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수)

[12가지 핵심과제] ⑪ ODA 우리 입맛 맞춘 지원보다 그들 상황 먼저 배려해야

12가지 핵심과제 11ODA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공기오염·화상 위험에 노출된 아둘랄라 마을 연기 안나는 화덕 설치해 열효율·위생수준 높여
열매나눔재단
눈병 많던 구물리라 마을 부뚜막 보급해 환경 개선 원조에만 의지하지 않게 자립심·참여도 유도

에티오피아 주거 환경 개선사업은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에티오피아 주거 환경 개선사업은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한국의 해외 봉사 단원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청소년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는데, 정해진 날짜 안에 과제를 해온 아이가 거의 없자 아이들을 다그쳤어요. 게으르다는 생각에 화가 났던 거죠. 그 나라는 수도조차 전기가 잘 안들어와요. 기증받은 컴퓨터 5대를 3시간 작동하기 위해 매일 1갤런(약 3.8리터)의 기름을 사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야 했고, 이 컴퓨터는 센터를 찾는 30명이 돌아가면서 썼어요. 일주일 동안 매일 센터에 와도 컴퓨터에 손도 못 대는 아이가 많았던 이유죠.”(박미석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이사장)

우리의 선의와 열정에만 집중한 나머지, 상대가 처한 환경을 배려하지 못한 해외 ODA(공적 개발원조) 사업의 잘못된 사례다. 윤현봉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사무총장은 “경험이 없다 보니, 상대국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압축 성장 경험을 그대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너무 저돌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더나은미래’는 해당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ODA 사업의 두 사례를 취재했다.

에티오피아 아둘랄라 마을의 한 가정이 새 화덕이 설치된 부엌에 모여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에티오피아 아둘랄라 마을의 한 가정이 새 화덕이 설치된 부엌에 모여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사례①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에티오피아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우리 집에 화덕을 설치하고 싶다.”

지난 5월, 에티오피아 아둘랄라 마을 주민들이 해외 봉사 단원 최은미(26)씨를 찾았다. 최씨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재를 공급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재는 우리가 구입할게. 다만 화덕을 만들 수 있는 그 철제 틀만 빌려줬으면 좋겠어. 시멘트도 우리가 돈을 조금씩 모으면 살 수 있고, 연통도 그리 비싸지 않으니까.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IWFF·이하 재단)이 에티오피아에서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실시한 지 1년 만의 변화였다. 이미 화덕 설치를 마친 27가구 외에, 17명의 주민이 이렇게 직접 화덕을 설치했다.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의료 지원이었다. 하지만 현지 조사 결과, 재단 측은 사업 방향을 ‘주거 환경 개선’으로 바꿨다. 주거 위생 불량이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다소 시끄러웠다. 기존 사업과 달리, 주는 것은 적으면서 주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은 소위 ‘피곤한’ 사업이었다.

먼저 주목한 것은 배연 시스템(화덕·연통·창문)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실내 공기 오염은 매년 7만2400명을 사망(WHO 보고서, 2009)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건축 자문으로 사업에 참여했던 김원철 아키텍트포라이프 건축사무소장은 “에티오피아는 ‘인제라’라는 전병이 주식인데, 아주 넓고 큰 너비의 팬에 굽는 음식”이라며 “컴컴한 집 내부에서 돌 3개 위에 받침대만 올려놓고 인제라를 굽다 보니 연기를 통째로 들이마시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매우 해로웠다”고 말했다. 환기가 안 되는 부엌 탓이다. 낮은 열효율과 화상 위험도 문제였다. 항상 몸을 구부려 일하다 보니, 허리나 무릎에 무리를 느끼는 여성도 많았다.

