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청년에게 필요한 건 ○○… ‘광화문 1번가’에 모인 청년 목소리

국민 정책제안 플랫폼 광화문 1번가가 연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광화문1번가는 새 정부 국민인수위원회가 국민과의 소통 창구로서 문을 연 것으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는 오프라인 공간도 마련했다. 매주 화, 목요일 저녁 7시, 이곳에서는 시민들의 공론장, ‘열린포럼’이 열린다. 

지난달 30일, 열린포럼은 ‘소셜벤처와 창업’을 필두로 첫 발을 뗐다. 이후 청소년, 공동체미디어 등의 주제들이 논의된 가운데, 지난 13일에는 ‘더 나은 일상을 위하여 – 청년에게 필요한 건 ○○’을 주제로 네번째 열린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은 김희성 서울시 청년 명예시장(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의 사회로 진행돼, 전국에서 올라온 4명의 청년들이 각각 청년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광화문 1번가 열린포럼 청년편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모색의 시간’― #청년사회수당(박향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첫 발표자로 나선 청년 박향진씨 ⓒ박혜연

저는 청년수당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사용처도 따지지 않고 지급해 준다는 50만원에 처음 ‘사회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구나’를 느꼈어요. 청년수당은 제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청년 박향진씨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나누며 같은 청년 세대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녀는 “100-200곳의 회사에 지원서를 넣고도 매번 탈락 소식을 듣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지금은 ‘삐끗하면 낭떠러지’인 느낌”이라며 “청년실업, 주거문제,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에 처한 청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압박감을 해소해주는 것이 청년정책의 시작점”이라 발언했다.  

그녀에게 지난해 서울시의 1차 청년수당 사업 중단은 또 한 번의 실패였다. 박씨는 “청년이 원했던 정책인 청년수당의 실패는 청년의 시도가 좌절된 것”이라며 “실패가 나쁜 것 만은 아니지만 100번 넘게 좌절되는 실패는 자존감을 낮추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2차 청년수당 사업에 다시 도전한다. 청년수당이 보여준 희망 때문이다. 박씨는 “(작년) 청년수당 덕분에 생활비 부담을 덜고 전부터 듣고 싶었던 강좌도 신청했다”며 “당시 경험은 단순 강의를 듣는 일을 넘어 인간적 삶을 보장해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청년을 압박하는 환경을 개선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박씨는 “청년에게 필요한건 삶을 모색할 시간과 안정적 환경”이라며 “청년을 신뢰하고 주체적 활동을 보장하는 지원이 바탕이 될 때, 청년이 본인들의 문제는 물론, 다른 세대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탐색의 기회’― #갭이어 프로그램 (박경호 제주청년네트워크)

불안한 미래에 대한 ‘심적 부담감’, 학교 공부에 아르바이트, 취업준비까지 하는 ‘시간적 부담감’, 모든 것이 비용이 되는 ‘자본적 부담감’이 청년이 자유롭게 미래를 탐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를 제거해줄 탐색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뒤를 이어 제주에서 온 청년 박경호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근대 교육을 재판합니다’란 제목의 6분짜리 동영상을 소개하며 발언을 열었다. 박씨는 “5년 전 선배가 공부하던 책,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을 나 역시 똑같이 준비하고 있는 걸 봤다”며 “세상은 다양해져가는데, 선택도 경험도 해본 적 없는 청년들은 정답을 찾는 공부만 계속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청년정책으로 그는 ‘갭 이어(Gap year)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갭 이어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딸 말리아가 대학 입학 전 갭 이어를 선택했고, 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대학 학제 속에 갭 이어가 포함될 정도로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박씨는 “현재 제주에서 시행중인 갭이어 프로그램은 숙소, 활동비를 지원할 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장벽을 제거 해주는 특강 및 워크샵, 진로체험도 해준다”며 “미래에 대한 정해진 공식조차 사라진 지금, 청년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갈 수 있는 탐색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건강한 일상’― #청년건강 지원(서난이 전주시의원)

발표 중인 서난이 전주시의원 ⓒ박혜연
젊다고 건강한 건 아닙니다. 2009년부터 최근 6년 동안 2,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입니다. 청년들은 아픕니다. 몸도, 마음도 아픕니다. 

서울 동작구가 노량진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한 결과(2011-2015), 수험생 870명 중 54%가 정신건강 위험군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부터 지역 청년의 건강검진 사업을 시작한 전주시에서는 조사 대상 청년 5000명 중 20%가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러 데이터들이 ‘청년은 한창 건강한 나이’라는 상식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번째 발제자로 선 서난이 전주시의원은 “취업난 등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청년이 가장 1번으로 포기하는 것이 건강”이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 등의 말들이 청년의 건강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 의원은 “정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청년기 학원 및 아르바이트 등으로 인해 결핵 등 후진국성 질병이 청년층에 높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40-60대 등 중장년의 암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건강검진 등 예방 정책을 내면서도 청년들의 정신건강 사업은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나라도 지키고, 저출생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역할도 부여받고 있는 청년 역시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건강할 권리가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청년의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하고 싶은 일’― #지역 일자리(반영성 시흥청년아티스트)

청년이 지역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한 줌의 희망’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날 포럼의 마지막 발제자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청년통계팀 ‘시퀀트’를 창업한 청년 반영성씨였다. 그가 창업에 뛰어든 계기는 ‘화가 나서’다. 순전히 공익활동으로서 지자체 관련 통계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던 그에게 한 공무원이 ‘무보수로 일을 해달라’고 요청해온 것.

반씨는 “창업 후 직접 사업기획서를 써서 지자체가 기획 중이던 교육사업을 운영하고, 이를 지켜본 한 NPO의 제안으로 꼬리의 꼬리를 물어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청년이 많은데 정작 공공부문은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청년의 접근을 막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지역이 청년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당장의 일자리 늘리기가 아닌 청년이 지역에서 일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대표 발제가 끝난 후 열린 ‘돗자리토론회’에서 관심주제 별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청년들 ⓒ박혜연

한편, 이날 서울에서 열린 포럼에 미처 참석하지 못한 광주, 부산 지역의 청년들도 청년들의 ‘연결권’, ‘주거자립’ 등 정책에 대해 영상으로 목소리를 전해왔다. 광주 청년센터에서 활동하는 추민수씨는 “교육에서 일터로 넘어가는 ‘이임기 청년’들에게 사회 진입의 가능성을 열어달라”며 청년들의 ‘연결권’에 관심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엄창환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 지원단장은 “청년들의 주거자립은 취업으로 예상치 못했던 지역에 살게 되거나 결혼 후 큰 빚을 안고 자립하는 두 가지 경우”라며 “중앙에서 청년이 원하는 지역에서 살아보고, 주거독립도 경험함으로써 주거자립이 가능해지도록 지원해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청년 발제자의 발표가 끝난 뒤엔 참석한 공공 부문 인사들이 소감을 나눴다. 김영곤 교육부 대학지원관은 “현재 교육부 내 진로취업지원과에서 일부 대학들과 갭이어를 확대시키려고 노력 중에 있다”며 “앞으로도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청년들이 고민하는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면 해결책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선 고용노동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앞으로는 정부가 청년정책에 대해 청년들과 청년단체의 모니터링을 받고 피드백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더불어 지방 자치단체의 청년 정책 역량 강화를 위해 청년단체들과 결합해 사업을 수행하는 방안 등도 구상해보겠다”고 발언했다.

한 청년이 ‘청년에게 필요한 ○○’의 빈 칸을 적어 넣었다. ⓒ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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