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섹터의 환경과 생태계 DGI 2024
한국은 공익활동을 하기 좋은 나라일까? 비영리 조직이 일하기 좋은 환경 정도를 분석하는 지수인 ‘Doing Good Index(이하 DGI) 2024’의 결과가 발표됐다.
6월 28일 서울 용산구 아메리칸디플로머시하우스에서 ‘환경과 생태계 DGI 2024’ 세미나가 열렸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가 주최하고 주한미국대사관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는 공익활동평가지수인 DGI의 2024년도 결과를 공유하고, 한국의 공익활동 환경의 발전 방향을 함께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는 비영리 조직 및 학계 관계자 70여 명이 함께하고, 영어-한국어 동시통역이 제공됐다.
DGI는 아시아 국가들이 얼마나 공익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인지 조사하고 비교하는 연구다.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이어티 센터(Center for Asian Philanthropy and Society, 이하 캡스)가 격년으로 진행하며, 정부 규제, 세금 및 재정 정책, 정부 조달, 공익 생태계 총 4개 분야를 살펴본다.
이번 조사는 17개국의 2183개 사회공익단체(Social Delivery Organization·이하 SD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분석했다. DGI는 아시아의 많은 NGO가 실제로는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점을 고려하여, NGO 대신 사회공익단체(SDO)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DGI는 각 국가가 공익활동을 수행하기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평가하여 4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두 번째 그룹인 ‘Doing Better’에 속했다.
루스 샤피로 캡스 대표는 DGI의 목적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캡스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은 2030년까지 SDGs(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중 단 하나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샤피로 대표는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은 자선활동과 기업의 사회공헌을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SDO와 정부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네로테 웰시 캡스 수석연구원은 한국 공익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규제 개선, 더 많은 자원 조달, 그리고 신뢰회복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한국은 SDO 관련 규제가 많고 복잡한 국가다. 국내 SDO가 소통해야 하는 정부기관은 43개다. 반면 홍콩과 대만에서는 담당 기관이 3개에 불과하다. 한국 SDO의 77%가 관련 법령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는 아시아 평균(55%)보다 22%나 높은 값이다. 웰시 수석연구원은 “규제는 콜레스테롤 같아서 이롭게도 해롭게도 작용할 수 있다” 며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찾고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기부를 장려하는 세제 정책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 기부 환경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큰 만큼, 더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서 정부의 역할과 정책이 중요하다”라며 “기부를 했을 때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은 정부가 국민에게 기부를 독려하는 시그널과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기부지수를 발표하는 CAF는 2016년에 기부금 세제혜택이 있는 나라에서 개인 기부 참여율이 33%로, 세제혜택이 없는 나라(21%)보다 12% 가량 높았다고 보고했다.
한국은 DGI 국가 대부분이 택한 소득공제 대신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SDO에 기부할 경우 공제율은 15%(1000만원 이하, 초과분은 30%), 한도는 연간 근로소득 대비 30%까지다. 아네로테 수석연구원은 “세액공제의 한도 때문에 기부 장려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짚었다.
마지막 과제는 신뢰 회복이다. 한국에서 ‘사회로부터 신뢰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답한 SDO는 31%로, 아시아 평균인 41%보다 낮았다. 정부와 기업으로 대상을 바꾸면 응답률은 각각 16%와 26%까지 낮아진다. SDO·정부·기업은 함께 사회공헌을 해야 하는데 낮은 신뢰도 때문에 협력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샤피로 대표는 “협력 경험을 늘려 신뢰를 쌓아야 한다”며 “정부 조달 사업을 확대해 SDO와 정부 간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은 SDO와 협업해 사회공헌활동을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디지털 기술 활용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한국 SDO는 디지털 기술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사이버 보안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과 컴퓨터 등 기본적인 인프라는 대체로 보급이 됐지만 58%의 SDO가 사이버 보안 대책이 없다고 보고했다. 아네로테 수석연구원은 “SDO는 보안 프로그램을 구축하거나 직원들의 IT 기술 역량을 기르는데 투자할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며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어 DGI발표를 바탕으로 한국 공익활동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우영 월드비전 IT팀 과장은 비영리조직의 보안 협의체에 주목했다. 사이버 공격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우영 과장은 “현실적으로 비영리조직 운영금으로는 IT 전문인력을 충분히 채용하기 어렵다”며 “대신 개발 소스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안 문제의 해결법을 함께 구체화하고 공유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기부와 유산기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재단법인 동천의 이희숙 변호사는 “감소하고 있는 기업기부를 반등시키기 위해서는 기부 세제혜택의 한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기업 기부금은 4조 4000억원으로 지난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불어 이희숙 변호사는 전체 기부액 중 0.9%에 불과한 유산 기부를 늘리기 위해선 유산 기부 시 상속세율 경감 등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유리 사단법인 시민 사무처장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가 피로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예시로 비영리조직 활동가들이 모인 ‘공익네트워크 우리는’이 공익법인 공시제도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전한 사례를 소개했다.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통해 ‘현재 공시제도가 어렵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모아 4년동안 꾸준히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전달했다. 현재는 제도개선과 관련해 국세청과 꾸준히 소통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김유리 사무처장은 밝혔다.
김홍길 경기도청 사회적육성과장은 경기도가 공공조달을 통해 사회적경제 육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소개했다. 김홍길 과장은 “작년 경기도 내 공공기관이 사회적기업과 조달계약을 맺은 규모가 4640억원 가량이다”며 “올해는 이 금액을 5000억원까지 키우는 것이 목표며 중장기적으로는 1조원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경기도 공공기관의 전체 조달계약 규모는 19조 7574억원이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핵심 연구를 함께 논의하는 세미나 시리즈의 두 번째 자리다. 재단은 돌아오는 23일 마지막 세미나인 ‘비영리조직의 새로운 방식과 자원 발굴’ 행사에서 민주주의와 기술의 발전 및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공익활동에 대해 토의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