기본 원칙 ▲촬영 시 준수사항 ▲동물 종류별 유의사항 등을 토대로 세부 내용이 담긴다. ‘기본 원칙’은 동물보호법상 관련 규정을 준수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안이다. ‘촬영 시 준수사항’은 위험한 장면을 기획·촬영 시 CG 등 동물에 위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하고 안전조치를 강구하는 지침이다.

이 밖에도 농식품부는 출연동물의 보호·복지를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할 예정이라 전했다. 동물보호법이 규정하는 ‘동물 학대’ 행위에 출연 동물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하고 촬영, 체험 등을 위해 동물을 대여하는 경우 관계자 준수사항을 법령에 명시하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늦깎이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동물보호단체 아메리칸휴메인(American Humane)은 2015년에 미디어 출연동물 안내지침을 발행했다. 아메리칸휴메인은 1940년에 할리우드 영화·방송 세트장에서 동물 사용을 모니터링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약 21m 높이 절벽에서 말을 고의로 떨어뜨린 고전 서부극 제시 제임스(Jesse James)의 동물 학대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1972년부터 영화 엔딩크레딧에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다는 문구 ‘NO Animals Were Harmed’를 삽입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동물권 단체 카라가 2020년 12월에 발표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는 아메리칸휴메인의 지침서를 참고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에는 ▲미디어 출연동물의 안전을 위한 일반 원칙들 ▲동물 촬영의 세부 원칙들 ▲종별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이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카라는 “’태종 이방원’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라며 “2020년에 발행된 가이드라인은 이미 주요 미디어 기관에 보내졌으나 아직도 촬영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지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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