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약 중독자에서 캄보디아 두 소녀의 ‘희망지킴이’로
다일공동체 후원자가 말하는 ‘나의 삶, 나의 나눔’
남다윗(53·가명) 씨의 삶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마약 때문에 일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었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마약을 끊기 위해 온갖 방법은 다 써봤다. 운동, 독서 등 무언가에 집중해 보거나 산 속에 들어가 칩거도 해봤다. 그러나 마약의 유혹은 끈질겼다. 마약을 중단하자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밀려오는 ‘금단현상’이 그를 괴롭힌 것. 투약과 중단을 반복했던 남씨는 결국 2011년 마약 투약, 2012년 마약 교부(대가 없이 건내줌) 그리고 2014년 밀매 혐의로 수차례 교도소 신세를 졌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이제 두 소녀의 ‘행복 지킴이’가 됐다. 국제구호단체인 다일공동체를 통해 캄보디아 두 어린이에게 매월 3만원씩 정기 후원을 하게 된 것.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밥을 나눠주는 등 다일공동체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한다.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 다일공동체 본부에서 만난 남씨는 “다일공동체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마약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내가 받은 나눔을 이제 베풀면서 살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마약중독자에서 후원자로 변신한 그의 인생스토리를 소개한다.
◇ “호기심으로 시작한 마약, 그 끝은 고통과 절망이더라”
처음 ‘약’을 한 건 중학교 때였어요. 같은 반 친구가 본드를 권하더군요. 막상 권유를 받았을 땐 주저했는데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나른해지고 좋았어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마약을 하게 된 건 30대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유흥업소를 운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술을 체질적으로 못 마셨거든요. 직업 특성상 술을 마셔야 할 일이 많은데 술을 먹지 못하니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필로폰에 손을 댔어요. 사업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마약을 하며 푼 거죠.
마약을 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자신감이 마구 솟아나요. ‘나를 막을 자는 없다’,‘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죠. 그러나 효과는 잠시 뿐이에요. 필로폰 주사를 맞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시 엄청난 우울감과 고통이 밀려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은 중독이 심해서 자기 몸을 자해하는 정신 분열증에 걸렸고요. 저는 마약을 한 뒤 피로가 엄청나서 삼일 내내 잠만 잔적도 있고, 라면 5개를 한 끼에 다 먹을 정도로 폭식도 했어요.
이렇게 정신없이 마약을 하다가 결국 2011년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 10개월을 받았어요. 이듬해엔 마약 투약 및 교부로 실형을 선고 받았고요. 집안은 쑥대밭이 됐죠. 제가 일을 못하니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뿐 아니라 아내는 우울증에 빠졌어요. 특히 2014년 세 번째로 감옥에 가게 됐을 땐 아내가 “이번에도 약을 못 끊으면 내가 목숨을 끊겠다”며 울더군요. 이후 교도소에서 성경을 비롯해 책의 좋은 구절을 필사하며 마약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소 근처에 있는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절 찾아오셨어요. 알고 봤더니 같은 방을 쓰는 교도소 동기가 제가 성경 구절을 받아 적는 걸 보고 홍성희 목사님을 부르셨더라고요. 저는 목사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어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절 바라보았던 목사님의 눈을 보고 위로를 받았던 거죠. 2015년 1월 교도소를 출소한 뒤 이번엔 반드시 마약 끊겠다는 다짐을 하며 홍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다일공동체의 심리 치유 프로그램인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 “마약이 주는 가짜 기쁨 버리고 나눔이 주는 진짜 기쁨 얻어”
사실 2015년 2월 심리 치유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했을 때는 그 효과를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4박 5일 동안 각자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 활동을 통해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저의 속마음과 고민을 고백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5일간의 활동이 끝난 뒤 저는 6개월 과정을 더 등록해 저를 더 단련했어요. 그리고 다일공동체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지요.
올해 2월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지 딱 3년이 됐어요. 저 한 사람이 바뀌니 부모님, 아내 그리고 딸이 모두 행복해지더군요. 저를 잘 모르는 한 아이의 삶도 변했어요. 2015년 9월 다일공동체 캄보디아 분원을 통해 아동 한 명에게 매월 3만원을 후원했는데요. 이 돈 덕분에 그 아이의 가정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요. 우리에게 3만원이 큰 금액은 아니지만 캄보디아에선 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입니다. 지난해 9월엔 캄보디아에 가서 후원을 하고 있는 아이를 직접 만났어요. 제게 연신 고마움을 전하고 행복해하는 그 아이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다른 아이들을 마주하니 가슴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캄보디아 남자 어린이 1명을 더 후원하기로 결정했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이 제게 안부 편지를 보내요. 고사리 손으로 서툴게 써내려간 글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 아이들을 통해 제가 더 큰 선물을 받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나눔과 봉사를 통해 ‘진짜 기쁨’을 알게 됐어요. 제 딸은 난치병인 기면증(일상생활 중 발작적으로 졸음에 빠져드는 신경계 질환이자 수면장애)을 앓고 있는데요. 저와 함께 심리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각성제를 먹지 않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됐어요. 나눔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마음을 단련한 결과죠. 저는 사람들에게 마약은 ‘가짜 기쁨’이라고 말해요. 마약의 효과는 즉시 반응하지만 끝은 절망뿐이에요. 반면 나눔은 ‘진짜 기쁨’을 줘요. 비록 효과는 천천히 나타나지만 꾸준히 이행하면 사랑, 희망, 건강, 행복을 모두 얻을 수 있거든요.
나눔과 봉사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저는 ‘나눔의 나비효과’를 굳게 믿습니다. 아무리 작은 도움도 행하다 보면 이 선한 의지들이 모여 언젠가는 사회를 좋게 만들 거라는 믿음을요. 새로운 꿈도 생겼어요. 상담사가 되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마약중독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마약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