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 위장 기업 막으려면?…고용부, 등록제 TF 논의 결과 첫 공개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정책포럼 진행 모습.

고용노동부와 사회적기업 관계자들이 오는 8월 정부입법 예정인 ‘사회적기업 등록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현행 인증제를 등록제로 전환해 다양한 법인격의 사회적기업이 활동하도록 하는 데에는 대부분의 관계자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원금이나 세금감면 등 사회적기업 대상 혜택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이른바 ‘위장 사회적기업’의 난립을 막을 묘수는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위장 사회적기업을 가려내겠다고 절차를 강화했다간 사회적기업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법개정 취지가 무색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울시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사회적기업 정책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포럼은 사회적기업 등록제 도입의 구체적인 사항을 검토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부터 운영해 온 테스크포스(TF)의 논의 결과를 처음 공개한 자리다. 그간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 등록제의 연착륙을 위해 ▲평가 ▲재정지원 ▲판로·금융 ▲성장·육성 등 네 분야로 구성된 TF를 운영해 왔다. TF에는 사회적기업 종사자, 중간지원조직 관계자, 연구자 등 전문가 27명이 참여하고 있다.

평가지표는 SVI 개선해 활용…재정지원, ‘개별 기업’에서 ‘업종’으로 확대해야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에 대한 가장 큰 관심사는 평가·측정 방식이다. 사회적가치 측정에 따라 개별 기업의 지원 여부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날 TF의 평가 분과에서는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회가치측정지표(SVI·Social Value Index)를 일부 개선하는 안을 내놨다. TF 평가 분과장을 맡은 길현종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인증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소셜벤처 등이 서로 다른 측정지표를 사용하고 있는데, 새로운 지표를 또 만든다고 하면 현장의 혼선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SVI는 2017년 고용노동부가 개발한 인증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다. 사업체의 사회적가치 지향성, 근로자 임금수준, 고용·매출성과 등 14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기존에 인증 사회적기업의 가치 측정을 위해 마련된 지표지만, 협동조합이나 소셜벤처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도록 일부 수정·개선하자는 게 TF 입장이다. 예컨대 ‘근로자 역량강화 노력’에 대한 측정 항목에 조합원 교육을 추가하면 협동조합도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재정지원 분야에서는 개별 기업에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업종별 혹은 업종간 협력, 컨소시엄 지원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재정지원 분과장인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현행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은 법인 설립을 유도하는 창업지원 방식”이라며 “업종간 연합이나 컨소시엄 결성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면 플랫폼노동자, 과학기술, 사회주택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우선구매와 관련한 판로·금융 분야에서는 전문가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TF에서 주장하는 사회적기업 ‘품질인증제’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판로·금융 분야 TF분과장인 이상훈 한국조달연구원 실장은 “품질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일부 사회적기업이 공공구매 참여 혜택을 독식하고 있다”며 “사회적기업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품질인증제’를 개발해 여러 기업에도 혜택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는 “사회적기업 제품의 가치를 일반기업과 같이 ‘품질’에만 둘 수는 없다”며 “가령 하자가 난다고 해도 장애인이 이 제품을 만들었다는 걸 고려해주고, 가격이 저렴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주고 있다는 식의 ‘가치인증제’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정책포럼에서 나영돈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대폭 늘어나면 일반 기업 역차별 우려…감시 생태계 키워야

이날 포럼에서는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 이후 상황에 대한 우려도 활발하게 논의됐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등록제 전환으로 사회적기업이 대폭 늘어나고 이들 대부분이 공공구매 우선대상이나 지원금 등의 혜택을 받게 되면 일반 기업 역차별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는 현행 인증제 환경에서도 위장 사회적기업은 존재한다”며 “사회적기업 진입 문턱을 낮춘다는 등록제 도입의 큰 방향은 유지하되, 상호 지지·감시를 위한 사회적기업 네트워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장 사회적기업을 걸러내기 위한 중앙부처 중심의 수직적 행정 체계 강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TF 평가 분과는 “사회적기업에 매년 등록 요건 달성 여부와 경영공시 갱신을 의무화하는 정도로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원사업에 응모할 경우 추가 정보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TF 재정 분과에서는 “등록은 지자체에 하는데 지원은 중앙정부가 하면 행정 절차만 느려질 수 있다”며 “등록이나 지원 심사의 권한은 지자체와 중간지원조직이 갖고, 해당 정보를 모아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성하는 지방분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TF가 내놓은 제안과 이날 포럼에서 나온 지적 사항을 반영해 오는 8월 사회적기업 육성법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나영돈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위장 사회적기업 진입을 막는 동시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사회적기업 등록제가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꾸준히 당사자, 네트워크 조직과 꾸준히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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