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길을 묻다] 지역민을 1순위로 둔 군산…’찾기 좋은 곳’ 이전에, ‘살기 좋은 곳’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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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길을 묻다] ①군산은 어떻게 성공했나

정부가 2021년까지 진행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50조원의 대규모 예산을 쏟아붓는다. 도시재생은 쇠락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정비 사업으로, 대규모 토목 사업으로 상징되는 재개발·재건축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도시재생 사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도시재생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예산 낭비,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문제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제각각 진행되던 도시재생 사업에 국비가 투입된 건 지난 2014년이다. 이후 도시재생특별법이 마련되면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에 4년간 2700억원이 투입됐다. 이어 2016년에는 ‘도시재생 일반지역’ 33곳을 선정해 31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에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시범사업지 68곳이 선정됐다. 지난해 사업지 99곳이 추가됐고, 올해는 100곳이 새롭게 지정된다.
더나은미래는 공식적으로 사업이 종료된 ‘도시재생 선도지역’을 중심으로 사례를 분석한 뒤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도시재생 사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지정된 군산 영화·신창·월명동 일대의 모습을 담은 항공사진. ⓒ군산시청 제공

“도시재생의 본질은 주민 참여입니다. 건물이 들어서고 골목만 깨끗해지면 뭐하나요? 지역에 사는 사람들 마음에 들어야죠. 아무리 관광객들이 유입된다고 해도 24시간 365일 그곳에 발붙이고 생활하는 주민들이야말로 우선순위 1번입니다.”

전북 군산의 도시재생 사업 현장을 이끄는 이길영 군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이 말하는 성공 비결은 단순했다. 군산은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14년 당시 월명·해신·중앙동 일대 원도심의 상가 공실은 140개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거의 공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 활성화에 성공했다.

도시재생 핵심은 주민…지역민 의견 없으면 ‘예견된 실패’

군산의 도시재생 성공의 중심에는 ‘주민협의체’가 있다. 주민협의체는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율할 수 있는 대표자 모임이다. 현장 활동가들에 따르면, 주민 대표자 구성에만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시간이 걸린다. 주민협의체 구성이 쉽지 않은 탓에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통장이나 반장들의 이름을 올려 주민협의체를 급조하는 일이 빈번하다.

군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길영 사무국장은 지난 2015년 센터에 합류한 뒤 기존의 주민협의체부터 바꾸기로 했다. 동네를 돌며 명함부터 돌렸다. 군산 토박이지만 주민들에게 도시재생 사업을 제대로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업종별 상인 모임과 마을별 거주민 모임을 만들어 총 12개의 소그룹을 꾸렸고, 이들의 대표자 12명으로 새로운 주민협의체를 결성했다. 군산의 도시재생 사업에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었던 것도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조직된 주민협의체 덕분이었다.

월명동 거리에서 열린 ‘골목길페스티벌’ 현장. ⓒ군산시청 제공

주민협의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군산과 함께 지난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서울 창신·숭인지구가 대표적이다. 지난 30년간 창신1동에 거주한 주민 김모(58)씨는 “숭인창신지구가 도시재생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도시재생이 뭔지도 모르는 주민이 많고 제대로 체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창신·숭인지구에는 도시재생 사업 명목으로 총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봉제공장이 밀집한 지역사를 테마로 한 봉제거리박물관과 백남준기념관 등을 짓는 데 100억원 넘게 들었고, 거리 정비와 CCTV 설치 등에도 70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 관계자는 “박물관과 기념관 같은 시설은 외부 방문객보다 이 지역 봉제산업 종사자의 자존감을 높이고 거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창신골목시장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해온 최모(72)씨는 “장사에는 별 도움 안 되는 간판 인테리어 비용으로 차라리 시장 지붕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은 상전벽해 아냐…냉정하게 접근해야

군산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지역 특색에 있다. 이길영 사무국장은 “우선 도시재생에 대한 환상부터 깨야 제대로 된 접근이 가능하다”면서 “군산은 옛날부터 지역에 남아 있던 자산들을 새단장한 것이 도시재생과 잘 맞아떨어진 특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군산의 경우 일본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많아 문화유산테마로 정비할 요소가 많았다. 주민들 입장에서 늘 보던 옛 조선은행 건물은 근대건축관이 됐고, 군산검역소는 경로당으로, 목욕탕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군산의 대표 일본식 가옥 ‘고우당'(위)과 ‘우체통 거리’에 설치된 캐릭터 우체통. ⓒ군산시청 제공

주민들이 즐길 만한 소소한 지역 축제도 중요한 요소다. 이길영 사무국장은 군산의 자랑으로 ‘우체통 거리’를 꼽는다. “신창동에는 행정기관의 도움 없이 순수 주민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우체통 거리’가 있어요. 폐우체통을 캐릭터화해서 거리 곳곳에 세워뒀죠. 지난해에는 ‘제1회 손편지 축제’도 열었어요. 외지인들이 봤을 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동네가 활기를 되찾으려면 군산시의 다른 지역민들부터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눈에 띄는 큰 성과만 도시재생은 아니거든요.”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지역마다 박물관, 역사관, 벽화길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할 필요는 없다”면서 “지나친 관광화가 오히려 주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있다. 도시재생의 제1원칙은 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얘기다.

“속도 조절이 투기·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 막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힌다. 정부 지원으로 원도심이 정비되면 부동산 가격 급등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얘기다.

지난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경남 창원 창동 지역은 상권이 되살아나면서 임대료도 가파르게 올랐다. 한때 월평균 임대료가 150만원 수준까지 오르며 인근 지역보다 50% 이상 높아졌다. 이에 창원시는 임차인과 임대인 간 상생협약 체결을 유도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대응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군산은 옛 군산시청 부지에 있던 건물을 허물고 광장으로 만들었다. ⓒ문일요 기자

군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속도 조절’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최소화했다. 군산의 도시재생 지역에는 4400㎡ 규모의 넓은 광장이 하나 있다. 옛 군산시청 건물이 있던 부지다. 군산시는 지난 2015년 원도심 활성화 용도로 해당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매입했다. 이후 2층짜리 대형 상가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주민들의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렇게 3년을 논의한 끝에 군산은 건물을 정비하는 대신 오히려 건물을 헐고 공간을 비워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길영 사무국장은 “지금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다음 세대에 기회를 넘겨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군산 지역에서 20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모(52)씨는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나랏돈이 투입된다고 하면 일단 전국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고 부동산은 들썩이게 된다”며 “그런데 사업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가격이 다시 안정을 찾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산 원도심 지역이 도시재생 사업 이후 서너 배 오른 건 사실이지만, 이건 군산이 쇠락하기 전의 가격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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