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스퀘어 ‘스쿨 오브 임팩트 비즈니스’
제1강 ‘CSV 개념의 이해’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지난 10월 24일 저녁 7시, 한양대 제2공학관. 임팩트스퀘어 ‘스쿨 오브 임팩트 비즈니스’ 4주간 총 8강에 걸쳐 진행되는 교육 과정의 막이 올랐다. 스쿨 오브 임팩트 비즈니스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CSV(공유가치창출) 전문가 양성과정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주최로 산업정책연구원과 임팩트스퀘어가 개최하며,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미디어 파트너로 함께 한다.
이번 과정은 ‘임팩트 비즈니스’에 대해 전문 지식을 얻고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됐다. 임팩트 비즈니스란,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영역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첫 강의는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가 ‘CSV 개념의 이해’를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제2, 3섹터를 막론하고 임팩트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직장인 및 대학생 120여명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영리와 비영리 섹터 ‘융합’의 시대… CSV는?
“유니레버(Unilever)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한번 보세요. 비영리 재단 보고서인지 기업 보고서인지 구분이 안 돼요. 네슬레(Nestlé)는 재단이라해도 믿을 정도로 열심히 사회문제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영리 또는 비영리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과 조직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별개 현상이 아닌, 지속가능한 균형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진보입니다.”
CSV의 등장 배경은 무엇일까. 도 대표는 “불과 65년 전만 해도 분명하게 구별됐던 ‘영리’와 ‘비영리’는 이제 경계가 무너졌다”며 시대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기부에만 의존했던 비영리는 적극적인 펀딩이나 바자회, 건물 임대, 굿즈(goods) 판매에서부터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형태까지, 능동적으로 돈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며 “미국의 경우 전체 70~80%의 비영리기관이 이런 방식(Non-profit with Income)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리도 변화해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인 ISO 26000까지 등장했다. 도 대표는 “기업들이 CSR을 확장하고, ‘이왕 돈 들이는 것 제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보자’는 내적인 동기를 갖고 선제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곳들도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 위기 이후 저성장 시대에 접어 들면서 기업에게 사회혁신의 주체가 되라는 요구가 커지고, 기업도 사회공헌 비용을 좀 더 가치있게 쓰는 법을 고민하게 됐다”며 “특히 효율, 소비, 금융의 시대가 저물며 기업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CSV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름이 비슷해 CSR과 CSV를 혼동하는데, 포터 교수의 마케팅 전략일뿐 두 가지는 아예 다른 차원입니다. CSV는 ‘비즈니스 경쟁력 창출’을 위한 ‘전략’이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레버리지 포인트가 ‘사회문제 해결’인 반면, CSR은 기업의 ‘책임’이죠. 두 가지는 대체 불가능하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입니다.”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비즈니스 경쟁력을 창출해내는 것. 2011년 마이클 포터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 교수의 손에서 탄생한 CSV ‘전략’의 개념이다. 도 대표는 “CSV는 ‘전략’이기에 안한다고 비판받을 필요는 없지만 ‘유도’할 필요는 있다”며 “포터 교수에 따르면, ‘미국 전체 기업 매출의 10%만 CSV로 바뀌어도 정부가 하나 더 있는 만큼의 복리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기업을 칭찬하고 협업하며 기업에도 이득이 되는 CSV 전략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파리콤(SAFARICOM), 시멕스(CEMEX)…CSV 앞장서는 기업 사례들
이날 강의에서 수강생들은 다양한 CSV 사례들도 검토했다. 도현명 대표는 “CSV는 한번 정착하면 사회와 밀접하게 엮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는 타 기업이 베끼기도 어렵고 뺏어가기도 어렵다”며 “이것이 CSV의 매력이자 전략적 우월성”이라고 설명했다. 아래 도현명 대표가 꼽은 글로벌 기업들의 우수 CSV 사례를 소개한다.
영국 보다폰(VODAFONE)의 엠페사(M-PESA)
영국의 통신사 ‘보다폰’은 자회사 ‘사파리콤(SAFARICOM)’으로 케냐에 진출했다. ‘연결로 가치를 창출한다’는 보다폰의 가치에 따라, 사파리콤은 케냐의 어떤 사회문제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탐색했다. 당시 케냐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금융접근성’. 국토는 우리나라의 6배이지만, 입출금이 가능한 지점 수는 약 750개에 불과해 많은 이들이 은행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사파리콤은 엠페사(M-PESA) 서비스를 출시했다. 엠페사는 휴대폰 문자로 송금과 결제, 소액 대출을 할 수 있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다. 출시 3년 만에 케냐 인구 절반에 가까운 1800만여명이 가입해 한때는 케냐의 모바일 뱅킹 보급률이 세계 1위를 했을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보다폰이 타국으로 진출할 때 엠페사부터 출시할 정도로 주요한 사업이 됐다. 사파리콤은 사회 문제 해결이 중요한 경쟁력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연결성’ 제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저렴한 공동 요금제 등도 내놓고 있다.
