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심리 치료도 감기 주사처럼 자연스러운 것”…어린이 마음 감싸는 ‘좋은마음센터’ 지난 5년

굿네이버스 아동·청소년 심리정서지원사업 ‘좋은마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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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부산서부에서 진행된 ‘엄마학교’의 모습. /굿네이버스 제공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프리카의 속담만큼, 이윤지(가명·11)양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양은 몇 주 동안 씻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집은 쓰레기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낮은 자존감과 불안 증상으로 친구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심각한 방임 상태였지만, 이혼 후 홀로 이양을 키우던 아버지는 가정사에 외부인이 개입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굳게 잠긴 이양 아버지의 마음을 처음 연 것은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부산서부였다. 끈질긴 설득 끝에, 아버지는 이양의 심리 치료와 주거 환경 개선에 동의했다. 이때부터 좋은마음센터는 지역 곳곳에 SOS를 쳤고,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했다. 지역주민 멘토는 이양에게 목욕하기, 주변 정돈하기 등 생활 습관을 가르쳤다. 기업의 사회공헌 기금이 투입되면서 쓰레기가 쌓였던 집은 깨끗하게 보수됐고, 이양은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지역아동센터와 학교는 좋은마음센터, 드림스타트센터, 부산시아동보호종합센터, 희망복지지원단과 함께 이양에 관한 통합사례회의를 열고 아이의 발달 상황을 공유했다. 1년 만에 이양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할 만큼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흩어져 있던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좋은마음센터’라는 브리지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연결된 결과다.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아동을 넘어 ‘가정’을 보다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가 올해로 사업 5년째를 맞았다. 좋은마음센터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동과 가족에게 상담·치료 등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심리 지원 기관이다. 2012년 6개 센터를 시작으로 지금은 전국에서 20개 센터가 운영 중이다. 1년에 약 1만5000명 이상이 센터를 찾고 있다.

좋은마음센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아동을 넘어 가족 전체를 케어한다는 점이다. ‘가족역량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꿈자람(멘토링 서비스)’ ‘가족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014년부터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행복한 병아리 교실’도 운영 중이다. 아이는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성을 키우고, 부모는 걱정 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올해 처음 부산서부에서 시작된 ‘엄마학교’는 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받는 아이 엄마들이 직접 주도하는 월간 자조모임이다. 자원 또는 추천으로 선발된 임원 엄마들이 1년간 센터 사회복지사와 함께 월별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아이에게 손 편지 쓰기’ ‘엄마와 아이에 대한 퀴즈 맞히기’ 등 매월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도시락 싸기’ ‘양초 만들기’ 등 엄마들의 재능 기부로 꾸려진 강의 시간에는 아이에게 줄 선물을 함께 만든다. 거리에서 심리 치료 인식 개선 캠페인을 펼치는 등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때도 있다.

아이 치료는 끝났지만, 엄마학교에 계속 다니기 위해 센터를 방문하는 엄마도 있을 정도다.

지난 12월 16일에는 엄마 16명이 올해 마지막 엄마학교에서 열쇠고리와 인형 등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들었다. 엄마들은 동네 바자회를 통해 판매한 선물 수익금을 빈곤 가정 아이들 심리 치료 지원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날 엄마학교에 ‘재능 기부 강사’로 참여한 조은정(가명·39)씨는 “아들 정우가 처음 센터에 올 때만 하더라도 ‘우리 아이가 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까’ 거부감이 들었지만, 엄마학교 친구들과 치료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제는 (심리적 어려움이) 아이가 크는 과정에서 마치 감기처럼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치료와 상담은 아이의 숨겨진 힘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정우가 고집이 세고 유별나서, 엄마가 힘들겠다’는 말을 듣는 게 가장 마음 아팠는데, 여기선 위로를 많이 받아요. 엄마학교 엄마들은 아이가 좋은마음센터에 다니는 걸 아무도 부끄럽게 생각 안 하거든요. 오히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죠.”

가족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이용자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굿네이버스 심리정서지원서비스 관리 방안 연구(2015)’에 따르면 좋은마음센터를 이용한 아동의 만족도는 평균 3.7점(4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프로그램(21.1%)’은 ‘친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41%)’의 뒤를 이어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부모님들 역시 가장 도움이 된 점으로 ‘자녀에 대한 이해 증진’을 꼽았다. 센터 재이용 의사는 96.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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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협력으로 통합 지원 강화… 지속 가능성 위해 행정·민간도 힘 모아야

민관 파트너십으로 좀 더 효율적인 지원 체계가 구축되기도 한다. 교육부가 매년 전국의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하고 있지만,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실제 치료로 연결되는 경우는 약 70%에 불과하다. 이에 부산교육청은 지난 2013년, 민간기관으로는 최초로 좋은마음센터 부산서부를 2차 평가기관으로 인증했다. 2차 평가 결과, 치료가 필요한 아동은 즉시 좋은마음센터를 통해 사례 관리가 가능하다.

‘어깨동무’는 부산교육청과 좋은마음센터 부산서부가 손잡고 학급 단위로 예술 치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36개교 66개 교실을 치료사가 직접 방문해 총 3회기에 걸쳐 집단 상담을 진행한다. 어깨동무 교실의 담임인 왕유진 봉래초 교사(생활인성부장)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친구가 개별 치료로 전보다 사회성이 좋아졌더라도, 교실로 돌아오면 예전과 똑같은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서 “심리 전문가가 아닌

교사로서 개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와 함께 개인과 또래 집단을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국 20개 좋은마음센터는 각 지역사회와 함께 ‘좋은마음 지역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성동 좋은마음센터가 올해부터 시작한 ‘우리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는 아동·부모·교사 교육을 하나로 엮었다. 이를 위해 성동교육복지센터, 성동드림스타트센터, 프렌드 소아정신과, 한양대학교병원, 중곡종합사회복지관, 한양대학교, 건국대학교 등 13개 협력기관과 14개 초등학교가 힘을 모으고 있다.

아동의 심리정서지원사업이 지속되려면 민간 자원의 지속적인 관심도 필수다. 정부 예산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GS칼텍스는 2013년부터 굿네이버스와 손잡고 ‘마음톡톡’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심리 정서 지원이 필요한 초·중학생에게 음악·미술·무용·연극 등을 활용한 집단 심리 치료를 제공하고, ‘마음톡톡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15년까지 총 2905명의 아동이 집단 심리 치료의 혜택을 받았으며, 1058명의 아동이 마음톡톡 캠프에 참여했다. 박필규 GS칼텍스 CSR추진팀장은 “지난 3년간 GS칼텍스가 양성해온 통합예술 심리 치료 인력과 사회공헌 자본, 굿네이버스의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사례관리 전문성이 만나 가족 중심의 심리지원 솔루션을 구축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솔루션 제공을 넘어, 아동의 정신 건강 증진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경 굿네이버스 심리정서사업팀장은 “앞으로도 공공·민간의 다양한 조직들과 힘을 모아 아동 사례 관리를 위한 직원 역량 강화, 운영 모형 효과성 연구 및 개발 등을 과제로 사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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