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기후금융이 온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조치 없이는 기후변화 막을 수 없다”

③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인터뷰

국내에서 금융기관의 석탄산업 투자를 문제 삼기 시작한 건 불과 4~5년 전. 그 시작에 김주진(40) 기후솔루션 대표가 있다. 그는 2017년 ‘국민연금의 석탄화력발전소 지원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석탄금융’에 불씨를 지폈다. 국내 공적 금융기관의 석탄산업 투자 현황을 분석한 건 처음이었다. 그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출신 변호사다. 환경·에너지 부문에서 발전소와 관련된 일을 주로 맡았다. 김 대표는 “환경 분야의 자문 업무를 하면서 우리나라 환경 규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됐다”면서 “발전소에 투자한 금융기관과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도 고민이 깊지만 정부 차원의 강력한 움직임 없이는 변화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주진 대표는 국내 최대 로펌에서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로 일하다 돌연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기후변화 문제는 지금 당장 나서야 하는 시급한 과제”라며 “평생의 주제로 삼아도 될 만큼 가치 있는 분야”라고 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석탄화력보다 값싼 재생에너지, 안 쓸 이유 없다

“기후변화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에 있고, 온실가스는 에너지산업에서 나옵니다. 국내에만 석탄화력발전기가 60기 있는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30~35%를 차지해요. 평균적으로 1기, 즉 굴뚝 하나가 0.5%라는 얘깁니다. 석탄화력발전소 하나 줄일 때마다 전체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거죠.”

지난달 20일 만난 김주진 대표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석탄산업의 문제를 나열할 때면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이 빨라졌다. 그는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발전 부문에서 수많은 기술 혁신이 일어났고, 최근엔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석탄화력만큼이나 낮아졌습니다. 해외에서는 태양광발전소 건설 자금을 조달하는 게 석탄화력발전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합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석탄화력 투자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떨어지고, 석탄화력 발전 단가는 조금씩 오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건 ‘국내 전력시장의 독점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 산업은 사실상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생산, 송·배전, 판매까지 한전과 자회사가 거의 다 해요.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모험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만약 태양광발전 사업자가 삼성 같은 대기업에 전기를 팔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기업 입장에서는 발전 단가 낮은 전기를 쓰면서 비용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사용으로 CSR 측면에서도 덕을 볼 겁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정부 초안 발표 “2034년까지 노후 석탄발전기 폐지”

석탄산업은 세계적으로 감소 추세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연기금은 이미 한전을 투자 금지 대상으로 정해놨다. 영국계 금융기관인 스탠다드차타드(SC)는 신규 석탄화력사업 투자를 금지했고, 석탄화력 매출 비율에 따라 투자 금지 대상을 정하고 있는데 2030년이면 이 비율을 10%까지 낮춘다고 선언했다. 반면 우리나라 공적 금융기관이 석탄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23조원에 이른다.

“해외 금융기관, 특히 연기금이 석탄화력에서 손 떼는 이유는 간단해요. 환경도 문제인데, 돈도 안 되는 거죠. 그런데 한전 사업은 정부가 개입된 ‘준국채’로 봅니다. 전력사업은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해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거예요. 한전의 ‘고탄소 자산’은 언젠가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고 궁극적으로 정부가 메워야 하는 큰 손실로 바뀔 겁니다. 한전 이사들이 주주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두려워하면서 투자를 결정한다면 석탄산업에는 안 할 거예요.”

그는 석탄발전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한전의 체질 개선’을 꼽았다.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전국적으로 깔 수 있는 회사 역시 한전이에요. 지금 문제가 되는 두산중공업이 석탄화력사업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건 큰 점프예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전은 내부 규제를 손질해 나가면 충분히 바꿀 수 있어요.”

정부 차원의 현실적인 규제를 촉구했다. 그는 환경부의 ‘석탄화력발전소 저탄장 규제’를 온실가스 감축과는 무관한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꼽았다.

“석탄화력발전소에 가보면 석탄을 깔아놓은 저탄장이라고 있습니다. 눈앞으로 끝없이 석탄이 쌓여 있죠. 이걸 빨아들여서 컨베이어 벨트로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먼지가 엄청나게 발생해요. 그래서 환경부에서 돔을 씌우고, 발전소 한쪽에 공기정화장치 같은 공조설비를 붙이게 했어요. 문제는 단순히 지붕을 씌우는 게 아닌 수천억원 규모의 사업인데, 한전에서 ‘총괄원가보상제’라는 이름으로 다 보상을 해줍니다. 결과적으로 발전소 가격은 높아졌고, 온실가스는 전혀 줄지 않았죠. 생각해보세요. 보상 없이 비용을 쏟아야 하는 설비 투자라면 오히려 발전소 폐기 방향으로 갔을 겁니다.”

최근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내놓으면서 2034년까지 가동 30년 된 노후 석탄발전기 30기를 폐지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전에 없던 큰 변화”라며 “정부 차원의 강력한 조치만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방치하는 건 코로나 사태에서 방역 지침을 거스르는 것만큼 비난을 받을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 청소년들이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문제 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기후변화를 생존의 문제로 보는 거예요. 시민의 환경에 대한 호소와 정책 결정자들이 중시하는 재무적 관점, 그 두 지점을 연결하는 고도의 전략만이 기후변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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