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사회투자, 영국이 만든 가장 자랑스러운 창조물

英 민관 협력 현장을 가다<中> 세계 최초 사회투자은행 BSC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시내를 흐르는 리젠트 운하(Regent’s Canal)에 다다르자 수십여 채의 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가로 길이 3~5m짜리 보트의 창문 틈으로 침대, 탁자, 주방용품들이 보였다. 이른바 ‘주거용 선박’이다. 치솟는 런던 집값을 감당 못한 3만여명이 물 위의 삶을 선택한 것. 런던의 월평균 주택임대료는 1472파운드(약 257만원)로, 전년 대비 10% 넘게 올랐다. 런던에서 24평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평균 33억원이 필요하다(한국은 4.3억원, 뉴욕은 18억원). 이에 영국 정부는 지난해 세계 최초의 사회투자은행인 ‘빅소사이어티캐피털(이하 BSC·Big Society Capital)’을 통해 민간과 함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집(Homes for Good)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주거 불평등 해소를 위해 활동해온 사회적기업·자선단체를 발굴해, 이들의 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을 모은 것. 투자에 참여하는 기업 및 투자자들에겐 세제 혜택을 줬다. 지난 1년간 9950만파운드(약 1700억원)가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45곳에 투자됐다. 그 결과 저소득층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택 425곳이 마련됐고, 청년 노숙인 900명이 집을 찾았다.

이렇게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투자를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라 한다. 영국 정부는 부족한 예산을 사회 투자로 보완하고, 사회적기업·자선단체·기업·금융기관 등 민간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큰 사회(Big Society)’ 모델을 적극 확대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 투자은행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은 정부, 금융기관, 사회적기업 등과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다. 2012년 휴면예금 계좌 4억파운드와 민간은행 4곳의 2억파운드 투자를 받아 출발, 영국을 2조50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 시장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및 자선단체를 발굴하고, 투자자들이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수혜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BSC를 통해 지난 1년간 9950만파운드(약1700억원)이 사회적기업 45곳에 투자됐다. /BSC 제공
세계 최초 투자은행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은 정부, 금융기관, 사회적기업 등과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다. 2012년 휴면예금 계좌 4억파운드와 민간은행 4곳의 2억파운드 투자를 받아 출발, 영국을 2조5000억원 규모의 사회투자 시장으로 성장시키는 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및 자선단체를 발굴하고, 투자자들이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수혜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BSC를 통해 지난 1년간 9950만파운드(약1700억원)이 사회적기업 45곳에 투자됐다. /BSC 제공

 

◇세계 최초 사회투자은행, BSC를 가다

“우리는 도매상입니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만난 알래스테어 발렌타인(Alastair Ballentyne) 대외협력 이사는 세계 최초의 사회투자은행인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을 이렇게 소개했다. BSC는 2012년 4월 영국 정부가 사회투자 시장 확대를 위해 설립한 독립적인 금융기관이다. 15년 이상 잔고가 남아있으나 거래가 끊긴 휴면예금 계좌 4억파운드(약 7000억원), 민간은행 4곳이 투자한 2억파운드(약 3400억원)를 합쳐 1조2000억원 규모로 출범했다. 이 돈은 사회적기업 및 자선단체에 직접 지원되지 않는다. 채러티뱅크(Charity Bank) 등 사회투자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집행하도록 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난해만 5억8700만파운드(약 1조원)의 투자금이 BSC와 투자자들을 통해 모였고, 그중 1억9500만파운드(3306억원)가 사회적기업 및 자선단체의 프로젝트에 투자됐다. 이는 17만개의 자선단체, 19만5000개의 사회적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발렌타인 이사는 “보조금은 특정 목적에 써야 하지만, 사회투자 기금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법에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서 “회수된 자금이 다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BSC는 주거·공동체·교육·금융·건강 등 9가지 사회 이슈를 선정해 투자 대상을 선정하고, 사회투자와 관련된 대국민 인식 개선과 임팩트 측정을 한다. 투자 전엔 비즈니스 모델, 투자 회수 가능성, 사회적임팩트 등을 면밀히 따진다. 그 후엔 재정·전략 등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를 석 달 간격으로 열고 각 프로젝트를 3단계에 걸쳐 평가한다. 사회투자를 받은 기관의 임팩트 성과를 측정해 리포트 및 영상까지 제작한다. 사회투자 비용의 4~5%는 BSC의 수수료로 집행된다. 발렌타인 이사는 “더 많은 투자자들이 크라우드펀딩 등 사회투자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투자자에 혜택 듬뿍···英 정부의 전략

© Mike Poloway/UNP 01274 412222.  Visit by Secretary Of State DWP, Mr Ian Duncan-Smith MP to Teens and Toddlers Project, Rosehill School, Ashton under Lyne. 11 July 2013.  Teen Riona Pike 14 from New Charter Academy.
© Mike Poloway/UNP 01274 412222. Visit by Secretary Of State DWP, Mr Ian Duncan-Smith MP to Teens and Toddlers Project, Rosehill School, Ashton under Lyne. 11 July 2013. Teen Riona Pike 14 from New Charter Academy.

2000년 영국 정부는 증가하는 복지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민관이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투자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당장 사회투자 시장 조성을 위한 태스크포스가 꾸려졌고, 2005년엔 사회투자를 위한 독립 민간위원회를 설립했다. 2008년엔 휴면예금법을 제정해 사회적 금융을 활성화하는 제도를 정비했고, 2012년 영국 금융감독청의 정식 인가를 통해 BSC가 설립됐다. 당시 약 1조2000억원으로 시작된 사회투자 시장은 현재 2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영국의 핵심 기금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사회투자는 이후 더욱 꽃을 피웠다. 캐머런 총리가 “사회투자는 영국이 만든 가장 자랑스러운 창조물”이라며 관련 정책을 확대했기 때문. 지난해 10월엔 사회투자에 참여한 기관 및 투자자들에게 최대 30%까지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올해 초엔 BSC의 투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거부권을 없애는 등 자율성도 높였다.

‘사회성과연계채권(이하 SIB)’ 역시 영국 정부가 시도한 대표적인 사회투자 모델이다. SIB란 민간투자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수행한 후, 성과 목표에 따라 정부가 민간 투자자에게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지급하는 제도다. 2010년 영국을 시작으로 5년 만에 미국·호주·네덜란드 등 11개국 45개 프로젝트로 확대됐고, 지난해 4월 서울시도 그룹홈 내 경계선 지능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교육사업을 진행한 뒤 대상자의 34% 이상이 정상 범주로 올라오면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SIB를 시작한 바 있다.

현재 영국에선 내각부에 있는 ‘제3섹터청(OCS)’을 통해 총 32개의 SIB가 진행되고 있다. 제3섹터청은 상대적으로 투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자선단체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액세스 파운데이션(Access Foundation)’ 기금을 만들어 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 발렌타인 BSC 이사는 “최근 3년간 325만파운드(55억원)를 투자해 맨체스터 지역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아동 1300명에게 자존감과 성취감을 높이는 SIB(Teens ans Tobbler)를 진행했는데, 그의 5배인 1550만파운드(26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 성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는 투자를 말한다. 사회문제를사회투자 설명_사진_사회적경제 정부_160628 해결하고 수혜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익 목적이 투여된 새로운 투자 방식을 말한다. 더 나아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속 가능한 시도 및 사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자본시장을 사회적금융(Social Finance)이라고 한다.

런던=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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