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점검] 코로나 사태 이후… 벼랑 끝의 발달장애인 가정
부산에 사는 김석주씨는 지난 2월부터 발달장애가 있는 25세 아들을 돌보기 위해 온 가족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후부터 모든 복지관과 활동지원센터가 문을 닫아 가족이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한시도 혼자 둘 수 없는 아들을 나이 많은 시부모님께 맡기고 출근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부모님 손이라도 빌릴 수 있는 김씨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발달장애인 자녀가 있는 한 부모 가정이나, 혼자 사는 발달장애인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경기 김포에 있는 발달장애인 지원네트워크 ‘파파스윌’의 엄선덕 이사장은 “반년 넘게 생계를 포기하고 돌봄에만 매달리고 있는 가정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퇴행이 와서 폭력 성향이나 배변 장애까지 보이는 발달장애인도 있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 아닌 ‘록다운’ 상태의 반년
코로나19 장기화로 장애인 사회 활동이 단절되면서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성종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주간보호시설 1033곳 중 약 80%에 달하는 822곳이 휴관 중이다. 이는 지난 3월 개별 지자체가 발표한 휴관 현황과 비슷한 수치로, 대부분의 장애인 복지시설이 장기 휴관에 들어간 셈이다.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교류나 자아 성취 욕구가 있어, 이를 해소할 통로가 막히면 고통스러워하거나 ‘도전적 행동’으로 불리는 구타, 소리 지르기 등 폭력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SNS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부모는 “우리 아이는 고독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당하고 있다”며 “내가 업고 다니면서라도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비장애인인 사춘기 자녀와 쌍둥이 발달장애인을 키운다는 한 부모는 “발달장애인 아이 중 한 명은 갑자기 집을 나가 몇 시간을 찾아 헤맸고, 다른 아이는 불장난에 집착하고 있다”며 “이를 보고 있는 사춘기 자녀는 일기장에 ‘죽고 싶다’는 말을 써서 상담을 다녀왔다”며 막막함을 토로했다. 제대로 마스크 착용하기가 어려워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갈 수 없으니 매일 몇 시간 동안 드라이브만 한다는 부모도 있다.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해당 부모는 “아이가 ‘내려주지 않는다’면서 운전하는 A씨를 때리거나 깨무는 통에 최근에는 드라이브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퇴행이다.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장애인 당사자가 일상생활 루틴이 깨지면서 어느 순간 유아 수준의 행동 퇴행을 보이는 것이다. 엄선덕 이사장은 “멀쩡히 실습까지 참여하던 청년이 집 안 아무 데나 대변을 볼 정도로 심각한 퇴행이 왔다는 소식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자립에 성공했던 발달장애인이 식욕을 조절하지 못해 당뇨병에 걸리거나 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생긴 심각한 퇴행을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재활 전문가인 지석연 작업치료사는 “발달장애인이 사회 활동을 할 정도로 끌어올리는 데는 주변의 무던한 인내와 오랜 교육 기간,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고, 한번 루틴이 깨어져 버리면 되돌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문제 행동도 많아진다”고 했다.
붕괴 위기에 빠진 가정도 있다.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1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50대 아버지가 자신을 ‘예비 살인자’라고 칭하며 국가적 대책 마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공격 성향을 가진 아이가 코로나19로 스트레스를 받아 집에서 자해하거나 다른 가족을 때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 치료사는 “우울감이나 심하면 공황장애를 겪는 발달장애인 부모도 많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위한 지원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코로나19 대응 지침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내리는 지자체에서 장애인 복지시설도 도서관·체육관 등 편의시설이나 식당 등과 같은 기준으로 휴관을 권고하거나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백 인천장애인자립센터 사무국장은 “장애인을 배려한 정책 설계 없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기관은 물론 당사자까지 죄인 취급하며 책임을 추궁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는 “사명감 있는 일부 직원이 ‘문을 열자’고 해도 기관장이나 지자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네가 책임질 거냐’는 식으로 나오니 결국 모두 다 문을 닫게 되는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정부 지원 기관은 문을 걸어잠그고, 민간 기관만 문을 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활동지원사 서비스가 있지만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활동지원사는 이동 보조와 같은 역할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회적 교감을 해줄 활동지원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서울서부사회서비스원 소속 오대희 활동지원사는 “발달장애인 지원에 전문성을 가진 인력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장애 특성에 맞는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전문 활동지원사 육성이 절실하다”고 했다. 또 시급제로 운영되는 탓에 경증 장애인보다 노동 강도가 센 발달장애인 배정을 피하는 경향도 있다.
전문가들은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발달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광백 인천장애인자립센터 사무국장은 “센터 이용 인원수를 제한하는 등 방법을 찾아 활동 보조 서비스를 재개해 잠시라도 장애인들이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부모들은 숨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무너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인 김석주씨는 “발달장애인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 살아왔다”며 “벼랑 끝에 몰린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사회로 나설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