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로컬] ③아이가 행복한 마을 <끝>
지난 4월 충북 충주 신니면 내포긴들마을에서 ‘로컬 아이돌’을 키우는 특급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프로젝트 이름은 ‘SNG엔터테인먼트 아이돌 만들기’. SNG는 ‘신니 내포긴들’의 영어 약자다. 면 소재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았는데 여학생만 15명이 모였다. 4개월간 연습실에 모여 밤낮으로 춤 연습을 했고, 지난 8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주민 200여 명이 참석한 신니면 마을축제에서 아이돌 댄스부터 트로트에 맞춘 안무까지 다양한 춤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아이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서고 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공간과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신니면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내포긴들영농조합’이 주도한 SNG 아이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겸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있는 윤용철(39) 내포긴들영농조합 사무국장은 “춤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많은데 배울 수 있는 곳이 마을에 없었다”면서 “몇몇 아이들이 주민자치센터 연습실에 몰래 들어가 춤을 추다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10~20대 시절을 춤에 빠져 보냈다는 윤 사무국장은 아이들이 춤을 제대로 배우고 마음껏 연습할 수 있도록 전문 댄서를 수소문해 강사로 초빙하고, 신니면 주민자치위원회에 아이들이 주민자치센터 연습실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프로젝트 초반에는 마을 예산으로 강사비와 아이들 간식비를 조달했는데, 6월부터는 ‘드림위드’ 사업의 지원을 받아 마을축제 공연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드림위드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가 함께 진행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이다.
신니면 주민들도 SNG 아이돌 프로젝트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아이들 활동에 써달라며 100만원을 후원했고, 동네 초등학교에서는 흔쾌히 강당을 공연장으로 내줬다. 공연을 마친 아이들에게 ‘복잡한 안무를 어떻게 다 외웠느냐’ ‘정말 잘한다’며 칭찬해준다. 윤 사무국장은 “내년에도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도 많아서 노래 수업 개설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지난 5월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 문을 연 ‘열린배움터’는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지역 아이들을 위해 여섯 엄마가 마련한 공간이다. 열린배움터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성전초등학교 전교생 42명 중 29명이 이곳을 정기적으로 이용한다. 색칠 공부를 하거나 전자 피아노를 치며 악보 읽는 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주요 활동은 ‘엄마 쌤’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간식을 먹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다.
신원섭(44) 열린배움터 회장은 “성전면에는 한 부모 가정이나 맞벌이 가정이 많은데도 지역아동센터가 없어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이웃집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어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고 간식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엄마 마음’으로 열린배움터를 열었다”고 했다. 운영진은 열린배움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엄마와도 자주 소통하려 애쓴다. 황미라(42) 열린배움터 총무는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엄마들과는 소통이 쉽지 않지만 3자 통역을 거쳐서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한다”고 했다.
아이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육아 공동체를 꾸린 사례도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의 ‘윗마을 마을공동체’는 상촌면에서 20년 가까이 대안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해온 김희정(44)씨가 ‘독박육아’ 중인 동네 엄마 6명을 모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 오전 엄마들은 36개월 미만 아기들을 안고 빈집을 수리해 조성한 공동 육아 공간으로 모인다. 김희정 윗마을 마을공동체 대표는 “동네에 아기 엄마 수가 워낙 적어 지자체의 관심 밖인 데다 드문드문 흩어져 살아서 마주치기도 어려워 일단 꾸준히 모이기라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며 “아이 키우는 고충을 나누고, 함께 간식이나 비누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의지가 되는 ‘동지’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엄마들이 서로 아기를 맡겨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품앗이 육아’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아직은 아기들이 어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며 “계속 모이다 보면 아기들이 다른 엄마들에게 익숙해져 품앗이 육아 모델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엄마들끼리 어린이집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김 대표는 “영동군에 어린이집을 세워달라고 요청해봤지만 아이가 너무 적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다른 육아 공동체 사례들을 공부하며 아이와 엄마 모두 행복한 육아 환경을 만드는 방법들을 계속 찾고 있다”고 했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함께 드림위드 사업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의 강인수 사업기획팀장은 “아동 보호·교육 인프라가 도시보다 현저히 부족한 농촌에서 주민 조직들이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자발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지역사회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했다”면서 “앞으로 지역 공동체들과 함께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강진·영동·충주=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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