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매년 급증함에 따라 지난해 정부가 홍수·지진·태풍 등과 함께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국가 차원의 폭염 피해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하지만, 폭염 취약 지역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폭염 관리는 ‘예방’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 정책이 사후 대책에 치중돼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폭염이 자연재난으로 지정되면서 바뀐 점은 크게 세 가지다. ▲범부처 차원 폭염 대응 매뉴얼이 생겼다는 것 ▲폭염 때문에 사망할 경우 최대 1000만원의 피해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것 ▲정부의 ‘재난 관리 기금’을 폭염 대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해 2월 완성한 ‘폭염 대응 매뉴얼’부터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폭염주의보가 발생할 경우 야외건설 노동자나 폭염 취약계층에 주의 문자를 보낸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기존의 재난문자 발송과 큰 차이가 없고 강제성도 없어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는 ‘질병관리본부가 폭염 취약계층 DB를 구축해야 한다’고 적혀 있지만 해당 기관에서는 “DB 구축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병원에서 폭염 환자 수, 연령대, 발견 지역 등의 정보를 질병관리본부에 넘기게 돼 있는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익명으로 자료를 제출하는 형식이라 정확한 DB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별로 폭염으로 인한 ‘질병 보상금’을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돈을 받기까지의 검증 과정이 복잡하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에 두통·탈진 등 온열질환이 발생했다는 의사 확인이 필요하다. 음주, 지병 등 질병 발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는데, 취약계층의 경우 이 벽을 넘기 쉽지 않다. 장민철 대구 쪽방상담소장은 “대부분의 쪽방촌 주민들은 온열질환이 발생해도 병원에 안 간다. 질병 보상금은커녕 병원비만 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폭염 기간 건설 노동이나 폐지 수집 등 일거리가 줄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소득을 보전해주는 식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폭염’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도 문제다. 기상청이 폭염주의보(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지속) 발령할 때 지원을 시작한다는 게 정부가 정해 놓은 원칙이다. 박종길 인제대학교 환경공학부 교수는 “환기나 냉방이 안 되는 쪽방촌에서는 33도만 돼도 40도 이상의 심각한 더위를 느끼는데, 정부가 그제야 움직인다는 건 죽은 사람 숫자나 세겠다는 것”이라며 “기상청 예보가 아니라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항문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시민들은 한낮 더위가 힘들지만, 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들은 쉼터에도 갈 수 없는 밤 시간이 더 고통스럽다”면서 “주거환경 개선이나 복지제도 확충 등 다른 사회보장 제도와 연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연재난 지정 이후에도 폭염 대책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모든 정부 부처가 모여 역할을 나누고 매뉴얼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폭염 관리의 질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오재호 교수는 “폭염 대책을 들여다보면 지진이나 태풍 대책에 ‘폭염’이라고 이름만 바꿔 쓴 정도”라며 “사고 발생 후 수습에 초점을 맞춘 재난관리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는 ‘대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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