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양극화, 금수저론, 인구 절벽…. ‘헬조선’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에도 봄이 올 수 있을까.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의 이원재 기획이사(45)가 복잡한 정국 속, 시대를 읽는 두 권의 책을 연달아 펴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이원재·황세원, 서해문집)’와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이헌재·이원재·황세원, 메디치).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는 작년 희망제작소 소장 재임 당시 ‘시대정신을 묻는다’는 주제로 사회 양극화, 임금 격차, 사회 안전망 등 분야별 전문가 11인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겼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책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의 대담을 엮어 국가의 원칙, 주거, 교육, 소득 정책 등에 대한 국가의 역할, 이 원칙이 실제 사회에 적용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과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지난 20일, 재단법인 여시재에서 1년간 오피니언 리더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했던 이 이사와 마주앉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근본 문제는 ‘개인’이 취약해졌다는 것
―이 이사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과 동일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개인이 너무 취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부족하다. 이런 상태가 오래돼서 의존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이다. 둘 다 취약해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60~70년대에는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정책 때문에, 개인이 국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IMF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앞선 세대들은 고성장 사회 덕에 자산을 축적하거나 권력을 획득하면서 주요 세력이 됐는데, 현재 2030세대는 사회 진입 자체가 힘들다. 단순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생존 문제다.”
―이대로 5년이 흐르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두 가지 중 하나다. 리더십이 고령화되거나, 현재 불안한 청년 세대가 리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주류 정치권을 생각해보자. 상당수가 386세대로 반독재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다. 그저 젊은피가 아니라, 어젠다를 세팅해 가는 리더였다. 지금 2030세대는 정치에 진입하면 말단부터 시작한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의사결정의 경험이 쌓여야 리더로 성장하는데 그 기회가 없다. 과거 고성장 사회에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변화 동력이 발생했는데, 저성장 시대의 성장 동력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젊은 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동력이 줄어들게 된다.”
―젊은 층의 사회 진입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나.
“기득권 세력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랫세대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 영역에서는 스타트업을 창업해야 하고, 시민사회 영역이라면 소셜벤처든 1인 NPO든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시도해야 한다. 정치 리더도 자신의 어젠다를 갖고 나와야 한다. 새로운 방식들이 성공하면서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방식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11인의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긴 인터뷰 여정 끝에 이 이사가 내린 결론은 “우리 사회엔 더 건강한 개인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개인이 성장하려면 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 책인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서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국가가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대담을 이어갔다. 국가의 중심에서 일해봤고, 정책의 실패와 성공을 맛봤던 70대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언론과 기업연구소, 시민사회 싱크탱크에서 일하며 민간에서 비평하던 40대 이원재 기획이사. 배경도, 세대도 다른 두 인물은 4개월간의 대화 끝에 ‘국가의 역할’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했다.
―건강한 개인을 만들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주체가 무엇인가 해보려고 할 때 막진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규제 완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규제 완화’라는 단어가 오용돼서 대기업이 돈 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개인이 비즈니스를 할 때 ‘진입’을 막지 말아야 한다. 또 한 축은 ‘튼튼한 안전망’을 마련해줘야 한다. 개인이 자유롭게 뛰어들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단,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규제하는 것이다.”
―책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2장에서는 주거, 교육, 소득, 일자리와 산업, 외교·통일 등 5개 분야로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이야기한다. 두 분의 의견이 합치했나.
“신기하게 많더라. 지금 대선 후보들이 각종 일자리 정책을 말한다. 일자리 정책에는 2가지 접근법이 있다. 국가가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과 국가는 민간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백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공공 일자리 81만개 정책, 각 후보의 최저임금 상한제 도입이 첫 번째 입장이다. 이 반대편에 기본소득이 있다. 국가가 사람들에게 직접 소득을 줘서, 일자리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와 나는 기본적으로는 두 번째 입장에 공감했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정책에 동의한다는 말인가.
“문재인 전 대표의 공공 일자리 정책안은 비판적으로 본다.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45조원을 증세하는 것은 혁명적인 일인데, 결과는 1인당 연간 30만원씩 상품권 지급이다. 중간 정도의 정책으로 EITC(근로장려세제) 제도를 생각했다. 일하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자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제는 일하는 것에 비례해 임금을 받게 해주는 것이고, 기본소득제는 소득을 그냥 주는 것이다. 2가지 다 공감하는데, 2가지 다 문제가 있다. 대선주자 4인(문재인·이재명·심상정·유승민) 모두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높이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잘 안 될 거다. 최저임금이 시급 3480원(2006년)에서 6470원(2017년)으로 배 가까이 오를 동안,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가 160만명에서 220만명으로 늘었다. 4인 미만 영세 자영업자, 동네 식당, 혹은 비영리단체 등에서 일하는 분들이 여기 해당된다.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으로 규정하되,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에게는 국가가 직접 보조금을 부여하는 방식이 하나의 방법이다.”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혁신’을 키우자
이 이사는 올해 1월부터 ‘당신은 혁신의 편입니까?’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http://innovators.kr). 스타트업 종사자, 비영리단체 활동가, 과학기술자 등 한국 사회의 ‘혁신’에 앞장서는 14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수렴, 혁신과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홈페이지에서 혁신가 인터뷰와 워크숍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에서 ‘모두가 혁신가인 리바운드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출간에 이어 ‘혁신의 편’ 프로젝트는 더 실천적인 움직임인가.
“희망적이게도, 젊은 세대 중에는 우리 사회가 나아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회혁신가’가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사회혁신가가 더 많아지고 역동적으로 일할수록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야 한다. 국가가 ‘안전한 놀이터’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 패자부활전이라는 말이 다소 거부감이 있어서 ‘리바운드 사회’라고 명명했다. 사회혁신가들에게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고, 혁신과 관련된 각각의 제안들이 도출됐다. 이후 정책 자문단과 법률 자문단을 구성해 정부 정책, 정당 정책, 선거 공약, 헌법과 법률 개정안 등에 반영할 계획이다.”
―’혁신의 편’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로드맵은 무엇인가.
“먼저 4월에는 혁신가 100명을 모아 파티를 열 생각이다. 정책이 실제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팔로업(후속 조치)이 필요하다. 영리와 비영리 가리지 않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을 모아서 상시적으로 정책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사회혁신가들이 너무 개별적으로 움직여서 힘이 약하다. 혁신가들의 상시적인 네트워크, 일종의 사회혁신가 로비단체(?)를 구성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포털에 이 이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사회기관단체인’이라고 나오던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 본인은 연구자인가, 저자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하하. 사회기관단체인은 좀 바꿔주면 좋겠다. 생각을 깊이 하지는 못하니 연구자는 아닌 것 같고. 각 사람의 생각을 전파하고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데까지 돕는 사람? 아, 내 명함에는 이름 앞에 ‘솔루션 디자이너(solution designer)’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