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명의 봉사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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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봉사원 2만666가정 직접 찾아가
수혜자 맞춤 지원하는 희망 솔루션 프로그램
의료 소외계층 1만157명 희망 진료센터 지원 받아

“모든 것이 생소했어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발음도, 억양도 많이 달랐거든요. 모르는 단어도 너무 많았어요. 식당에 적힌 ‘셀프(Self)’란 뜻도 몰랐으니까요. 그때마다 전화로 ‘SOS’를 요청하면, 항상 달려와서 해결해주셨어요. 한국에 올 땐 혼자였지만, 도착한 이후에 저는 혼자가 아니었어요.”(대학생 조하나〈가명〉씨)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더라고요(웃음). 뭐든 적극적으로 배우려하는 모습이 참 예뻤어요. 처음부터 마음이 잘 통한 데다가, 워낙 자주 만나다 보니 다들 ‘모녀지간’으로 알아요.”(주부 정종숙씨)

2009년 여름, 두 사람은 대한적십자사 봉사자와 수혜자로 처음 만났다. 북한에서 자란 하나(23)씨는 19세 나이로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 공안을 피해 산골 낭떠러지를 지났고, 태국 메콩 강을 건너다 경찰에 체포도 됐다. 두 달간의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한국. 탈북자 정착 지원센터인 ‘하나원’에서 적응 교육을 마치고 처음 거리로 나온 날, 그녀를 마중 나온 사람이 바로 정종숙(60)씨였다. 정씨는 2005년부터 적십자 봉사원으로 활동해왔다.

정씨는 버스·지하철 이용 방법부터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등 각종 서류 발급하는 법,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 사용법도 알려주고, 청약저축 등 재테크 노하우도 조언했다. 무료로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 자격증도 딸 수 있도록 했다. 지인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해줬다. 정씨는 만날 때마다 하나씨의 건강 상태도 체크했다. “얼굴에 있는 붉은 여드름 자국이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알로에나 피부약을 발라도 없어지질 않고, 항상 배가 아프다고 하길래, 병원에 데려갔죠. 대장 내시경을 해보니 대장에 혹이 3개나 발견됐습니다. 두 번에 걸친 수술로 모두 제거했습니다.”

봉사자와 수혜자의 결연 의무 기간은 1년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정씨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 덕분에 하나씨는 ‘의상 디자이너’라는 꿈도 찾았다. 최근엔 홍익대 의류학과에도 합격했다. 북한 의류 공장에서 재봉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돼서 북한 아이들에게 예쁜 교복을 무료로 나눠주는 게 그녀의 목표다. 하나씨는 “혼자였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정씨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정씨는 “나야말로 하나 덕분에 매일 에너지가 넘친다”면서 “봉사를 통해 친딸 같은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됐다”며 손을 포갰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희망풍차'를 통해 2만666곳의 아동청소년, 다문화, 노인, 북한이주민 가정이 혜택을 받아왔다. /적십자 제공
2012년부터 지금까지 ‘희망풍차’를 통해 2만666곳의 아동청소년, 다문화, 노인, 북한이주민 가정이 혜택을 받아왔다. /적십자 제공

◇봉사원 12만6000명 수혜자 맞춤형 서비스의 원동력

비단 정씨뿐만 아니다. 적십자에는 전국 봉사원 12만6130명이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고 있다. 일반봉사회, 전문봉사회, 직장봉사회, 자문·후원 조직 등 봉사 조직만 총 4181개에 달한다. 봉사원들은 주 1회 이상, 결연 가정을 방문해 생필품 등을 지원한다. 한번 결연을 하면 1년 이상 인연을 이어가기 때문에 수혜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제주도에 사는 문보심(가명·80) 할머니에겐 벌써 7년째 결연을 이어온 봉사원이 있다. 자식들에게 외면받은 채 홀로 살아온 문 할머니는 “이젠 내 생일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매주 가정방문은 물론,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와 축하해주는 봉사원 김동화씨 덕분이다. 문 할머니는 “몸이 아플 때는 김씨 아들이 대신 와서 봉사를 하는데, 얼마 전 ‘취직했다’면서 내복 선물을 가져왔더라”면서 “마음 따뜻한 봉사원들 덕분에 이젠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봉사원이 찾아가는 결연 가정만 총 2만666곳에 달한다. 가정방문뿐 아니다. 봉사원들은 수혜자를 직접 발굴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통장, 단체장, 주민센터 등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 가정을 찾아낸다. 구청이나 복지관을 연결해 수혜자의 중복 지원 여부를 확인한 후, 적십자 수혜자로 등록한다. 정유근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송파·강동봉사관 팀장은 “지역 복지관에서 수혜자를 발굴해 적십자 봉사자 연결을 부탁할 정도로, 사회복지의 빈틈을 적십자 결연 서비스로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봉사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결연활동 교육, 응급처치법, 가정보건교육, 심리사회적 지지교육 등 봉사원을 대상으로 전문교육도 실시한다. 지금까지 4만6773명에게 1129회에 걸친 교육이 이뤄졌다.

◇적십자 ‘희망풍차’의 바람… 복지 사각 메운다

적십자는 이러한 봉사 인프라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2년 ‘희망풍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2만6000명의 봉사원이 집중돌봄이 필요한 아동·노인·다문화가족·북한이주민 등 4대 취약계층과 일대일 결연을 맺는 것. 지난해 2만 세대에서 2013년 12만2650세대로 확대했다. 7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예악 속체아씨는 적십자의 ‘희망 솔루션 프로그램’을 통해 새집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은 주거환경개선, 교육비, 의료비 등 수혜자가 일시적으로 큰 비용을 필요로 할 경우, 긴급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그동안 속체아씨는 60년이 넘은 인천의 낡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사업 실패로 가족이 빚을 떠안게 됐기 때문. 지붕 틈새가 갈라져 비 오는 날마다 방 안에 물이 가득 찼고, 손만 대어도 벽이 부서져 내렸다. 봉사원 기춘자씨는 ‘희망 솔루션 프로그램’에 속체아씨의 사연을 신청했고, 두 달 후 보수공사가 완료됐다. 속체아씨는 “봉사원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열었다”면서 감사함을 표했다.

적십자는 희망풍차 프로그램과 함께, 지난해 전국 5개 적십자 병원에 ‘희망진료센터’를 개소했다. 의료 소외 계층에게 진료비 총액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1만157명이 의료 지원을 받았다. 7월 1일에는 수혜자가 원하는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희망풍차 온라인 쇼핑몰’도 오픈했다. 수혜자들이 필요한 생필품, 식품, 패션잡화 등을 봉사원에게 이야기하면, 쇼핑몰 아이디를 부여받은 봉사원이 물품을 구매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김은용 대한적십자사 홍보실장은 “지난 1년간 희망풍차 프로젝트를 통해 적십자의 인적·물적·생명 나눔이 더 체계화되고, 확대됐다”면서 “누구든지 함께 소외된 이웃을 보듬는 새로운 희망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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