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코이카 비정규직 차별 논란
열악한 ‘특수지’ 파견자들에
생필품 송료 관세·통관 면제
2월부터 비정규직은 지원 중단
정규직은 되레 연 4회로 늘려
외교부 산하 무상원조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에서 비정규직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생활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한 나라에 파견된 직원에게 제공하던 ‘생필품 외교행낭 지원 제도’를 비정규직에게는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각국 사무소에 통보하면서다. 전 세계 40개 나라에 파견된 코이카 소속 비정규직 코디네이터(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은 “그동안 외교행낭을 통해 마스크 등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중단 통보를 받았다”면서 “정규직은 되고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게 더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스크 없다는데… 비정규직 나 몰라라
외교행낭(Diplomatic Pouch)은 본국 정부와 현지 대사관 사이에 오가는 소포나 화물을 뜻한다. 외교 문서로 취급돼 관세와 통관 절차가 면제된다. 마스크·생리대·기초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조차 제대로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배려인 셈이다. 외교부는 분쟁 중이거나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 경제적으로 열악한 66개 지역을 ‘특수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코이카는 현지 파견자들에게 외교행낭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인당 40~160㎏까지 지원하는데 국가별 위험도, 잔여 체류 일수 등을 따져 무게에 차등을 두고 있다. 코이카가 파견 중인 비정규직 코디네이터는 2021년 2월 기준 157명으로, 이 중 132명이 특수지에 파견돼 있다.
코이카는 지난달 1일 ‘해외사무소 파견 코디네이터 생필품 송료 지원 중단 안내’라는 문서를 각국 사무소에 보냈다. ‘외교부 개발협력과의 요구로 코디네이터에 대한 외교행낭 지원을 즉시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1분기 외교행낭 신청일이었다. 많게는 수백만원가량의 물품을 구매해 짐을 부칠 준비를 하고 있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코이카의 통보에 당황했다.
코디네이터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외교행낭으로 받으려던 물건이 현지에선 구하기 힘들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마스크·의약품 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현지 코디네이터 A씨는 “마스크와 기저질환 관련 약 등 100만원어치가 한국 부모님 댁에 그대로 쌓여 있다”고 했다. 그는 “하루 수천 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이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마스크는 얇은 부직포 수준”이라며 “출국 전에 코이카에서 ‘짐 들고 가느라 고생하지 말고 외교행낭을 적극 이용하라’고 해서 마스크도 별로 안 가져왔는데 이제 몇 장 안 남아서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최근 코로나뿐 아니라 에볼라·흑사병 등 감염병이 다시 들끓고 있어 이 지역 코디네이터들의 두려움은 더욱 크다. 코이카는 외교행낭 지원 대신 현지 생필품 구매 바우처 제공과 어학 교육비 지원 등의 대안을 내놨지만 코디네이터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현지 마스크나 약, 생리대 등 생필품의 품질을 믿을 수가 없고 가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현지 대사관에서도 ‘가짜 물건 안 팔 것 같은 상점’ 리스트를 교민들에게 공유할 정도다. 코디네이터들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어학 교육비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규직 외교행낭 지원은 두 배로 늘려
특수지의 경우 물품 배송을 위해 사비를 들여 사설 업체 이용도 여의치 않다. 코로나로 통상적인 물류 항공편이 끊긴 데다, 통관 과정에서 물건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비정상적인 금액의 관세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코디네이터 B씨는 “10만원어치 물건을 받기 위해 20만원을 운송비로 내면 80만원이 세금으로 나오고, 그마저도 의류나 약, 마스크는 뺏기기도 한다”고 했다.
현지 코디네이터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건 정규직 대상 외교행낭 지원은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는 정규직·비정규직 상관없이 연 2회 외교행낭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현지 상황 악화를 이유로 정규직에게 연 4회로 지원 횟수를 늘렸다. 당초 외교부가 내린 지침에는 코이카 정규직 직원 대상 지원을 줄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코디네이터 C씨는 “세금 절약을 위해 모두 똑같이 지원하지 않겠다면 차라리 받아들이겠지만,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은데 정규직은 위험하니 지원을 늘려주고 비정규직은 지원을 끊겠다고 하니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코이카 비정규직 코디네이터들은 단체행동에 나섰다. 지난 2월 16일 코이카 비정규직 코디네이터 157명 가운데 80여 명이 외교행낭 지원 중단에 대해 항의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일부 직원들의 항의 문서는 코이카에 제대로 전달됐지만, 대다수 문서는 현지 정규직 소장·부소장들에 의해 내용이 편집되거나 삭제돼 원본과 다르게 전달됐다.
비정규직 코디네이터들이 코이카에 반기를 든 건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코이카에 밉보일 경우 일을 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한 수십 명의 코디네이터는 모두 “철저히 신상을 익명에 부쳐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코이카가 바뀔 때까지 단체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코디네이터 D씨는 “사람 중심, 비정규직 철폐를 내건 정부가 정작 자신들이 고용한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외교부·코이카 “코디네이터는 직원 아냐”
외교부와 코이카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부의 ‘외교행낭 및 신서사 운영 지침’ 5조 1항을 보면 ‘기후, 생활 조건이 현저히 불리한 특수 지역의 공관 운영 및 직원의 근무에 필요한 의약품과 필수품에 대하여는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하여 규정에 따라 외교 화물로 발송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코디네이터는 직제상 ‘직원’이 아니므로 애초에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코이카 측은 “외교부 산하기관으로서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코디네이터들은 이에 대해 즉시 반박했다. 코디네이터 E씨는 “코디네이터는 모집 공고문에 있는 업무만 하는 전문 인력이 아니라 코이카 본부와 사무소, 심지어 대사관이 지시하는 일까지 한다”면서 “일부 국가에선 코디네이터가 사무소장 대행을 맡고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코디네이터는 코이카의 상시 업무를 수행하는 말단 기간제 근로자이므로 직원이 맞는다는 주장이다.
코이카 내부 규정에도 코디네이터들이 ‘직원’으로 명시돼 있다. 코이카가 지난 2018년 11월 채택한 인권경영헌장에 따르면, ‘임직원’을 코이카에 근무하는 임원을 비롯해 일반직, 공무직, 기간제 등 현지 사무소에 고용된 자’로 규정하고 있다. 함대웅 AL인사노무컨설팅 노무사는 “코이카가 코디네이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직접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에 인건비 출처와 관계없이 소속 기간제 근로자로 봐야 한다”면서 “이 경우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8조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 정규직과 기간제라는 고용 조건만을 이유로 복지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더나은미래 취재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6일 코이카는 “항공화물 송료 지원, 한국 휴가 시 위탁 수화물 비용 지원 등을 검토하겠다”는 협조문을 코디네이터들에게 보냈다. 코디네이터들은 “도움이 안 되는 지원 방식”이라고 말했다. 외교행낭이 아닌 경우 물건 송달 자체가 어렵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언제 한국에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코이카의 내부 인권 문제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년차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는 “지구촌 삶의 질을 말하는 국제개발협력 공공기관이 예산 절감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이토록 많이 고용하는 것부터 문제”라며 “개발협력 현장에서 발로 뛰는 코디네이터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