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작은 손재주로 만든 큰 변화…장애인 삶 살피는 세심한 관심이 비결

대전 둔산동에 위치한 예비 사회적기업 ‘청각장애인 생애지원센터(이하 ‘청생원’)’가 작은 기술로 청각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청생원은 지난 2018년부터 청력 향상을 위한 수술인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앞둔 청각장애인에게 보조기기를 감싸는 뜨개커버와 고정핀을 제공하고 있다.

인공와우 이식수술은 청각장애인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는 수술이다. 보청기를 사용해도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청각장애를 가진 난청인들의 달팽이관에 인공 달팽이관을 심는 수술이다. 뜨개커버와 고정핀을 제공하는 것은 사소한 데서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청각장애인들의 호응은 뜨겁다. 지난 1일 화상으로 만난 조성연 청생원 대표는 “세심한 관심에서 만들어진다면 작은 기술로도 누군가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비용 비싸고 까다로운 인공와우 수술…작은 기술로 청각장애인 돕고파

인공와우 이식수술은 청력이 아주 낮은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수술이면서도 수술비가 4000만원 이상의 고가라는 점, 평생에 한 번 밖에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청각장애인에게 ‘애증의 수술’로 불려 왔다. 인공와우는 내부에서 청신경을 자극하는 수용 자극기와 외부에서 소리를 받아들이는 마이크와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안테나가 있는 헤드피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체 내·외부가 연결된 장치다 보니 관리도 까다로워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부 헤드피스가 충격이나 습기로 고장이 나는 경우도 많고, 일반 회사에서 판매하는 단일 모양의 인공와우 커버가 두상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또, 헤드피스가 인체에 삽입된 인공 달팽이관과 붙어 있는데 이 두 개를 잇는 자석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떨어지지 않도록 머리카락에 붙이는 분실방지용 고정핀과 각자 두상에 맞추어 쓸 수 있는 뜨개커버를 만들기로 한 겁니다. 처음엔 저와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 청생원과 관계를 맺은 분들께 드리겠다는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했는데, 요청이 빗발쳐 지금은 전문 공방에 맡기고 있습니다.”

인공와우(왼쪽 사진)와 이를 감싸는 뜨개커버.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

처음 시작은 고정핀이었다. 청생원 활동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손재주 정도로 생각했다. 조 대표는 “처음에는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 1000개 정도를 만들었는데, 돈을 받고라도 더 많이 배포해달라”는 말을 듣고 유상 판매를 시작했다. 무료 배포를 위해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해야 했는데, 일정 금액을 내고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고정핀을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다. 올해부터 유상 판매를 시작했는데, 벌써 1000개 이상이 팔렸다.

호응이 늘어나며 매출이 생기면 전적으로 유료 모델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청생원은 반대 길을 선택했다. 이번 달부터 인공와우 수술을 앞둔 사람들을 위해 고정핀과 뜨개커버를 세트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8월 중순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9월 1일 기준 벌써 40명이 신청했다. 조 대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이란 걸 알게 됐으니 무료로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와 소통하려는 자세 중요

청생원은 지난 2018년 11월 설립된 기관으로, 청각장애인의 행복한 인생 설계가 목표다. 수어·문자 통역부터 상담·교육·재활 활동과 장애인식개선 활동도 진행한다. 조 대표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감과 소통을 통해 장애인이 자립해 삶을 꾸려나가도록 돕는 게 청생원의 활동 목표”라고 했다.

조 대표는 청각장애인-비장애인 청년이 함께 사회문제 해결을 꿈꾸는 커뮤니티 ‘청각장애인들의 공감과 소통’을 통해 청생원 모델을 구상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수어·문자 통역 등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다른 사람까지 도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을 단순히 돕기보다, 함께 소통하며 사회로 나갈 디딤돌을 만들자는 생각에 청생원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도 ‘청각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뜨개커버와 고정핀이 당사자들의 불편함 해소를 취지로 시작한 것처럼, 인공와우 수술을 비롯한 치료 요법 선택과 재활 과정에서도 당사자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조 대표는 “장애 당사자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당사자 동의 없는 치료를 강요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인공와우를 비롯한 수술 여부도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고, 가족 등 주변인들은 적극적인 지원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게 저희의 원칙이에요. 장애인 가족 분들에게도 이 사실을 여러 번 알려 드리고, 인공와우 수술 이후에도 소리가 잘 들리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합니다. 당사자가 스스로 세상으로 걸어들어올 수있도록 하는 거죠.”

청생원은 이미 몇 달 전 청각장애인을 위해 입이 보이는 ‘립뷰 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주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청각장애인 지원 기관인 사랑의달팽이와 함께 립뷰 마스크를 청각장애인 지도교사에게 나눠주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고립되는 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조 대표는 “고령화 등으로 난청 등 청각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이들을 ‘도울 대상’이 아니라 ‘함께할 사람’으로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런 기술이 없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이 지금 뭘 원하는지를 살피는 거죠.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소통한다면 작은 손재주로도 다른 사람의 삶이 크게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최미혜 청년기자(청세담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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