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 유지 따라 10억원 유산 쾌척…“복지사각지대 놓인 아이들 위해 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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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9세를 일기로 별세한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의 생전 모습. 고인의 자녀인 최진혁(51), 최경원(49) 남매는 선친이 남긴 유산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 ‘제5호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을 조성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선친의 유지(遺志)를 따랐을 뿐인데, 저희가 과도하게 칭찬받는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모금회)에서 5호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이 탄생했다. 기금 설립자는 최진혁(51)·최경원(49) 남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10억5500여 만원을 출연한 이들은 평생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렸을 뿐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나눔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은 모금회가 운영하는 기부자조언기금(DAF·Donor Advised Fund)’이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기부금 사용처가 결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은 지난해 3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50억원을 출연해 아동·청소년 교육사업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 출발점이다.

최 남매는 지난 4 79세를 일기로 별세한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이 남긴 유산으로 기금을 조성했다. 아버지와 오래 함께 살았던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따와 구산기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금은 앞으로 7년 동안 ▲아동공동생활가정(그룹홈) 퇴소 청소년 자립 지원 ▲중도입국청소년 교육비 지원 ▲낙후 사회복지시설 개선 지원 등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유산 기부, 결정하는 데 어려움 없었다”

지금까지 조성된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 중에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려 유산을 쾌척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10억원이 넘는 돈을 선뜻 내놓은 것을 두고 주변에선 “거룩한 결심”이라고 말했만, 남매는 “유산 기부는 너무 당연한 결정이라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10억원이 넘는 유산을 기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1940년대 시골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셨다. 가족들에게 잘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항상 형편 닿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다.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가진 것을 좋은 데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 뜻이 워낙 확고했다. 그래서 유산을 받아도 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다만 고민한 것은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였다.” (진혁씨)

최 전 회장은 1962년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0여년간 경제 현장을 누볐고, 삼성경제연구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주요 언론사의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냈다. 2010년 췌장암 발병 이후 투병생활을 하면서 재단을 설립해 장학 사업을 하는 꿈을 품었으나 생전에 이뤄내지 못했다. “남긴 돈이 적으나 마땅히 필요한 곳을 찾아 귀하게 써 달라”는 것이 자식들에게 당부한 내용이었다.

기부 방식으로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께서는 늘 “돈에 관한 문제는 버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에 있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잘 쓰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재단 설립도 고민했지만, 10억원 남짓한 돈으로는 재단을 세워 운영하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더라. 그러다가 김봉진 대표가 모금회를 통해 한국형기부자맞춤기금을 설립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 (경원씨)

―김봉진 대표의 기부 방식에 마음이 움직인 것인가

“기부금의 사용처와 운영 기간을 직접 결정할 수 있고, 운영 현황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투명하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우리보다 훨씬 생각도 깊고, 뜻있는 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분께서 선택한 방법이니 뒤따라가도 좋겠다 싶었다.” (진혁씨)

최우석 전 부회장은 2010년 췌장암이 발병해 투병생활을 하다가 지난 4월 별세했다. 사진은 손자·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고인의 모습.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구산기금, 사회의 갈라진 틈 메우는 ‘스카치테이프’ 역할 했으면”

남매는 얼굴 공개를 거부했다. “드러내놓고 자랑할 일이 못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애초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기부를 두고 고민하는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어렵게 앉았다”고 했다.

기부금 사용 계획을 보니 주로 아이들을 위한 사업이 많다.

“지난 7월 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기금을 설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요구한 것은 딱 하나였다.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지원은 부족한 곳. 그래서 복지 사각지대에 남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사회로 나와야 하는 보호종료 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여러 복지 혜택으로부터 제외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도움돼 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씨)

―선친께서도 아동·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

“젊은 시절 폐결핵을 앓고도 도움을 내밀 곳이 없으셨다. “한달도 여적(餘滴)이 없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살림살이를 먹물에 빗댄 것인데, 열심히 살아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 늘 관심을 두셨다.”(경원씨)

경원씨는 나눔을 스카치테이프에 비유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갈라진 틈이 너무 많아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스카치테이프로 이 틈을 잠시나마 막는 것이 개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왜 스카치테이프인가.

“기금 설립을 준비하면서 오빠와 내가 동의한 지점이 하나 있다. 기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망은 법과 제도를 통해 정비돼야 한다. 기부는 이런 안전망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버티도록 약자를 돕는 스카치테이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힘 모아 붙여놓은 스카치테이프가 떨어지기 전까지 공공이 해결책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경원씨)

남매에게 한 번 더 얼굴을 공개할 수 있을지 설득했지만 “죄송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혁씨는 “아버지는 좋은 일을 해도 결코 생색내는 분이 아니셨다”며 “이번 구산기금 조성으로 그치지 않고, 살면서 나눔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아버지를 기리는 방법일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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