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국제개발교육에서 젠더를 이야기하는 이유, 美 교육전문가 캐서린 케네디 인터뷰

‘좋은 배움이 없다면, 학교에 가는 게 무슨 의미일까.’

아프리카 여자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며 2012년에 시작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국제개발 사업 ‘스쿨미(School Me)’ 팀은 이런 질문에 맞닥뜨렸다. 열악한 서아프리카에서 학교 보내자며 건물도 짓고, 기숙사도 지었다. 여교사도 늘렸다. 그런데, ‘학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던지는 메시지가 달라져야 했다. ☞[비영리, 이제는 임팩트다] 아프리카 소녀들의 ‘진짜’ 변화를 측정하는 스쿨미 사업이 궁금하다면? 

세이브더칠드런 스쿨미 팀은 서아프리카 두 나라 시에라리온과 코트디부아르,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돌렸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젠더 인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답변은 이랬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남녀 90% 이상). ‘남자가 여자를 만진다면 그건 여자의 잘못’ (34% 여아, 48% 남아). 사회 내 ‘젠더(gender) 관념’이 어린아이들에게도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여자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스쿨미 교육의 질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2016년부턴 교육의 임팩트를 높이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미국의 ‘교육 전문팀’과도 협력했다. 교사로 10년, 국제개발 필드에서 20년을 일했던 캐서린 케네디<사진>도 이때부터 스쿨미 사업과 접점을 가졌다. 그는 ‘젠더와 교육’의 접점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인물. 스쿨미가 시에라리온과 코트디부아르에서 진행하는 ‘젠더 챔피언 트레이닝(Gender Champion Training·이하 젠더 트레이닝)’을 세이브더칠드런 한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17일에 만나 인터뷰했다.

ⓒ세이브더칠드런

ㅡ국제개발 교육사업에서 ‘젠더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이유가 뭔가.

“많은 교육학자가 ‘지식 관점’에서 교육을 다룬다. ‘엄마가 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진다’는 식이다. 그런데 교육이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이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전달하기에 학교는 중립지대가 아니다. 교사가 안고 있는 생각과 가치는 아이들에게도 전달된다.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든 학교 밖으로 나오면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주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결국은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바뀌어야 했다. 여자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사회 내에 깔려 있는 젠더 문제를 건드려야 했다.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젠더 트레이닝이다.”

ㅡ스쿨미는 현지 직원의 젠더 트레이닝부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텐데 이유가 뭐였나.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는 현지 직원들에게 달렸다. 진심으로 믿는 가치를 위해 일할 때 결과는 천지차이다. 처음에 여자 아이들을 학교 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을 때, 남성 직원들로부터 여러 저항이 있었다. ‘남자 아이도 중요하지 않냐는 식이다. 우리는 현지 직원들에게 이렇게 해, 저게 맞아라고 하는 대신, 젠더 트레이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잘 이해하게 도왔다.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가 훨씬 열악한 교육 조건에 있다는 걸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직원들부터 젠더 챔피언이 된다. 이들이 다시 지역사회와 교사를, 그들이 가족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이다.”

ㅡ젠더 트레이닝은 어떻게 진행되나.

“주로 5일간 진행되는데 셋째 날부터 깊숙이 들어간다. 일상 속에서 ‘젠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직면하게 한다. 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게 누군지, 집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이다. 일찍 일어나고,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요리하고, 일을 하고, 퇴근길에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돕고, 늦게 잠든다. 남자는 어떨까?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집에 오는 길엔 동료들과 술 한잔 하거나 여가 시간을 갖는다. 두 개의 다른 일상을 써서 비교하게 하면 다들 ‘이 정도인진 몰랐다’고 한다. 국제적인 통계나 사진도 보여주면서 ‘가부장제’가 꼭 아프리카 대륙, 이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한다.”

ㅡ젠더 트레이닝이 여자 아이들의 교육으로도 이어지나.

“트레이닝 넷째 날엔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다른지, 학교는 안전한 공간인지, 주로 집에서 일손을 돕는 건 누군지, 공부할 시간은 동등하게 가지는지 등이다. 여자 아이들의 일상은 엄마와 비슷하다. 물을 떠 오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남자 형제들을 깨우고, 밥 먹은 뒤엔 설거지하느라 학교에 종종 늦는다. 남자 형제들에겐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학교 끝나면 남자 아이들은 축구도 하고 숙제도 하는데, 여자 아이들은 또다시 집안일을 한다. 여자 아이들에겐 놀 시간도 없다. 객관적인 사실만 정확하게 회고해도 교육 기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알게 된다. 그때는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다.”

교육 트레이닝을 진행한 현지에서 촬영한 사진. ⓒ캐서린 케네디 제공

ㅡ실질적인 변화가 있나.

“여성들은 대체로 위로받았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감도 생긴다. 진짜 큰 변화는 남성들로부터 나온다. 하루는 한 남성이 오더니 ‘어젯밤에 집에 가서 딸을 무릎에 앉히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이야기하라’고 말했다더라. 눈물이 핑 돌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내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남편도 있었다. 저녁 기도를 아들에게만 시키다가 딸에게 시켰더니, 딸이 너무 기뻐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게 뭐 대수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 삶에선 작지만 단단한 변화다. 일단 알게 되고, 중요하다고 믿으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변한다.”

ㅡ생각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변화의 핵심을 꼽자면.

“스스로를 깊게 회고해야 한다. 어떤 평가나 선입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런 뒤엔 ‘젠더 렌즈’를 통해 여성이 겪는 상황을 세세하게 발라낸다. 그러고 나면 아빠이자 엄마, 남편이자 아내로서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단계에서 처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후 실천해 볼 작은 변화를 적어보고 다른 이들과 나눈다. 한번 해보면 집안 분위기가 나아진다든지, 아이들로부터 기쁜 반응을 얻는 등 작은 성과가 있다.”

ㅡ젠더 트레이닝의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이것 하나로 모두를 바꿨다면 진작 전 세계를 진작 뜯어고쳤을 거다(웃음).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변화의 바람’을 만드는 정도를 할 수 있다. 변화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고, 지역 안에서 이런 변화를 확산시키는 게 남은 과제다.”

ㅡ이번엔 한국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젠더 트레이닝을 제공했는데, 어땠나. 

“국제개발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내 관점은 ‘옳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트레이닝은 우리 조직 내 젠더 문제를 해결하자라든가잘 배워서 현지 사람들의 젠더 관점을 바꿔놓자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게 핵심이다. 5일 트레이닝 중 이틀이 지났는데, 한국에선여성의 출산이 얼마나 큰 압박을 주는지 느꼈다. 여성을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게 만드는 것 같더라. 사회 시스템이 여성을 돕는 식으로 작동하진 않는 것 같았다. ‘젠더 문제’가 모든 문화와 맥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ㅡ미투(MeToo)운동이 세계를 휩쓸었지만 바뀐게 없어 답답하다는 이들도 많은데.

“동료 중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 해왔는데 아직 이 수준이냐’며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2030세대, 그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에서 남성의 일, 여성의 일로 여겨졌던 것을 나눠 적어본다면 세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그 변화속도가 더 빠르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더 낫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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