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데이터 모아 사회 변화 도구 활용…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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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민 운동 방식 ‘데이터 액티비즘’

지난달 초 개설된 웹사이트 ‘노노재팬’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소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식품부터 자동차까지 일상 소비재 가운데 ‘메이드 인 재팬’인 것들을 소개하고 대체할 수 있는 국산제품도 제안한다. 노노재팬의 모든 데이터는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은 것이다. 누구나 사이트에 새로운 일본 제품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고, 이미 등록된 제품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있다. 일본 제품 중에서도 노노재팬에 등록된 제품이 매출에 특히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데이터’가 시민사회의 새로운 활동 무기로 주목받고 있다. 노노재팬의 사례처럼 평범한 시민이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십시일반 모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지식 자산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시민단체가 데이터 활용 기술을 활용해 권력기관의 의도적인 정보 은폐와 왜곡 실태를 밝혀내는 일도 벌어진다. 이처럼 데이터를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삼는 시민운동 방식을 ‘데이터 액티비즘(Data Activism)’이라 한다. 해킹 등 법에 저촉되는 방식은 동원하지 않고 공개된 데이터(open data)를 활용하거나 직접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데이터 액티비즘의 원칙이다.

데이터 액티비즘의 첫 사례로 꼽히는 케냐의 ‘우샤히디(Ushahidi)’ 프로젝트. 우샤히디는 스와힐리어로 ‘증거’란 뜻이다. ⓒUshahidi
케냐의 ‘우샤히디(Ushahidi) 프로젝트’는 데이터 액티비즘의 첫 사례로 꼽힌다. 이 프로젝트는 2008년 케냐 대통령 선거 후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우샤히디는 스와힐리어로 ‘증거’란 뜻. 정부가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있다고 느낀 케냐 사람들이 직접 사건 실태를 드러낼 증거 수집에 나서면서다. 시민들이 주변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 횟수와 사상자 수를 직접 조사해 자료를 넘기면 엔지니어들이 구글 지도 위에 빨간 불꽃으로 이를 표시했다. 완성된 우샤히디 지도는 4만개가 넘는 불꽃으로 뒤덮였다. 프로젝트를 이끈 오리 오콜로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겪은 일을 덮어버리고 싶지 않다”며 “진정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프로젝트 시작 동기를 설명했다.
영국 골드스미스대 산하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chitecture’팀이 폐쇄회로 카메라, 뉴스 영상 등에서 추출한 이미지와 오디오 데이터를 분석해 살인 사건 현장 상황을 3D 모델로 구축한 모습. ⓒForensic Architecture

영국 골드스미스대 건축연구센터 소속의 ‘포렌식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 팀은 왜곡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오디오, 비디오, 이미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총동원한다. 이들은 ‘국제 법의학 수사대’를 자처하며 시리아, 파키스탄, 가자 지구 등 세계 분쟁지역의 사건·사고를 파헤치고 있다. 방범 카메라에 찍힌 사진, 뉴스 보도 영상을 분석·조합해 무고한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살해한 이스라엘 경찰을 잡아내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헬륨 풍선에 카메라를 달아 만든 ‘주민위성(community satellite)’을 띄워 이미지를 수집하기도 한다. 지난달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던 전시 ‘불온한 데이터’에서 포렌식아키텍처 팀이 주민위성으로 작업한 ‘지상검증자료’가 소개되기도 했다.

여러 국제기관의 공공 데이터를 종합해 거시적 관점에서 문제 상황을 조망하고 그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는 빅데이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아마존 지역 환경보호 프로젝트 ‘인포아마조니아(InfoAmazonia)’는 세계보호지역데이터베이스(WDPA),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 미항공우주국(NASA), 브라질 중앙은행 등 세계 20여 개 기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아마존 삼림 파괴 현황, 강제 노동 실태 등을 지도 형태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프로젝트 책임자 구스타보 팔레이호스는 “지도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여러 층위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정치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린피스 프랑스가 시민 8000명과 함께 만든 ‘프랑스 초등학교 채식 빈도수 지도’. 여기서 채식은 육류나 해산물이 포함되지 않은 식단을 뜻한다. 지도에서 빨강은 채식을 한 달에 1회 이하로 제공하는 학교, 주황은 채식을 2주에 1회 제공하거나 이틀에 한 번 선택 가능한 메뉴로 제공하는 학교, 초록은 채식을 주 1회 제공하거나 매일 선택 가능한 메뉴로 제공하는 학교. ⓒGreenpeace France

비영리단체들은 자체 캠페인에 더 많은 시민을 참여시키기 위해 데이터 액티비즘을 활용하고 있다. 그린피스 프랑스는 지난 2017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시민 8000여 명과 함께 3300여 개 도시의 공립 초등학교 채식 급식 현황을 조사했다. 프랑스 어린이의 채식 현황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육류 섭취를 줄이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참여로 총 1만6000개 식단 데이터가 확보됐고, 그린피스 프랑스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랑스 초등학교 채식 빈도수 지도’를 제작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미국·영국 적십자사, 비영리 온라인 지도 제작 단체인 ‘오픈스트리트맵’과 함께 2014년부터 세계 구호 현장의 디지털 지도를 제작하는 ‘미싱맵(Missing Maps)’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반 시민이 자원봉사 ‘매퍼(mapper)’로 참여해 지리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아 피해 규모 조사나 구호 물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의 지도를 완성해나가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 8만여 명이 참여해 건물 395만채와 길 103만㎞를 디지털 지도에 그려넣었다. 데보라 홍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누구나 데이터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인도주의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며 “디지털 환경이 갖춰지면서 이 같은 ‘데이터 액티비스트’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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