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에는 사회혁신수석이 신설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만들어진 시민사회수석의 역할을 확대·개편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경험이 있다. 사회혁신수석 자리에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56)이 임명됐다. 지난 14일, 하승창 신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시민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사회혁신수석실의 임무”라고 밝혔다. 더나은미래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사회혁신 현장에서 뛰어온 전문가들에게 향후 5년의 사회혁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사회혁신… 문제 제기 아닌 해결에 방점을 둔 것
사회혁신이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각자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단, 사회의 단편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호혜성(互惠性)이 증가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과거에 시민사회수석이 사회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면, 사회혁신수석은 시민의 힘으로 같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시민사회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민과 파트너십을 만들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코인스트리트는 대표적인 공장 밀집지역으로,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입지가 좋아 부동산개발업자들이 호텔과 고층 빌딩을 짓기 위해 부지 매입에 나섰고, 집값 상승으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주민들은 1977년 ‘코인스트리트 액션그룹’을 결성, 지역 지키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지역을 지키기 위한 계획안을 런던시에 제출했고, 멀베리·팜·레이우드·이로코 등 4개의 주택협동조합을 설립해 220가구 규모의 집을 지어 공급하고, 커뮤니티를 위한 상점과 식당 등을 조성했다. 시민사회·사회적기업 영역인 제3섹터가 도시 재생을 주도한 대표적인 사회혁신 사례다.
왜 사회혁신이란 키워드가 등장했을까.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회문제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져서 문제 해결의 난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면서 “정부의 관료적 전문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고령화, 저출산 등 사회가 무너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정부의 지원, 시민사회의 자발성, 기업의 효율성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걸 교수의 미래혁신과 민주주의 시리즈 읽기
◇사회혁신 키워드는 ‘협력’과 ‘민간 주도’
사회혁신의 핵심은 ‘다자간 협력’이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였던 유럽은 국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설이고 미국은 시민사회를 사회문제 해결의 기본 축으로 생각해왔지만, 각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면서 “경계를 짓지 말고 섹터 간 하이브리드한 영역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문제를 기업가정신으로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의 증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4일, 기획재정부는 이달 안에 협동조합정책과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 TF팀’을 구성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행할 계획을 밝혔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 인터뷰 읽기
단, 사회혁신 정책을 수행할 컨트롤타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민영서 스파크 대표는 “청와대 내에 수석실이 생긴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권변화와 상관없이 영국의 제3섹터청처럼 지속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도 일자리위원회 내에서 작동하게 되는 구조라 보다 넓은 개념으로 흘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사회혁신, 사회적경제의 개념은 부처를 아우르는 모든 분야에 해당되며 시민들의 자발성을 먹고 성장한다”면서 “정부 산하 기구보다는 총리실에서 사회혁신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중심이 아닌 민간 주도의 협력”을 사회혁신의 성공 키워드로 꼽았다. 시민의 자원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기업가 출신으로 현재 소셜벤처 인큐베이팅·투자기관인 소풍(sopoong)의 수장을 맡고 있는 한상엽 대표는 “사회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자발성, 속도”라면서 “시민사회나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등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는 조력자의 역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사회적기업협의회 이사이자 폐현수막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의 박미현 대표는 “최근 대통령이 독도강치 넥타이를 맨 것만으로 독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했다”면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 외에 현장 활동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터치포굿의 5년의 약속 프로젝트
◇사람과 금융 지원, 사회혁신이 나아갈 길
전문가들은 사회혁신을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금융 시스템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사회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사회자체의 발전과 병역활동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사회혁신조직에 병역특례 제도를 주는 등의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은 지난 1993년, 연방 정부 봉사프로그램인 ‘아메리코(Americorps)’를 만들어 시민이 주도하에 사회를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농촌 및 낙후 지역에 미국 대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자원봉사단이 파견돼 지역 재생을 주도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봉사단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할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종료한 후 대학원 진학 과정까지 연결해줬다. 정부가 간접지원을 통해 시민 사회가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준 셈이다.
금융 지원의 방향은 투자 방식의 접근을 제안했다. 일명 ‘임팩트 투자(사회, 환경 등의 문제들을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재원을 유통하는 금융)’ 방식이다. 영국 정부가 2012년 휴면예금 계좌 4억파운드(약 7000억원)와 민간은행 4곳의 2억파운드(약 3400억원) 등을 투자받아 설립한 ‘빅 소사이어티 캐피털(BSC)’이 대표적인 임팩트 금융기관이다. 이 돈은 사회적기업 및 비영리단체에 직접 지원되지 않는다. 채러티뱅크(Charity Bank) 등 사회투자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집행하도록 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정부 보조금은 특정 목적으로만 써야 하지만, 사회투자 기금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법에 유연하게 쓸 수 있는 게 최대 강점이다. ☞영국BSC를 자세히 알고싶다면?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지원금은 일회성에 그치지만 투자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하면 효과성, 책임성, 자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도 “기부금, 정부 보조금, 벤처 자금 등을 혼합해 투자위험을 줄이면서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 메커니즘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사회혁신을 위해선 “실패에 대한 비용을 사회가 보전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상엽 소풍 대표는 “사회혁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시도에 뒤따르는 실패 비용이 개인이나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을 때 촉진된다”면서 “혁신가에 대해 사회가 1~2년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사회혁신의 토양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도 “영국의 로또기금이 사회혁신 기금으로 자유롭게 운용되듯이 기금을 활용해 사회혁신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경하·박민영·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도움 주신 분들: (왼쪽 윗줄부터 가나다순으로) 김동수 한국생산성본부 센터장,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김종대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민영서 스파크 대표,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겸 서울사회적기업협의회 이사, 박정호 MYSC CSO(지속가능경영총괄), 유명훈 코리아CSR 대표,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한상엽 소풍(sopoong)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