재단 측은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는 화덕을 새로 설계했다. 흙과 나무 등 현지 재료도 이용했다. 여성들이 구부리지 않아도 될 만큼 화덕을 높이고, 연통(굴뚝)을 집 밖으로 연결했다. 처음 5가구에 설치하자, 25명이 찾아와 자신의 집에도 화덕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인제라 만들면서 더는 연기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웃의 자랑이 입소문으로 퍼졌다. 옆집 굴뚝을 통해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는 주민도 늘었다. 지역의 보건 관련 공무원 20명은 직접 마을을 방문, 다른 마을에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 국제 개발 협력 사업을 위해 포스코와 경상북도,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은 파트너십을 맺고 머리를 맞댔다.

이번 사업에 통역 겸 시설물 설치를 도운 아둘랄라 마을의 하일루(30)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것은 살인(killer)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으니 매우 유혹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이번 사업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했어요.”

 말라위 구물리라 마을의‘염소 잔치’. 잔치에 쓰인 염소는 부뚜막 설치대회의 포상으로 수여받은 것.

말라위 구물리라 마을의‘염소 잔치’. 잔치에 쓰인 염소는 부뚜막 설치대회의 포상으로 수여받은 것.

사례② 열매나눔재단 아프리카 말라위 부뚜막 설치대회

지난 1월 말, 아프리카 말라위 구물리라 마을에선 때아닌 ‘염소 잔치’가 열렸다. 열매나눔재단이 구물리라 13개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부뚜막 설치 대회의 시상식 겸 펼쳐진 잔치다. 열매나눔재단은 구물리라 지역에 안질(눈병) 환자가 유독 많은 이유를 찾던 중 부엌에 가득한 연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 우리 시골에서 사용하던 ‘부뚜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부뚜막’ 보급 사업을 전개했다. 여기에 현지 주민들의 더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경쟁’이라는 도구를 활용했다. 보릿고개를 앞둔 현지 상황을 고려, 염소를 상품으로 걸어 동기부여를 극대화했다. 염소는 현지에서 가장 보편화한 식용 동물이다.

구물리라 마을은 유엔국제개발계획기구(UNDP)가 “여긴 개발이 안 된다”며 포기하고 나갔던 곳이다. 사업에 참여했던 이지선(26·서울대 환경대학원)씨는 “현지인들이 오랫동안 원조에 의지해 살아와서, 자립할 수 없는 체제로 굳어져 있었다”고 했다. 열매나눔재단은 돈을 쏟아붓는 지원보다, 현지의 눈높이에 맞는 것들을 전수해주려 했다. “화학비료를 달라”는 요구에 “화학비료는 너무 비싸 원조가 끊어지면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경도 황폐하게 한다”며 유기농 퇴비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이씨는 “하드웨어를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 자체가 바뀔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한 소통이 이를 가능케 했다. 이씨는 “이전 사업팀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찾아갔다고 하는데, 우리는 매일 아침 9시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마을 주민을 만났다”고 한다.

작년 9월, 촌장이나 교사 등 지역 리더들을 대상으로 효과를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좋으면 우리 집에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촌장 한 사람이 나오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하나를 만들면, 직접 효능을 확인하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전파토록 했다. 3개월 동안 더디게 진행됐다. 이지선씨는 “인프라 하나가 들어갈 때까지 5개월여가 걸렸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관련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며 “그렇게 해도 그동안 길들여진 생활 방식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완성된 부뚜막의 모습. 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흙을 빚어 만들었다.
완성된 부뚜막의 모습. 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흙을 빚어 만들었다.

부뚜막 사업은 다른 기관들의 사업처럼 많은 물자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독려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먹을 것을 주고, 새 건물을 지어줄 때보다 주민 호응이 높다. 부엌에 문제가 있다고 부엌을 새로 지으려 하기보단, 기존 주거 문화를 최대한 배려한 사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부뚜막이 생기면서, 항상 버리던 옥수숫대와 잎을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더는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업 결과, 구물리라 지역 1322가구 100%가 부뚜막을 설치했다.

열매나눔재단은 부뚜막 사업 외에도 우리나라의 전통 협동조합 형태인 두레와 계 등을 현지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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