멕시코 시멕스(CEMEX)의 파트리모니오 호이(PATRIMONIO HOY)
멕시코는 서민이 스스로 집을 짓는 경우가 많은 국가다. 서민들이 주로 ‘계’를 들어 집을 짓는데, 이때 계주가 곗돈을 들고 도망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집을 짓는 정확한 매뉴얼도 없어 재료비 중 30%가 버려질만큼 건설 자체에도 비효율이 많았다. 시멘트 회사 시멕스는 ‘왜 사람들이 집을 갖거나 짓지 못할까’하는 사회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멕스는 각 지역 지사의 사무소마다 ‘파트리모니오 호이’란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계주 역할을 대신했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의 종류, 양 등을 세세하게 적은 설계도를 전문가들이 만든 후 이를 배포, 서민들이 충분한 내구성을 가진 집을 짓도록 도왔다. 그 결과, 건설 기간을 65% 줄이고 건설비는 35% 수준으로 낮췄으며, 멕시코에서만 40만 가정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 시멕스는 당시 3개 경쟁사 중 유일하게 성공한 회사가 됐다.
미국 시스코(CISCO)의 네트워킹 아카데미(NETWORKING ACADEMY)
시스코는 네트워킹 장비 생산부터 설치 솔루션까지 다루는 IT 회사. 저소득층 청년 고용에 관심이 컸던 회사는, 교육 기회가 취약한 지역을 찾아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간 IT 분야의 교육을 제공하는 ‘네트워킹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네트워킹 아카데미로 교육 혜택을 받은 이들은 400만명. 이중 50%는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성공하고 연봉도 더 올랐다.
CSV 전략은 시스코의 수익 창출도 도왔다. IT 인력이 시스코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교육받았기에, 이들을 고용한 회사도 시스코의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 것. 이런 수익 효과는 실제 판촉을 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꾸준히 판매량이 나올 만큼 유의미했다. 시스코는 이외에도 ‘택 옵스(Tac Ops·Tactical Operation team)’란 이름으로 재난지역의 네트워크를 복구하는 사업도 지원해 훌륭한 전략적 사회공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즈 마케팅, 임팩트투자…임팩트 비즈니스의 범주
코즈 마케팅, 사회적기업, 사회혁신채권, 임팩트투자 등… 이날 강의는 임팩트 비즈니스의 범주 안에 있는 여러 개념들도 정리했다. 코즈 마케팅은 사회 문제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KFC가 ‘핑크리본(유방암) 캠페인’의 일환으로, “buckets for the cure”란 캠페인을 벌여 유방암 치료를 위해 기부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지 세탁이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만큼 역풍도 거세다. 실제로, 캠페인 시작 며칠 만에 한 의학 전문가가 ‘KFC 기름 중 유방암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다’고 발표해 매장이 문을 닫을 정도로 거센 보이콧이 일어나고, 핑크리본 재단은 수십여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선택한 조직이다. CSV가 비즈니스 경쟁력을 창출하기 위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면, 사회적기업은 존재 목적 자체가 사회문제 해결이고, 비즈니스는 도구에 불과하다. 도 대표는 “CSV를 추구하는 기업에게 사회적기업은 매우 매력적인 벤처”라며 “대기업이 CSV에 투자하려니 조직이 무겁고 위험이 크다보니 비슷한걸 하는 벤처와 M&A를 통해 내재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회혁신채권(SIB·사회성과연계채권)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 전 ‘예방’하는데 집중한다. 민간의 투자로 사회문제를 예방해 문제 해결에 대한 세금 지출을 더 많이 줄였다면, 그 절약한 일부를 투자한 민간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임팩트 투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곳에 사회·환경적 가치를 따져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도 대표는 “임팩트 투자는 30대 금융회사 중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 영역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이들 모두 영리와 비영리, 시장과 사회가 융합되기 시작하는 현상이며, 하나의 사회 진보 과정”이라며 “이들을 하나하나 따로 이해하려 하지 마시라”고 조언했다. 그는 “CSV 역시 이러한 사회 진보에 대해 기업이 반응하는 하나의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톱 티어 기업의 C레벨들이 많이 오는 한 서밋(summit)에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폴 폴먼 유니레버 회장이 미국의 민간 사회적 기업 인증 제도인 비콥(b-corp)에 신청해 심사 중이라 했습니다. 매출 70조 짜리 기업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는다는 겁니다. 누군가 ‘그건 비콥 워싱을 위한게 아니냐’고 물으니, 폴먼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거 못하면 다 죽는다. 10년 동안 미래 소비재 산업에 대해 아무리 연구해봐도 모든 회사는 윤리를 지니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는 결론뿐이었다.’ 이걸 안하면 10년, 20년 뒤 실패할 거라는 판단과 믿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CSV를 하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