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긴장된 적은 처음이었다. 지난 2월 20일 목요일 오후 8시 45분, 대구동산병원에서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나를 포함한 병원 운영진이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하루 만에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30명이나 추가로 나온 상황. 전국 확진자가 82명이 된 시점이었다. 대구시는 우리 병원에 코로나19의 ‘지역거점병원’이 돼달라는 요청을 보내왔다. 대구동산병원은 공공의료병원이 아닌 사립병원이라서 운영진의 결단이 필요했다. 긴 회의 끝에 우리는 시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역거점병원이 되기로 결정한 다음 날 아침, 전 직원에게 이 내용을 공지했다. 대부분 당황하고 놀라서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언제 끝날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면, 그리고 누군가 그걸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합시다. 대구동산병원이 합시다!” 모두의 가슴 속에서 사명감이 솟구쳐 올랐다.
먼저 응급실부터 폐쇄했다. 다음 단계는 병실 확보. 입원해 있던 환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절차를 밟아 나갔다.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덕에 하루 만에 병상을 거의 통째로 비울 수 있었다. 2월 22일 토요일 아침. 거점 병원 조직도를 완성하고 각자 임무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이 되자, 확진 환자들을 태운 구급차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N95 마스크, 방호복, 체온계 등 필수 의료용품 조달이 시급했다. 다행히 물건들은 각계각층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채워졌다. 지금 가장 부족한 건 ‘사람’이다. 의사와 간호사 인력이 절실하다. 소식을 듣고 많은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와 주고 있다.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해줬고, 공중보건의들도 합류했다. 다른 지역에서 우리 병원으로 자원해 들어온 ‘모녀 간호사’도 있다.
외부에서 합류한 의료진이 낯선 병원에 와서 근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비상상황실’에 상주하며 외부 의료진이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몇 시간 일하는지, 어디서 잠을 자는지, 동선과 일과표를 챙긴다. 이 밖에도 각 부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해 해결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청와대, 시청, 보건소, 경찰서, 소방서, 의사회, NGO 단체, 교회 등과도 소통한다.
경증으로 입원한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 상급 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도 간혹 생기고 있다. 안타까운 순간이다. 의료진 모두 쉴 틈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확진자가 하루 사이에도 너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상황이 확 좋아지지 않는다. 우리 병원은 어제(3월 7일) 145개 병상을 추가해 총 452개의 병상을 운영 중이다. 280여 명이던 환자는 하루 만에 70여 명이 늘어 현재 350여 명의 확진자가 입원해 있다. 아마 내일모레쯤이면 병상이 거의 다 채워질 것이다. 간호 인력이 부족해 걱정이다. 2시간 이상 버티지 못하는 ‘Level D 방호복’을 입고서 교대로 진료하려면 지금보다 의료진이 2~3배는 더 있어야 한다.
며칠 전 뉴스에서 정부가 영남권에 ‘감염병전문병원’을 세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병원을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감염병 전문 의료진’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배출되는 감염내과 전문의는 평균 17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감염병, 공중보건, 역학조사의 중요성을 이제 모든 국민이 알게 됐으니 더 많은 의료 인력이 공중보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다면 산하에 여러 기관이 생겨나 더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낮에 먹은 샌드위치가 생각난다. 거기에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내일이 걱정되는 자영업자이지만, 오늘이 힘든 의료진을 위해 충북에서 보냅니다.” 한 초등학생은 어렵게 구한 마스크 몇십 장을 우리 병원에 보내왔다. “대구 동구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세요. 코로나19로부터 대구를 지켜주세요.” 전국에서 응원과 격려가 쏟아진다. 내일을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이 때로는 버겁지만, 의사로서 지금처럼 보람된 순간은 없었다. 힘들지만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우리의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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