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소송, 세상을 바꾸다…’임팩트소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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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실현 위해 전략·기획된 ‘임팩트 소송’
승패 떠나 재판 과정서 문제 해결되기도
긴 싸움 이어갈 원고 드문 게 ‘한계’
공익 저변 확장…여러 분야와 접목 기대

지난 2016년 2월 시청각장애인 4명이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며 CJ CGV, 롯데쇼핑, 메가박스를 상대로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음성으로 화면 해설을,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을 제공하라는 게 이들의 청구 취지였다. 지난한 공방이 이어졌고, 22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내려졌다. 결과는 원고 승소. 법원이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피고는 1심 판결에 불복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에서 원고가 최종 승소할 경우 영화관 운영사들은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보장하는 시설과 설비를 갖춰야 한다.

‘모두의 영화관 소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소송은 일반적인 민사 소송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개인 간의 권리관계를 다투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피해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고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공익 소송이다. 이처럼 소송을 통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임팩트 소송(impact litigation)’이라 부른다.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된 소송이라는 점에서 ‘공익기획소송’이라고도 한다.

“시청각장애인도 개봉일에 영화 보고 싶다”

임팩트 소송은 소외계층의 숙원 사업 해결을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재판에서 승소하면 시정명령을 통해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두의 영화관 소송 역시 장애인 단체에서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문제 제기해오던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얻어내기 위해 시작된 싸움이다. 소송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맨 먼저 한 일은 소송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일. 장애인에게 필요한 소송인지, 법률적으로 접근 가능한지를 변호사와 장애인 단체가 함께 논의했다. 어느 정도 ‘각’이 나오자, 제도 개선의 파급 효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승소할 경우 최대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선 원고와 피고를 선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모두의 영화관 소송에서는 원고를 장애 정도가 제각각 다른 시각장애인 2명과 청각장애인 2명으로 구성했는데,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편의 서비스를 주기 위해서다.

소송 준비가 진행되면서 힘을 보태는 사람도 늘어갔다. 지평을 비롯해 공익사단법인 두루, 원곡법률사무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에 소속된 변호사 8명과 시민단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이 합류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법원이 재판에 참여한 청각장애인을 위해 재판장에서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수어 통역만 지원해오던 법원부터 변화한 셈이다.

임팩트 소송의 경우 승소나 패소와 무관하게 재판 진행 과정에서 조정을 거쳐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지하철역에 장애인 화장실과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여러 건의 소송에서 승·패소가 엇갈리고 있지만, 관련 시설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역 5곳에 휠체어리프트 대신 승강기 설치를 요구한 소송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인 지난 3월부터 신길역에 경사형 승강기 설치 공사를 시작했다.

14일 지하철역 장애인 리프트 철거와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차별구제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원고와 변호인단이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항소 의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빛나는 전략으로 싸움의 판을 뒤집다

임팩트 소송의 빛나는 전략은 질 것 같던 싸움의 판을 뒤집기도 한다. 지난해 시작된 ‘1층이 있는 삶 소송’은 장애인의 접근권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확대하는 기막힌 전략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대표적 케이스다. 김용혁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를 중심으로 모인 7명의 변호사는 주출입구에 경사로가 없는 건물 1층의 편의점, 커피전문점, 음식점 등에 대한 접근권 확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행 장애인편의법에서 1998년 이전에 허가된 건물과 300㎡ 미만의 시설은 장애인 접근권 보장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번 소송의 원고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려운 노인 등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장애인만의 외로운 투쟁에서 모두의 싸움으로 전환된 셈이다. 피고는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 호텔신라 등 여러 기업을 특정했다. 피고 선정에도 전략이 녹아 있다. 투썸플레이스는 매장이 상대적으로 넓고 2017년 기준 커피전문점 가운데 매장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이다. GS리테일의 경우 국내 편의점 가운데 직영점 비중이 가장 커 본사와 소송할 경우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다.

피고가 특정되자 변호사들은 직접 현장을 뛰면서 자료를 모았다. 최초록 두루 변호사는 “비장애인들은 평소 자주 가는 가게라도 경사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종로구와 중구 지역의 투썸플레이스 지점을 모두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고 경사로 설치와 관련한 건물 임대인과 협의 문제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진행 중인 ‘시외이동권 소송’도 비슷한 케이스다. 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소송이 2013년 패소하자, 이 문제를 장애인만의 투쟁이 아닌 교통 약자 전체의 싸움으로 확대해 새로운 판을 짰다. 이 소송은 1·2심에서 교통사업자에 대한 일부청구가 인용됐고,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긴 싸움 함께할 원고를 찾는 일 쉽지 않아”

공익변호사들은 패소 가능성을 고려해 소송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입법 활동을 동시에 벌인다. 1층이 있는 삶 소송의 경우 ‘캠페인’을 별도로 벌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강정은 두루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는 단순 금전 피해 보상이 아니라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식이 대부분인데, 법원 입장에서도 익숙한 형태의 소송은 아니라서 다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며 “이 때문에 인식 전환을 위한 거리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다양한 공익입법운동을 병행한다”고 말했다.

공익변호사들은 “임팩트 소송의 경우 긴 싸움을 함께할 원고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패소했을 때 원고가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도 한계로 지적된다. 임팩트 소송에서 장애인 사건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뒤에서 원고를 지원하는 장애인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피해자 구제와 제도 개선을 위한 사안의 경우 지원단체나 원고를 구하지 못해 아예 소송 진행이 어려운 편이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소송 과정을 원고가 버티지 못할 때다. 최근에는 공무원 당연퇴직 규정의 부당함을 문제 삼은 25년 경력의 공무원이 소송 도중 사망하면서 사건이 종결되기도 했다. 당연퇴직은 금고 이상의 형이나 집행유예 등을 선고받으면 공무에서 퇴출하는 규정이지만, 사망한 공무원의 경우엔 질병으로 후견인을 선임했다는 이유로 당연퇴직을 당한 케이스다. 후견인 선임 시 퇴직해야 한다는 조항이 당연퇴직 규정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여러 한계를 안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임팩트 소송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함보현 화우공익재단 변호사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는 약 90명 수준인데, 해마다 법조계의 공익 저변은 넓어지는 추세”라며 “임팩트 소송도 소방공무원 안전, 사회취약계층의 주거복지 문제, 가축 대량 살처분 문제 등 분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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